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강좌에 나가 공부한 적 있다.
글쓰기 기초를 배울 수 있기도 하거니와 선생님으로부터 조언을 받아보고 싶어서였다.
메모 형식으로 간간이 내 생각을 글로 옮겨보긴 했지만 내 글이 글이라고 할만한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며칠간 인터넷 검색 끝에 꽤 괜찮아 보이는 강좌를 발견했다.
강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는데, 내겐 생각보다 좀 벅찼다.
선생님이 던져주시는 주제로 글 한 편을 써서 다음 시간에 발표하면 다른 수강자들의 의견과 선생님의 첨삭지도를 받는 정도였지만 그게 만만치 않았다.
주제는 내가 가장 외로웠을 때, 삶에 큰 영향을 준 어릴 적 사건, 내가 가장 슬펐을 때, 이런 것들이었다.
얼핏 평범한 주제인 듯한데도 막상 쓸려고 하니 매번 막막했다.
더구나 수강생들이 나름 글 좀 써본 사람들이라 발표 때 창피당하지 않으려면 나도 기본은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일주일 내내 붙들고 끙끙대곤 했다.
글솜씨는 둘째로 치고, 그런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한 바 없이 살아왔기에 몇 줄 쓰고 나면 더 이상 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노리는 바가 바로 그 점인 듯했다.
글을 쓰면서 자기 성찰 과정을 거쳐 치유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게 강좌의 보이지 않는 의도 같았다.
몇 주를 다니다 보니, 나의 내면세계에 깊숙이 들어가 관찰해보면 의외로 할 말이 많다는 걸 경험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워지지 않고 잠재의식 속에 깊이 새겨진 사건들을 소환하는 과정을 거치곤 했다.
처음엔 수강생들 앞에서 자기 글을 큰소리로 읽어야 한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다.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글을 쓰면서 자기 검열과정이 작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초고를 작성하느라 이것저것 쓰다 보면 스스로에게 먼저 허심탄회하게 고백하지 않고서는 글이 제대로 흘러나오질 않았다.
생각나는 대로 솔직히 쓰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대목에서는 감정조절이 안 되는 순간도 많이 조우했다.
울컥하기도 하고 회한에 젖기도 했다.
후회하기도 하고 화가 나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부분을 숨기느라 우회적 표현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글을 마무리하고 나면 속이 후련했다.
이런 걸 카타르시스라 부르나 보다.
첫 시간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글 쓰는 사람은 어떤 면에선 노출증 환자'라는...
과제를 거듭할수록 그 말의 의미가 점점 더 선명해져 갔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진정성 있는 글이 나올 수가 없다는 의미다.
진정성 없는 글은 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내면 깊숙이 들어있는 나의 아픔이나 슬픔, 아쉬움이나 욕망의 응어리는 결국 세상 모든 사람들의 것과 동질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문학적 수사나 배우려 했던 나는 글쓰기의 보석 같은 가치를 깨달았다.
그동안 주로 독서를 통해 삶을 성찰하고 내가 서있는 지점의 좌표를 확인하려 애썼다.
그걸 밑거름 삼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갈 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글쓰기 공부를 하면서부터 그게 반쪽짜리 공부였음을 알게 되었다.
타인의 글을 통해 나를 안다는데 한계가 있었다.
글쓰기를 통해 나머지 반쪽 공부를 메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독서가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대비시켜 보는 공부였다면, 글쓰기는 나를 성찰해서 재발견하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면에서 어쩌면 그 이후에 쓴 내 글들은 나의 고해성사였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내 속내를 허물없이 꺼내 놓을 수 있는 용기가 지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