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몇 해 전에 내가 타고 다니던 경유차를 폐차했다.
환경오염 저감을 위해 폐차를 하면 지원금을 준다기에 20년 가까이 타던 애마를 과감히 처분했다.
말년에 직접 운전해 나갈 업무도 없었을뿐더러 이래저래 드는 유지 관리비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시외나 시내나 대중교통이 거미줄처럼 잘 연결돼 있어서 굳이 자가용으로 다니지 않아도 편한 것도 이유였다.
아내와 딸들이 이용하는 소형차도 있었기에 급한 일이 생길 때면 내가 잠깐 이용해도 되었다.
아내와 딸들은 자동차를 거의 이용하지 않아 출고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운행거리가 3만 Km가 채 안된다.
그나마 내가 가끔 지방에 내려가거나 출근할 때 타고 갔기에 그 정도지, 그렇지 않았다면 계기판 숫자는 신차 수준이었을지 모른다.
주차장에 내려가 보면 뿌연 먼지가 소복이 쌓여있다.
주기적으로 관리가 필요하지만, 자동차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아내와 딸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나만 속을 태우며 한두 번 하다 보니 어느새 나의 일이 되었다.
우선 배터리 방전이 걱정되어 1주일에 한번 정도는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차량 상태를 느껴본다.
가끔 교외로 외식을 하거나 가족모임이 있을 땐 내가 운전을 담당하니 자연스럽게 주유비도 내 몫이다.
어쩌다 보니 엔진오일교체 등 주기적인 차량 정비와 자동차 검사도 내가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서류상으로만 아내의 소유이지 사실상 내가 주 이용자이자 관리자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급한 일이 생기거나 장거리 외출로 불가피할 때마다 나는 운전사로 전락한다.
심지어 반려견을 병원에 데려가고 물건을 실어 날라야 할 때마다 아내는 은근히 명령조로 부탁한다.
그럴 때마다 내 입에선 귀찮아서 한 마디가 절로 나온다.
"아! 이 애물단지~"
그렇게 나는 폐차한 경유차 대신, 아내의 소형차를 관리하는 자발적 집사가 되었다.
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옛날에는 부모보다 먼저 죽은 어린 자식을 ‘애물’이라 불렀다고 한다.
'애가 탄다'에서 처럼 창자를 뜻하는 순우리말 '애'와 한자의 '物'이 합쳐진 단어다.
자식이 죽으면 산에 묻지 않고 작은 단지에 담아 집 근처나 산기슭에 보관하던 풍습에서 ‘애물단지’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듯이, 단지를 볼 때마다 부모의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가겠는가?
여기서 의미가 확장되어, 버릴 수도 없고 가지고 있자니 속만 상하는 물건이나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진위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님의 심정처럼 애초에 애틋한 심정을 토로할 때 쓰이지 않았을까 짐작이 간다.
별로 소용도 없는 일이나 물건이 귀찮게 여겨질 때 내뱉는 말로 변질이 된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지 싶다.
어떻게 보면 <삼국지>에서 유래한 고사, '계륵(鷄肋)'의 의미와 비슷하다.
하지만, 먹으려니 살이 없고 버리자니 그 맛이 아깝다는 뜻의 계륵은 효용 가치에 대한 판단이다.
실속은 없지만 버리자니 아깝다는 다분히 계산적인 의미가 강하다.
그에 비해 애물단지는 귀찮긴 하지만 버리고 싶을 정도의 차가움보다는 감정적인 피로감을 호소하는 것에 그친다.
말하자면 오랫동안 쌓여온 정 때문에 쉽게 끊어낼 수 없는 끈끈한 관계가 근저에 깔려있다.
애정이 없다면 이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우리 집에는 이런 의미의 살아있는 애물단지가 하나 있다.
12살 먹은 우리 반려견은 핏덩이 때 데려왔는데 아내와 딸들이 아기 키우듯 보살펴왔다.
이놈이 이제는 스스로도 자기가 사람인 지 강아지인지 정체성이 형성되어 있지 않는 듯하다.
기본 사료에 간식, 온갖 외출복, 다양한 장난감, 배변패드 등 아이 한 명 키우는 수준이니 말이다.
거기다 어릴 때부터 주기적으로 하는 예방접종에 뭔가 이상이 생겼다 싶을 때마다 동물병원을 출입한다.
이제 사람나이로 치면 벌써 80대가 가까워졌다고 하니 완연한 노년에 접어들었다 할 수 있다.
몇 해 전에 앞다리 어깨 관절이 닳아 인공관절로 교체하는 정형외과 수술을 받았다.
이빨이 흔들려 치과에 가서 이를 뺀 적도 있고, 백내장 증세가 있어 안과에도 주기적으로 다닌다.
요즘 동물병원도 이렇게 세분화되어 있는 줄 몰랐다.
사람 한 명 부양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일들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외출할 때다.
가족 네 사람 중 한 명이 집에 있으면 괜찮은데, 모두 약속이 있으면 누군가는 귀가를 서둘러한다.
어두운 집안에서 주린 배를 견디며 애처롭게 가족을 기다리게 할 수 없다는 걱정에서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 완전체의 여행은 언감생심이다.
누군가 한 사람은 집에 남아 돌봐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펫호텔이 있긴 하지만 거길 가더라도 숙소만 해결될 뿐이다.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음식점이나 애견 카페가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강아지를 대동하고 나설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다.
여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인 맛집 투어는 거의 불가능하다.
주로 호텔에서 배달음식이나 길거리 음식으로 때우는 수가 많다.
간혹 야외 테이블이 있는 음식점을 발견하면 주인에게 사정해 바깥에서 먹어 본 적도 있다.
그마저도 날씨가 뒷받침해 주어야 가능하다.
그러니 숙박 여행은 고사하고 당일치기 여행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산책시키는 일도 만만찮다.
배변봉투와 화장지, 물휴지 등 치다꺼리를 하려면 만반의 사전 준비를 해야 한다.
녀석의 산책 코스는 사람이 정해 놓지 않았다.
자기가 즐겨가는 코스가 따로 있다.
눈여겨보았더니 코를 끙끙대며 냄새를 맡는 지점과 자신의 오줌을 휘갈기며 영역을 표시하는 곳이 있는 듯했다.
그게 사람이 블로그나 SNS의 게시글을 확인하고 댓글을 다는 것과 유사한 행위라는 걸 나중에 딸이 가르쳐 주었다.
자신의 코스대로 따라오지 않으면 목과 다리에 힘을 실어 뻗대는 바람에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사람이 포기하고 만다.
기분 전환 삼아 따라나서는 산책길이 사람에겐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어렸을 때는 매일 산책을 나갔지만, 요즘은 다리도 부실하고 체력도 달리는 듯해서 이틀에 한번 꼴로 나간다.
이 놈이 나를 잘 따르지 않아 다행이다.
나를 제외하고 아내와 두 딸이 번갈아 산책을 나간다.
당일 담당자가 일이 생기면 누군가 대신하기도 한다.
사실 직장에 다니는 두 딸이 자주 아내에게 미루는 날이 많다.
집안일을 하다 편히 쉬고 싶은데 대신해 달라는 카톡을 받으면 아내의 입에서 자동적으로 한마디가 흘러나온다.
"어이구, 이 애물단지~!"
이처럼 온 가족의 손을 타야만 유지되는 녀석의 일상을 보며 혀를 차다가도,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된다
요즘은 동절기라 현장에 나갈 일이 거의 없다.
동호회나 동창회 등 모임에 나가기가 시큰둥해 하루 종일 집에 붙어 있는 날이 대부분이다.
사람 만나는 일이나 외부 활동에 소극적인 성격이 정년퇴직 후에 더 심화된 것 같다.
외출이라고 해봐야 점심 후에 나서는 산책이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일이 전부다.
어쩌다 내가 활동하는 위원회에 참석하거나 현장에 다녀오는 일이 있지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다.
그러니 외출하는 날은 바깥세상이 생소하고 낯설어 보이기도 한다.
거의 산중에 칩거하는 듯한 이런 생활이 불편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오히려 내 성정에 부합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직장 생활하는 동안 꿈꾸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아내의 입장이다.
하루 종일 집에만 붙어있는 남편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를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외출과 모임을 다니는 듯싶지만 어디 남편 눈치 안 보는 아내가 있을까?
끼니때가 되기 전에 귀가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마음이 짐작이 된다.
더구나 두 사람 모두 집에 있을 땐 하루 세끼를 챙겨야 하는 쪽은 아무래도 아내다.
나야 어쩌다 기분 내듯 '오늘 점심은 내가 차려볼게.'라거나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을까?'로 대신할 수 있겠지만 가사의 주도권을 쥔 아내의 입장에서 아무래도 신경이 더 쓰일 터이다.
집안일을 남일처럼 여기는 삼식이 남편이니, 아내가 볼 땐 12살 먹은 노견이나 나나 손 많이 가기는 매한가지일지 모른다.
그러니 쌓인 집안일로 정신없는데, 강아지 산책에다 남편의 삼시 세끼까지 챙겨야 하는 날엔 속에서 이런 말이 목까지 치밀지 않을까?
"어휴~ 애물단지"
이럴 땐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