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급 인생 Jul 23. 2022

나이를 먹어도 우리 부부는 닮아지지 않는다.

"서로 은 점이 많아 결혼했다가 서로 다른 점이 많아 이혼한다"는 농담이 있다.

취미가 같다는 이유나 성향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친밀감을 느끼고 가까워지다 결혼하는 사람이 많다.

가령 등산모임에 갔다 만나거나 글쓰기 모임에서 어울리다 서로 강하게 이끌려 결혼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부부로 살다 보면 결혼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은밀한 버릇이나 성격을 발견하고 정나미가 떨어질 때도 다.

서로 다른 사소한 습관이 계기가 되어 미움의 싹이 틀 수가 있는 것이다.


눈에 콩깍지가 낀 연인관계와 달리 부부에게는 각자의 장단점이 실생활에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오래전 어느 영화에서 남편은 치약을 아랫부분부터 조금씩 짜는 데 반해 아내는 튜브를 움켜쥐듯 눌러서 짜는 버릇이 있어서 매일 아침 다투다 결국 헤어지던 부부도 보았다.




나도 30년 이상 부부로 살다 보니 아내와 많이 다름을 자주 실감다.

누구는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부부의 연을 맺는다고 하지만 우리 부부는 전혀 그렇지 않다.

서로 다른 점 때문에 오히려 끌려 결혼하 되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함께 살면서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얼마 전 아침 식탁 위 캘린더에 아내가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을 빼곡히 적어 놓고 참고하라 명했다.

그날은 알아서 저녁을 챙겨 먹으라는 뜻이다.

그게 귀찮거나 화가 나는 바는 아니다.

혹시 나도 저녁 모임을 하게 되면 가급적 그날로 하면 좋지 않겠냐는 속 깊은 배려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하다.


다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을 최소화하려는데 아내는 어떻게 해서 누굴 만나려고 안달 난 사람 같다.

내향적 성격인 듯한데 사회활동은 나와 달리 상당히 활발한 편이다.

직장생활이 활발하던 때야 각종 모임이 아도 그러려니 했는데, 일상이 한가로운 요즘은 왜 저렇게 모임이 잦을까 싶다.

나 같으면 그간 바쁘게 일하느라 짬을 내지 못해 아쉬웠던 독서나 취미 생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텐데, 도 그만 가지 않아도 그만인 잡다한 모임까지 왜 저렇게 열성일까 이해가 안 된다.

가끔 내가 "왜 그렇게 밖으로만 돌려고 하냐"라고 타박하면 앙칼진 대꾸를 듣기 일쑤다.

잘 다녀오라고 하기보다는 추궁는 듯한 어투에도 문제가 있다는 반응이다.




나는 습관화되다시피 한 일상의 루틴 따라야만 하루를 제대로 보낸 듯하다.

집안 대소사나 회사일 등으로 불가피한 경우는 제외하고 의도적으로  루틴을 이탈한 적 없다.

날마다 유지해온 일상에 방해가 되는 일이 발생하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지키기 위해 불필요하거나 안 해도 괜찮은 일들은 만들지 않는다.

젊을 때 체면 때문에 아니면 도의적인 이유로 싫어도 가야만 했던 모임이나 약속  이젠 웬만해선 참석치 않는다.


내가 지키고 싶은 일상은 사실 특별할 것이 없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녹차 한잔을 끓여 마시며 짧은 독서를 한다.

그 사이 아내가 차려놓는 아침을 먹은 후 출근 전까지 독서를 마저 하거나 TV 뉴스를 시청한다.

퇴근 후에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1시간가량 운동을 한다.

저녁 식사 전까지는 유일한 취미인 대금 연습을 한다.

식사 후에는 바둑 TV 등을 시청한다.

또 다른 취미나 공부 거리가 생기면 TV 시청을 줄이고 거기에 일정 시간을 할애할 계획이다.

자격증 공부를 할 때는 TV 시청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일과 중 반드시 지키려는 루틴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대금 연습인데 이젠 습관이 되었다.

하지 않으면 금단 현상이 오는 듯 허전하다.

매일 동일한 시간대에 하려고 노력하지만 특별한 일이 발생하면 다른 시간대로 옮기기는 해도 빼먹진 않는다.

해서 방해가 되는 약속은 피하려고 노력한다.

내게 소중한 시간을 희생하면서 까지 사회적 활동을 해야 할 의무나 체면을 지키고 싶지 않다.

이젠 그런 속박에서 벗어나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



     

아내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누가 만나자는 말이라도 나오면 한 번도 거절하 않는다.

사는 게 고달프거나 힘들어서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만나려는 것도 아닌 듯하다.

집안일을 번거롭고 귀찮아하기는 해도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는 아닌 듯하다.

아무래도 타고난 성정이 아닐까 싶다.

사람을 만나도 나서서 수다를 떨기보다는 조용히 듣고만 있는 편이데도 모임을 좋아한다.

그게 좋고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된다.


이제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으니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게 좋다.

하나 시간만 되면 밖으로만 나도니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습관처럼 매일 하지 않으면 하루 허전한 루틴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내 입장에선 마음 붙일만한 취미나 운동을 권하고 싶지만 괜한 간섭이라 핀잔만 들을까 저어된다.


근자에는 독서를 좀 하는 듯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무슨 책을 저리 열심히 읽나 훔쳐보았더니 주로 재테크 관련 서적뿐이다.

재테크에 어두운 나를 대신해 노후자금이라도 만들려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실전은 제쳐 두고 책만 읽어 대니 실효성이 있을까 싶다.

그럴 바엔 젊은 시절 제쳐두었던 고전이라도 읽어두면 어딜 가더라도 기품 있는 대화를 할 텐데 안타깝다.




직장생활을 마감하면 가깝다고 여기던 인맥들도 떨어져 나간다.

금쪽같은 자식들도 슬하를 벗어난다.

생의 후반기를 함께 할 사람은 남편과 아내뿐이다.

노후 부부는 그래서 서로 친구이자 보호자이다.

그러니 부부는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속마음을 읽어낼 만큼 닮아가야 한다.


젊었을 때는 퇴근 후 말수가 적은 내게 대화가 부족하다고 아내는 늘 투덜댔다.

나이가 드니 반대다.

집에 오면 차분히 대화를 나누고 싶은 내 속마음은 모르고 아내는 지난 드라마를 몰아서 보느라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다.

나이 들어 참 한심해 보인다고 했더니 토라지기만 할 뿐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성찰하지 않는다.

요즘은 아예 들은 체 만 체 눈길도 주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닮아지지도 않았고 서로 관심사도 다르다.

앞으로도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직은 젊어서 그렇겠체념할 수밖에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바라는 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