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밥을 해 먹이는 이유

by B급 인생
엄마에게는 아마도 혹독한 세상살이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중략) 그래서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자식들을 집으로 데려가 끼니를 챙겨 주는 것뿐이었으리라. 어떤 의미에서 엄마가 우리에게 고기를 해먹인 것은 우리를 무참히 패배시킨 바로 그 세상과 맞서 싸우려는 것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몸을 추슬러 다시 세상에 나가 싸우라는 뜻이기도 했을 것이다. (천명관, <고령화 가족>, 문학동네, 2012.4, 198쪽)


연로하신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자식들에게 따뜻한 끼니를 챙겨 주는 것뿐일 것이다. 1년에 부모님을 뵈러 몇 번 가진 않지만, 갈 때마다 엄마는 이것 좀 먹어봐라 저것 좀 먹어봐라 귀찮게 하신다. 어떤 땐 금방 밥을 먹었는데도 뭘 내오시면서 타박하신다. 그렇게 안 먹으니 살이 안 찐다고...(사실 나는 얼마 전 건강검진 결과 경증 비만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엄마 곁에서 마음 편히 쉬고 싶은데, 들락날락 자꾸 이러시니 짜증이 막 난다. 게다가 서울로 올라올 땐 언제 싸놓으셨는지 여러 반찬거리며 애들 간식거리를 수북이 내놓으신다. 까만 비닐봉지, 하얀 비닐봉지, 노란 비닐봉지... 뭘 들고 다니기 싫어하는 걸 뻔히 알면서 매번 이러신다. 심지어 중간에 차에서 먹으라고 과자며 음료수며 잔뜩 사다 두셨다. 주로 촌스러운 것들 일색으로.


나는 마침내 버럭 화를 낸다. 먹지도 않을 걸 뭐 하러 돈 들여 샀냐고...(내심 넉넉히 드리지 못한 용돈도 생각이 나고...) 이렇게 모처럼의 만남은 서로 마음이 상한 채로 마무리 짓고 귀경한다. 그리고 나는 며칠간을 가슴속에 돌덩이 하나 매달고 후회하며 끙끙거린다. 아마 엄마는 더 심한 가슴앓이를 하셨을 것이다.


"헤밍웨이가 아기였을 때 완벽한 문장으로 처음 한 말은 '나는 버펄로 빌을 몰라요'였다고 한다.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처음 한 말은 '개가 불쌍해'였다고 알려져 있다. (...) 그렇다면 내가 완벽한 문장으로 처음 한 말은 뭐였을까? (...) 그것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맘마."


<고령화 가족>의 말미에 나오는 글이다.


며칠 후면 추석이다. 이번에 내려가면, 엄마가 내오시는 대로 마구 먹고 올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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