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집에 들어온 난 화분 몇 개가 있다.
덕분에 없었다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이 생겨 처음엔 몹시 귀찮았다.
적어도 한 주에 한 번은 이놈들을 물에 푹 담가 목마름을 달래주는 게 어느새 내 몫이 되었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나 신비로움 따위의 고상한 이유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어서, 그저 건성으로 하는 집안일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한 때 나무의사 공부를 하면서 식물에 대한 기본지식을 터득했지만 실전 경험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정성을 들일 정도로 애착도 없어서, 그 녀석들에게 내가 한 일이라곤 수도꼭지에 꽂은 호스로 화분 여기저기에 물을 적셔 주는 게 전부였다.
그 난 화분들 중에 일 년에 한 번씩, 잊을만하면 꽃을 피워 내는 녀석이 있다.
대여섯 개의 화분들이 우리 집에 온 지 모두 10년 안팎이 되었는데, 유독 이 녀석만 삼사 년 전부터 꽃을 피운다.
이 녀석에게만 영양제를 따로 준다거나 특별히 정성을 기울인 것도 아닌데 그렇다.
나는 '츤데레'라는 시체 말의 뜻을 근자에나 비로소 알게 되었다.
혹자가 내게 이 말을 쓰기도 했는데, 그땐 비꼬는 듯한 어감을 느끼며 놀림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알고나서부터 투박한 애정표현의 대명사인 나 같은 경상도 사나이와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고 여기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이 녀석을 츤데레라고 부르는 게 딱일지도 모르겠다.
꽃을 피운 첫해엔 그러려니 했다.
다른 화분도 기다리면 응당 꽃이 피리라 믿었다.
하지만 몇 해 동안 저 혼자 저리 꽃을 피우니 생각이 달라졌다.
참 대견하고 고맙다.
사나흘은 꽃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향기가 온 거실로 번지리라.
같은 조건의 같은 대접을 받는데도 저만 꽃을 피우다니 한편으론 미안하다.
혼자서 저 꽃을 만들어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애처로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딸아이가 먼 곳으로 시집가서 혼자서 산고를 견뎌내고 손주를 낳는다면 이런 심정이 아닐까 싶어 물끄러미 딸아이 얼굴을 쳐다 보기도 했다.
그러다 오래전에 사두었던 영양제가 생각나서 슬며시 꽂아 주었다.
꽃을 피우느라 기진맥진하였을 터이다.
그게 기운을 차리게 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다.
그 덕분에 다른 녀석들도 오래간만에 영양분을 얻어먹게 되었다.
이래저래 주변에서 이 녀석의 덕을 많이 본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이번에도 특별대접받은 게 하나도 없다.
그래도 주인아저씨가 얼마나 고맙고 미안해하는지 넉넉히 알거라 믿는다.
우린 츤데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