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급 인생 Dec 31. 2022

아제아제 바라아제

내친김에 <반야심경> 읽었다.

정확히는 <반야심경>을 풀이한 책을 읽었다. 

오래전부터 공부해보려고 했었는데 60이 다 돼서야 비로소 읽었다.


많은 불의 가르침 중 진수만을 뽑아 간추린 이라 했다.

불교철학의 기본 개념과 핵심정신을 압축요약했다고 한다.

불교공부에 입문하려면 가장 먼저 공부해야 할 경다.

일반 대중이  은 경전을 읽기는커녕 접하기도 어려운 사정을 배려 셈이다.

목을 포함하여 270자만 공부하면 되니 얼마나 홀가분가?

하지만 짧다고 이해하기 쉽다는 말은 아니다.

속 깊은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어 하나 구절 하나를 곰곰이 새겨 보아야 한다.

초심자가 공부하는 불경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수행자처럼 다른 불경도 함께 공부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금강경>에도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부처님 말씀을 수지독송만 하여도 그 복덕이 크다 하였다.

자꾸 읽고 쓰고 외우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그 다가설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법상 스님의 <반야심경과 마음공부>는 어려운 불교 용어와 개념을 쉽게 풀어주었다.

<반야심경>뿐만 아니라 불교철학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연관된 다른 불경을 따로 공부하는 수고를 덜어주었다.




앞서 공부한 <금강경>과는 뉘앙스가 살짝 달랐다.

<금강경>서는 고정된 생각, 상(相)을 버리라 가르침이 핵심이다.

<반야심경>의 핵심은 세상만사가 모두 공(空)이라 가르침이다.

공은 한자 뜻 그대로 "비우라"는 의미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다.

세상만사가  자체 유한 속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으로 엮인 관계망 속에 존재할 뿐이라고 한다.

이러한 세상의 속성을 불교용어로 "본무자성(本無自性)"이라고 하고 작동원리를 "인연생기(因緣生起)", 줄여서  "연기법(緣起法)"이라고 한다.

이 개념을 간단히 공(空)이라는 글자로 이름을 붙였다.

그러니 불교에서 공은 단지 이름일 뿐 그 자체로 아무 뜻이 없다.

다시 말하면,  본무자성 = 연기법 = 공 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공부를 안 했으면 모르고 살 뻔했다.

법상스님의 책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뜻 알 듯 모를 듯 가물거렸다.

유튜브를 뒤져 발견한 최진석 교수의 강의 이런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해 주었다.


최 교수는 <도덕경>의 대가라서 불경 강의는 그저 그럴 것이라 지레짐작했었다.

그런데 강의를 들을수록 역시 최 교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어느 한 가지에 도가 트면 다른 것에도 금방 도가 트는 모양이다.


<금강경>을 읽었을 때만 해도, 세상만사가 허망하다(凡所有相 皆是虛妄, 범소유상 개시허망)고 해서, 불교 세계관이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와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음공부를 하려다가 되려 마음의 독이 되겠다 싶은 의심과 근심이 들었었다


한데, 최 교수 불교적 삶이 허무주의나 염세주의가 아니라 연기법 공의 세계관통해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  참된 가르침이라 해석해 주었다.

 

<반야심경>에서 공 사상은 허무주의 빠져 무것도 하지 말고 마치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처럼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공의 작동원리 세상을 바라보는 혜안을 가르쳐 주고, 그 혜안을 가지고 생기 있는 삶을 영위하라 가르쳤을 뿐이다.




아주 오래전에 상영된 <아제아제 바라아제>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월드스타 강수연이 주연이다.

전체 줄거리는 가물가물하지만 <반야심경>을 읽으면서 머리를 떠나지 않는 장면이 있다


영화 속에서 강수연은 한동안 승려 려 수행하다 계한다.

이후 순탄치 못한 삶을 이어가던 중 간호사가 되어 역병이 창궐한 지역에 의료활동을 는 장면이 나온다.

시신이나 환자 몰골은 피고름으로 범벅이 되고 벌레가 끓을 만큼 어 들어가 보기만 해도 겨울 정도였다.

심지어 보통 사람은 그 모습을 보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식사를 못할 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어느 환자라도 자신의 몸처럼 열성적으로 돌보았다.

 식사 때가 되면 흉측한 환자옆에서 밥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를 볼 당시는 참 비위가 좋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이번에 <반야심경>을 읽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다.

주인공이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한 힘이 무엇이었는지 알만했다.

불교사상이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와 가까웠다면 그런 삶이 될 수 없을게 분명하다. 


반야심경 첫머리에 이 경의 핵심 경구가 나온다.


照見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오온이 공하다는 것을 비추어 보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런 구절도 나온다.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세상 모든 현상은 연기법에 따라 그때그때 잠시 머무는 것일 뿐 그 자체로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모든 감정은 실체가 없고 오로지 사람에게 잠시 머문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영화 속 주인공 강수연의 모습은 이 진리의 현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반야심경> 경구를 영화제목으로 정 이유 알듯하다.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산스크리트어음역하여 한자로 옮긴 주문이다.

소리 자체 우주적 기운을 담고 있다고 하니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주술적인 이라 폄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교라는 종교사회에서 사용하는 구호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우리말에도 "아자"나 "파이팅" 같은 구호가 있지 않은가.

굳이 번역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궁금하다면 이런 뜻으로 이해하라고 한다.


건너가세 건너가세, 피안의 세계로 건너가세,
모두 함께 피안의 세계로 건너가세,
  깨달음이여 만세!


매거진의 이전글 <금강경>을 읽고 듣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