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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Sep 23. 2022

제사(祭祀)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

이번 추석 차례규모를 많이 축소했기에 형님과 나, 그리고 조카의 가족들 참석해 단출했다.

4대조 봉사를 철저히 지키셨던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기에 형님이 제주 역할을 맡다.

형님 기준으로 4대조를 모셔야 되지만 이젠 시대가 바뀌었음을 인정하고 2대 봉사 하기로 아버지와 형님 간에 얘기가 되어있었던 모양이다.


제주로서 형님이 먼저 예를 올리고 이제 나머지 사람들이 함께 절을 할 때였다.

내 뒤에 있던 큰 조카가 절은 하지 않고 멀뚱멀뚱 쳐다보며 서있기만 다.


"너는 절을 안 하느냐?"


돌아온 대답에 나는 순간 모골이 송연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머리끝으로 번개가 스치듯 번쩍했었지 싶다.


"저는 개인적인 신념상 절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예전엔 없던 조카의 행동이었기에 이상한 유사종교에 갑자기 빠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동시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철딱서니 없기가 한량이 없다 싶었다.

아무리 신념이 뚜렷하더라도 어른들께 미리 전후 사정을 밝히는 게 도리이거늘, 아무 예고도 없이 도전장을 던진 꼴이었다.

더구나 조카는 형님의 뒤를 이을 장손이기에 신중치 못한 처사가 더욱 못마땅했다.


"개인적인 신념이라....."


형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중얼거리다 차마 완전한 문장의 말을 뱉지 못한 채 말끝을 삼켜버렸다.

가슴에 나보다 더 큰 풍파가 전해졌을 것이다.

침묵 속에 차례를 마치고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도 이런저런 안부를 물을 뿐 그 일에 대해선 아무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내가 말문을 터볼까 하다가 형님도 가만히 계시는데 불쑥 내가 나서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싶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었다.

모두 겉으로는 차분하게 시간을 흘려보냈으나 형님의 가슴에는 하루 종일 별의별 감정이 요동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명절이라고 하면 차례를 지내는 것이 먼저 떠오르기는 하지만 내게는 그게 일차적인 목적은 아니다.

오랜만에 부모형제를 만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아버지가 종손이었기에 나는 어릴 때부터 제사를 당연한 집안 행사로 보고 자랐지만 그 존속 필요성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 많았다.

아버지와 형님은 장손이어서인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사만은 반드시 지키려는 의식 자연스레 배어 있는 듯하다.

나는 차례가 명절의 가장 큰 목적이라면 가고 싶지 않은 때 많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한편으로는 형님에게 늘 미안한 마음도 함께 든다.

형님은 가 경험하지 못했던 장손으로서 무거운 책임과 의무를 평생 양 어깨에 짊어지고 산다.

특히 풍족치 못한 형편에 그야말로 제사가 밥먹듯이 돌아온다.

나도 명절 때면 몇 푼이라도 내놓고 성의를 표현하지만 형님의 부담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다행히 형님은 장손으로서 나름의 자부심이 있는 듯하고 또 한편으론 그런 분위기를 즐기는 듯하여 나로선 다행일 뿐이다.


그날 내내 제사가 개인적 신념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리 맴돌았다.

조카가 MZ세대라서 그런 것일 거라 이해하려 애썼다.

장남으로서 형님의 뒤를 이어 집안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조카는 자신이 짊어질 짐을 지지 않으려고 미리 선포한 것으로 짐작되기도 했다.

더구나 국제결혼을 했기에 현실적으로 장손의 역할을 제대로 할리도 없다.

집안 어른들로부터 손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기에 부담이 있었을 터이다.

언젠가는 한 번은 매듭지어야 할 문제였다.




제사를 조상을 추모하는 방식의 하나로 받아들이지 않고 종교적 의미로 부각하면 끝없는 논쟁에 휩싸일 수 있다.

나는 제사를 유교라는 종교 차원의 의식이나 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기원을 따지자면 종교적 의미에서 시작되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오랜 세월 일상생활에서 행하여지다 보니 종교라기보다는 하나의 풍습이나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거나 경제적 부담이 될 정도라면 차라리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낫다.

제례 형식에 지나칠 정도로 얽매이거나 가계에 짐이 될 만큼 경제적 부담 다면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제사를 모시겠는가.

더구나 제사 준비에 가족 중 누구는 참여하고 누구는 불참한다면 형평성의 문제도 제시될 수 있기에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부모로부터 충분한 재산 상속이나 다른 형제들의 정신적, 경제적 협조와 지지 없이 장손이라는 이유로 맏아들에게만 무조건 부담을 지게 하는 것도 불합리하다.

이런 문제의 기저에는 제사를 조상을 추모하는 데만 의미를 두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교통 통신이 더욱 첨단화되고 있지만, 핵가족이 가속화되고 부모형제간이라도 교 엷어지고 있는 시대다.

제사는 유교적 의미보다는 가족 간의 연결고리로서 만족해야 한다.

공동 뿌리인 조상의 추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가족 간의 회합과 사랑 확인하는 집안 행사로서 의미가 더 커져야 한다.




제사는 조상에 대한 추모 방식 중의 하나로 받아들이면 그뿐이지 경직되게 종교적 의미로 받아들이면 가족 간이라도 서로 불편하다.

나를 존재케 한 조상을 추모하는 방식으로서 다른 대안이 있다면, 또 그 방식에 대한 합의가 있다면 유교식 제사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을까.


사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시면 가족이라도 교류는 더 뜸해질 수 있다.

부모님이라는 공통의 관심사와 구심점이 없어지면 모여야 할 이유가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첨예화된 경쟁사회에서 먹고살기도 바쁜데 각종 집안 행사가 각자의 생활에 부담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모님의 경제력이 미약하고 오히려 노후에 짐이라고 여겨질 경우엔 살아계시더라도 모이기 쉽지 않은 게 요즘의 세태다.

물질주의에 찌들어 서로 간에 도움을 주고받을 정도가 아니면 형제간이라도 오가는 길이 단절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차례를 지내자고 명절에 모이는 형제들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맏이나 장남이 그래서 잘살아야 한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집안의 구심점 역할을 하려면 우선 경제적으로 궁색하지 않아야 연장자로서 위엄이 선다.

그래야 부모님이 계시지 않더라도 형제간의 교류가 어느 정도 유지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제사를 모시는 장손에게 가장 많은 재산을 물려주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형제지간에도 이럴 진대, 한세대 아래인 자식 세대는 어떨까.

이번 추석 차례에서 생긴 해프닝은 참으로 우울한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제사를 부정적으로 대했던 나였기에 조카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정까지 꾸린 성인으로서 자기의 입장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한 철없음이 몹시 안타까웠다.

다음 세대의 맏이로서 언행이 너무 가벼웠고 표현 방법이 신중치 못했다고 본다.

물론 그 자체가 장손에게 지우는 집안의 짐이라면 할 말은 없다.

그렇더라도 어쨌거나 우리 집안의 구심점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좀 더 어른스러워야 하지 않았을까.

내가 조카를 괘씸하게 생각하는 연유는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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