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의미

by B급 인생

글쓰기에 대한 내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한동안 책 읽기에 몰두하였다. 꾸준히 책을 읽다 보면 다시 글감 곳간에 양식이 차곡차곡 채워 지리란 희망에서였다. 한데, 이번엔 독서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글을 보고 책을 멀리하였다. 글쓴이가 책을 읽지 말라는 취지로 쓴 글이 아닐진대 나는 이 글을 핑계 삼아 독서마저 게을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 그러려니 지내다 이러다간 쓰지도 읽지도 않게 되진 않을까 와락 걱정이 되었다. 마침내 그 글들이라도 베껴 써보기로 하였다. 그러다 보면 글쓴이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겠거니와 오랫동안 굳어있던 내 손가락 근육들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키보드 위로 나아가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먼저 강유원 선생의 글을 그대로 옮겨본다.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절대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 동안 살아있는 자연만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퍼덕퍼덕 움직이는 세계가 있으니 죽어 있는 글자 따위는 눈에 담지 않는다. 책이 그들의 삶에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으며 그런 까닭에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과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책을 읽지 않는 그들은 자연과 자신의 일치 속에서 살아가므로 원초적으로 행복하다. 또한 그들은 지구에게도 행복을 준다. 지구가 원하는 것은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순환의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인데 그들은 나무를 베어 그걸로 책을 만들고 한쪽 구석에 쌓아놓는, 이른바 순환의 톱니바퀴에서 이빨을 빼내는 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생을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나 얼룩말처럼 살다가 어머니인 대지의 품에 안겨서 잠든다. 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의 자기반성도 하지 않는다. 마치 사자가 얼룩말 잡아먹기를 반성하고 남은 생을 풀만 뜯어먹으면서 살아가기로 결심하지 않는 것처럼,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오늘날의 사람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책을 읽는 이는 전체 숫자에 비해서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대다수 사람들이 행하고 있다 하여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며, 압도적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소수의 책 읽는 이들이 벌이는 일종의 음모임에 틀림없다." (강유원, <책과 세계>, 살림 지식총서 085 3쪽, 표지)


정민 선생의 글도 그대로 베껴보자


"책 읽기의 마지막 단계는 활자를 넘어서는 독서다. 우주만물이라는 텍스트를 한 권의 책으로 보아 의미를 읽어내는 살아있는 독서다. 독서법의 완성단계다. (중략)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삼라만상이라는 이름의 이 책을 읽을 줄 모른다. 그저 지금은 아무짝에 쓸모없게 된 낡은 책에 밑줄을 긋고 소리 내어 외우면서 책을 읽는다고 말한다. 이런 것은 죽은 독서다. 술에 취해 죽을 작정이면 빈속에 강술을 들이마셔야지, 왜 묽은 술과 술지게미만 배 터지게 먹고 있느냐고 연암은 타박한다. 삶의 정수를 통째로 들이마시고, 낡은 지식이나 죽은 문장에 더 이상 얽매이지 말라는 뜻이다.(중략)


옛날의 작자는 모두 죽고 없으니, 내가 그들의 책을 읽고 얻은 깨달음은 그들과 함께 나누려 해도 방법이 없다. 하지만 독서는 문자로 된 텍스트를 읽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만나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그들이 무심히 던지는 한마디 말, 그 어느 것 하나 지극한 문장이 아님이 없다. 내 눈앞에 펼쳐진 일상이라는 텍스트 속에서도 나는 옛사람의 책에서 발견하는 것 못지않은 깨달음과 수시로 만난다. 만날 때마다 기쁘고 즐거워서 그저 있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죽은 옛사람을 애석해할 것이 아니라, 내 눈앞의 무수한 이름 없는 작가들의 살아있는 텍스트에 귀 기울이고 눈길을 주어, 내 삶의 자양분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가 아니겠는가? 홍길주는 이런 취지에서 “문장은 다만 독서에 있지 않고 독서는 다만 책 속에 있지 않다. 산천운물(山川雲物)과 조수초목(鳥獸草木)의 볼거리와 일상의 자질구레한 사무가 모두 독서다.”라고 말했다.(중략)


하늘과 땅 사이에는 수억만 권의 책이 쌓여있다. 그런데 이는 불로 태워 없앨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종이 위에 쓰여진 것도 아니요, 활자의 숲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살아 있는 책, 펄펄 뛰는 텍스트를 읽을 때 비로소 우리의 독서는 완성된다. 책은 왜 읽는가?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고, 모르던 것을 알게 되며, 그 결과 내 삶을 향상시켜 주기 때문이다. 독서가 이런 기쁨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저 책장을 들춰 그 안에 담긴 활자를 읽었다 하여 그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이 나의 오성을 활짝 열어주고,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주며, 향상의 욕구를 일깨워 준다면, 비록 책을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독서행위는 문자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다. 사회 현상이나 시사적 주제를 분석하여 그 행간을 짚어내는 일 조차도 독서 아닌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정민,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 태학사, 45-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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