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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Oct 19. 2023

딸의 첫 홀로 해외여행

작은 딸이 혼자 유럽여행을 가겠노라 제 엄마에게 말했다고 들었때부터 걱정 앞섰다.

언제부턴가 혼자 여행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다.

어릴 때부터 가족여행을 제법 다니고 아빠와 둘이서 여러 번 다녔으니 이제 혼자 외국 나갈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었다.

하긴 이제 20대 중반이니 어린아이처럼 엄마아빠를 따라다니는 여행보다 앞으로는 자기 주도적으로 여행하고 싶기도 할 터였다.




 20대 중반을 가로지르고 있는 딸은 이제 성인이니 제 용돈은 제 힘으로 벌고 싶어서였는지 여기저기 일자리도 알아보고 잠시 작은 회사에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아빠나 일가친척처럼 다정다감하고 제 입맛에 착 달라붙는 직장이 어디 있겠는가?

코로나 시국으로 정상적인 대학생활 못해봤을뿐더러 세상물정에 어둡고 몹시 내성적인 딸에게 비록 짧은 사회 경험이었지만 그 매운맛에 상처가 깊었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취업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다.


그런 딸이 그동안 모아둔 돈이 얼마 있었겠지만, 적지 않은 비용의 여행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눈치가 보이고 고민했을지 짐작되었다.

 



여행을 할 때면 어린아이 챙기듯 내가 알아서 이것저것 다 챙겼는데, 이제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니 대견스럽기도 했지만 걱정이 더 컸다.

다른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여행을 하면 부럽고 대단해 보였는데 막상 내 딸이 혼자 외지를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니 불안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혼자 가는 여행이 처음인 데다 과년한 딸이니 아빠 입장에선 물가에 내놓은 아기처럼 생각되었다.


그래서 평소에 알고 있던 자여행 전문 여행사에서 만든 단체 배낭여행을 권했다.

도시 간의 장거리 이동과 숙소는 여행사에서 마련해 주되, 도시 안의 일정은 자유롭게 개별적으로 알아서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멤버도 2030 세대로 제한하여 또래끼리 어울릴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인솔자가 있고 함께 어울려 다니니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낯가림이 심한 딸은 혼자 가는 자유여행을 원했지만, 엄마아빠가 걱정하는 기색을 봐서인지 아니면 우선 떠나고 보자는 심사였던지 며칠간 주저하다 이 여행을 택했다.




여행일정이 잡히고 이것저것 준비하는 딸을 보니 또 다른 걱정이 시작됐다.


우선 혼자 보름 가량을 지낼 짐이 든 큰 캐리어를 작은 체구의 딸이 끌고 다니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도시 간 이동이야 인솔자의 안내와 함께 전용 차량으로 움직이니 걱정될 게 없었다.

문제는 제몸뚱이만 한 캐리어를 공항까지 끌고 갈 수나 있을까, 수하물은 제대로 부치기나 할까 의문이었다.

무엇보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짐을 어떻게 찾을우려되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수하물 켄베이어에서 무거운 캐리어를 제대로 내릴 수나 있을지, 또 현지에서 만나기로 한 인솔자와 일행이 있는 장소까지 커다란 리어를 끌고 갈 수 있을지, 공항에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트를 찾아 수나 있을지 별라별 근심이 다 생겼다.


또 비행기 안에서 창가 쪽 좌석이라면 옆사람을 헤치고 화장실은 갈 수 있을지, 환승공항 전광판에서 환승게이트를 찾아 제시간에 찾아갈지, 궁금한 게 있으면 낯선 외국인에게 말은 걸 수나 있을지 별의별 소심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현관문을 나설 때부터 내 걱정은 행동으로 나타났다.

집 근처 공항리무진을 탈 때부터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딸의 행적을 추적했다.

퇴근시간대라 도로가 정체되어 늦지나 않을까, 버스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인터넷 운행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카톡으로 대화하며 체크인과 승수속상황도 확인했다.

물론 딸이 귀찮아할까 봐 슬쩍 물어보는 척했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늦게까지 TV를 보 비행기 이륙시간인 새벽 1시 반쯤 딸의 마지막 메시지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었다.

물론 아내와 큰 아이는 벌써 꿀잠을 자고 있었지만 말이다.

얼마간 잔 듯 만듯한 눈으로 환승공항에서 사진과 함께 자랑하듯 보내온 딸의 카톡을 보고 다시 한번 안도다.

그러면서 최종 도착지인 파리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인터넷을 통해 파리 날씨 등을 확인하며 딸 걱정을 계속했다.


이쯤이면 다 큰 딸인데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딸을 둔 아빠 누구나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모든 게 기우였다.

딸은 환승공항에서 탑승게이트부터 확인하고 남은 시간에 커피도 사 먹고 쇼핑도 하면서 여유 있게 공항을 즐긴다는 카톡을 받았다.

파리 공항에 도착해서는 수하물 컨베이어에서 짐을 내리려 낑낑대는데 낯선 외국인이 도와주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날 바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들렀으며 몽마르뜨 언덕에도 갔다고 수시로 카톡을 다.

관광은 여행사에서 배정해 준 조원들함께 하기도 하고 혼자 다니기도 한다고 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무척 즐거운 듯 느껴졌다.



이런저런 여정에서 내가 제일 걱정던 것은 스위스 일정이었다.

일정에 글라딩이 선택 프로그램으로 되어 있었다.

마음이 유약한 딸이 설마 선택할까 상상도 안 했었다.

하지만 딸은 망설임 없이 선택하여 창공 날고 있는 사진까지 보내주었다.

역시 젊음은 용감했다.


라노, 베니스,  피렌체 등의 이태리 여정을 거치는 동안에도 딸은 사진 속에서 아주 신나 보였고 마음껏 즐기는 듯했다.

내 걱정도 점점 희미지더니 삼사일쯤 지나갈 무렵엔 오히려 의 행적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딸의 안부를 확인할 요량으로 슬쩍슬쩍 뭘 하냐 묻곤 했는데 나중에는 무슨 재미는 짓을 하는지가 더 궁금했다.



일행과도 금방 친해져 스스럼없이 어울려 다닌다고 했다.

싱그러운 청춘들의 조잘대는 수다소리가 다 들리는 듯했다.

휴대용 전기냄비로 같이 라면을 끓여 먹었다는 둥, 입에도 대지 않던 술도 한잔 다는 둥 전한 딸이라고 믿기지 않는 깜짝 놀랄 짓도 사진으로 알려주었다.


돌아오는 귀국 공항에선 자기 캐리어가 28킬로나 나간다며 카톡다.

어찌 그런 현상이 발생냐고 놀라 했더니 너무 기념을 많이 샀다며 느스레를 떨었다.

내 걱정과는 달리 딸은 신나고 재미고 돈도 펑펑 쓰면서 나름대로 인생을 즐다.




장인의 기일, 처가로 가는 길에 아내가 말했다.

딸이 혼자 여행 갔다는 말꺼내지 말라고.

딸에게도 여행을 갔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카톡을 해두었다고 했다.

여행 기념품도 우리 가족 외에는 사 올 생각을 말라고 하면서.


큰애와 달리 명절이나 집안 행사가 있으면 언제나 엄마아빠를 따라나섰던 딸이었기에 같이 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는지 외가 친척들의 질문을 받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졸업한 지 제법 되었는데 아직 취업 하지 못처지에 여행이나 쏘다닌다는 걱정과 핀잔이 쏟아질 터였다.

도 딸이지만, 엄마아빠가 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비난 아내는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는 무엇보다 그러지 않아도 위축되어 있는 딸이 런 시선과 핀잔으로 상처를 지나 않을까 더 걱정되었다.

처가에만 가면 입을 거의 열지 않는 나로선 먼저 말을 꺼낼 리 없다고 안심시켰으나 속이 편치 않았다.

내 딸을 우리 부부가 알아서 키우고 보살피는데 주변 사람이 왠지 간섭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내의 바람대로 딸은 여행전후입도 뻥끗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만 제 엄마와 그런 얘기가 오가기 전에 이모들 줄려고 사둔 작은 기념품들만 뻘쭘하니 탁자에 올려놓았다.

시차에 시달리느라 얼마간 밤낮을 바꾸어 생활한 후 원래의 패턴대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학시절 코로나 시국이 한창이던 때였다.

1정도 학교에 나가는가 싶더니 그 이후로 비대면 줌수업을 받고 졸업했다.

그러니 친구를 사귀기는커녕 그 흔한 MT나 축제 같은 젊은 날의 낭만을 누릴 수 조차 던 시절이다.

더구나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어린 시절부터 친구도 몇 안돼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였다.

코로나 시국 이전이라면 대학생활 필수코스로 여겨지던 스펙 쌓기용 단기 어학연수나 교환학생 프로그램이라도 어떻게든 보내주었을 텐데 좋은 시절을 그냥 흘려보낸 셈이다.

졸업을 하고서도 취업은 고사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도 마땅찮은 시대니 얼마나 답답한 시간을 보내야 했겠는가.

또래부모세대보다 풍족한 경제환경에서 자랐지만, 어른으로 홀로 서려면 부모세대보다 벅찬 상황이기에  어쩌면 불행한 세대이기도 하다.

아빠로서도 늘 안쓰럽고 짠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기에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소중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여행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한 이유 중 하나다.


딸은 혼자 떠난 유럽여행을 통해 적지 않은 뭔가를 보고 들으면서 생각하는 바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또 같이 다닌 일행들과도 첨엔 서먹서먹겠지만 함께 먹고 자면서 보름간을 생활했으 또래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게 되었지 싶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은 현재 어느 위치에 있고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생각하는 계기가 을 것이다.

이제는 엄마아빠의 도움 없이 살아가야 하는 날이 곧 닥쳐오고, 혼자의 힘으로 어떻게 처신하여야 하는지도 느지 않았을까.


그것이면 되었다.


딸의 여행을 통해 나도 깨달은 바가 크다.

혼자 여행을 떠나보내고 나서 생겼던 나의 모든 걱정이 쓰잘데 없다.

어쩌면 이미 성인이 된 딸을 그동안 내 눈높이 기준으로 믿지 못했다.


딸은 나름대로 여행을 즐기다 왔듯이 앞으로 제 삶을 찾아 재미있고 힘차게 살아가리라 믿는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딸은 성인으로서의 삶이 이번 여행처럼 낯설고 불안하겠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금방 적응하리라 기대한다.

아직 어설퍼 보이겠지만, 스스로 배우고 터득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우리 부부는 옆에서 지켜보며 믿고 지원하 응원해 줄 뿐이다.

자기 삶 자기가 개척하 살아 내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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