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어야 하나?

강창래의 <책의 정신(2013)>을 읽고 나서

by B급 인생

도서관에 가면 즐겁다. 읽고 싶은 책이 무지하게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내게 한없이 방황하는 미로 속이기도 하다. 대출 권수에 맞추어 읽을 책을 엄선하다 보니 서가 사이를 헤매기 일쑤다. 역사서나 인문서적도 읽고 싶고, 소설이나 에세이도 읽고 싶다. 신간을 빌리고도 싶고 아직 못 읽은 스테디셀러 북도 빌리고 싶다. 그러다 결심한다. 고전을 빌리자.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책을 읽자.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대출해 온 책을 읽다 보면 얼마 못가 후회가 막심하다. 어떤 책은 너무 어렵고 어떤 책은 너무 유치하다. 이 책은 너무 어려워 이해가 안 되네. 내 지적 수준이 너무 낮은 건가? 이쯤에서 포기할까? 끝까지 읽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 저 책은 너무 뻔하네. 내가 행간의 뜻을 못 읽어내나?


책 읽을 생각은 이미 떠나고 온갖 잡념이 다 든다. 그러다 이 책들을 누가 고전목록에 넣었을까? 저 책들은 언제부터 고전으로 분류되었을까? 하는 의심으로 번진다. 마침내,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고전이라는 이유만으로 두 번 다시 책을 고르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나 같은 불량(?) 독서인을 위해 강창래의 <책의 정신(2013)>은 많은 사실을 전해주며 위로를 해준다. 이 책은 '책에 관한 책', 말하자면 '메타 북'이다. 고전에 대한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무참하게 버린다. 주관적 견해를 넘어 확실한 팩트 체크도 해주니 꽤 득력이 있다. 이 책은 표지를 보았을 때부터 한번 읽어보라 날 유혹했다.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이라고 붙인 부제가 뭔가 숨겨진 음모를 까발리겠다는 투였다. 실제 내용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가령 이렇다.



프랑스 대혁명은 음란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혁명의 사상적 밑바탕을 제공한 루소 같은 당대 지성들도 음란소설을 많이 썼다고 한다. 이런 소설들을 통해, 신분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욕 앞에선 누구나 똑같다는 생각을 통해 평등사상을 가르쳤다는 거다.


또 이런 발칙한 도발도 있다. 고전 중의 고전 <변명>이나 <논어> , 심지어 <신약성서>까지도 과연 진짜 성현의 말씀인지 아니면 후세 사람들의 생각인지 불분명하단다. 소크라테스, 공자, 예수가 직접 책을 쓰지 않았으니 의심을 가질만하다. 그 성현들의 사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제자나 후학들이 자신만의 기억에 의지해서 남긴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성현의 말씀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각색하지 않았을 리 없다. 특히 플라톤의 저작들을 두고 "소크라테스의 문제"라고 명명했다.


인류사를 전환시킨 과학분야 저작들도 그 명성을 의심한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저서나 과학사의 깔때기라 불리는 뉴턴의 저작은 너무 난해하여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도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반 대중이야 읽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지성인이라면 한 번쯤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고전은 누가 정하였나? 고전은 꼭 읽어야만 하나? 고전에서 말하는 가치가 진리인가? <책의 정신>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제기하게 되는 질문들이다. 저자는 나같이 수준 낮은(?) 독자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고 해도 누구에게나 좋은 약은 없다. 특정 시점의 나에게 맞는 약이 있을 뿐이다. 정말 좋은 약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잘 받아들이지 못하면 독약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꼭 고전을 읽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고 해도 내가 잘 소화하고 잘 받아들이면 최고의 약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이라면 무슨 책이든 상관없다.

게다가 어차피 이 세상 모든 책은 하나하나가 다 하나의 편견이다. 인간은 모두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들을 뿐 아니라 쓰고 싶은 것만 쓴다. 사실은 없다. 해석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그 해석조차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는다.(8쪽)


이제 너무 고상한 책만 읽으려는 허영을 버리자. 고전이라는 명성에 너무 현혹되지 말자. 내가 공감하고, 울림과 함께 위로를 주는 책이 내겐 최고의 고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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