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둥, '부자가 천국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둥 돈을 가벼이 여기라고 배우며 자랐다.
그러니 부자 놀부보다 가난한 흥부가 복 받는 이야기를 당연한 삶의 가치로 받아들였다.
재벌을 별로 존경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이런 풍조와 무관하지 않다.
좀 다른 차원이지만 부동산 투기로 '졸지에' 부자가 된 졸부는 경멸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마음속 깊은 곳에선 너도나도 부를 향한 끝없는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동료들이 주로 나누는 대화 주제도 주식동향, 부동산 시세, 재취업 정보다.
자녀 결혼이나 부모상 같은 집안 대소사를 웬만큼 치러 크게 돈 쓸 일이 없는 사람조차도 여전히 재테크나 돈벌이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다.
은퇴 후에는 먹고사는 문제보다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살라고 하는데 그러질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 기저에는 퇴직 후에도 혹시 모를 불행한 사태에 대한 불안과 생계수단이 없어도 지금까지 살던 대로 살려는 욕망이 깔려있다.
퇴직은 하더라도 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더 벌어두려는 심사다.
한편으론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로 한몫 잡은 사람을 천민자본주의의 자식이니 졸부니 하며 손가락질해도 자신 역시 주식이나 부동산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는 태도가 우리의 본모습이다.
우리 사회에서 봉급쟁이가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외에는 일거에 큰돈을 벌 수 있는 재테크 수단이 거의 없다.
기본적인 생계비와 자녀 교육비 등 필수 지출비를 제하고 나면 여유 자금이 거의 없기에 투기성 재테크가 매력적인 부의 축적 수단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우리 세대보다 이재에 밝은 지 일찌감치 재테크에 성공해 돈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파이어족을 꿈꾼다.
회사에서도 젊은 사내부부가 느닷없이 동반 퇴사한 일이 있었다.
한꺼번에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긴 것도 아닌데 부부가 같은 시기에 생계수단인 직장을 함께 그만둔 이유를 두고 별의별 소문이 무성하였다.
한참 후에 부부와 가까웠던 직원에게서 흘러나온 바에 따르면 비트코인 투자로 한몫 단단히 잡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파이어족이라는 꿈을 실현한 사례다.
이를 두고 젊은 사람이 신성한 직업의식을 저버렸다고 힐난하기보다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부러워하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이쯤 되면 나 같은 꼰대들이 '돈보다 중요한 게 많다'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현실에선 별로 소용이 없는 셈이다.
어찌 보면 없는 자들이 자존심을 지키려는 자위의 방편으로 만들어낸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라는 어느 영화의 대사는 없는 자들의 알량한 자존심을 나타내는 대표적 언사다.
일면 없음을 감추고 싶어 하는 자의 자격지심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현실에서는 돈이 없으면 가오도 없어진다.
우리의 삶이라는 게 그렇다.
웬만큼 재력가가 아닌 이상 평범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웬만하면 돈으로 해결된다.
이렇게 말하면 물신주의니 물질만능주의니 하며 폄훼하겠지만, 돈이 삶의 빛깔을 좌우하는 요술방망이일 때가 숱하다고 말하면 논리의 비약일까.
오죽하면 오래전 어느 인질범이 체포되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괜히 '무전유죄 유전무죄'라 절규했겠는가.
'돈으로도 할 수 없는 게 많다'는 말은 기실 돈 걱정 없이 사는 재력가에게나 적용되는 말이지 싶다.
있는 자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높은 단계의 욕구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도 따지고 보면 그 밑바탕엔 경제력이 전제되어야 현실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1단계 생리적 욕구
-2단계 안전 · 안정의 욕구
-3단계 사회적 욕구
-4단계 존경의 욕구
-5단계 자기실현의 욕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어서 기본적인 욕구도 해소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돈조차 없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웬만큼 버는 평범한 시민이야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돈걱정 없이 하고 싶은 바를 맘껏 하며 살 수는 없다.
빠듯한 월급을 잘게 쪼개어 미래를 위해 저축도 하고, 자녀 교육비와 먹고 자고 입기 위한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오히려 빚만 생기기 십상이라 어떻게 해서던지 생활비를 줄이려고 애쓴다.
있는 자가 갈망하는 저 높은 수준의 욕구를 언감생심 바라볼 수 없는 형편이다.
우리 귀에는 '돈으로도 할 수 없는 게 많다'는 말이 그저 있는 자의 사치스러운 투정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돈으로도 할 수 없다는 대표적인 욕구가 사랑이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그까짓 사랑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는 것쯤은 웬만큼 살아본 자는 안다.
배고파 죽을 지경인 사람은 언제든지 사랑을 배신할 개연성이 부유층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요즘 3포 세대니 5포 세대니 부르는 젊은이들이 아예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며 살겠는가.
일단 먹고사는 걱정이 없는 사람은 지고지순한 사랑에 매달릴 순 있지만 주린 배를 안고 사는 사람이 사랑 따위에 눈 돌릴 정신은 없다.
반대로 풍족한 사람은 같은 조건이라면 사랑을 성취하기에 훨씬 유리하다.
고도의 정신적 사랑을 갈구하는 상대가 아닌 다음에야 선물공세를 펼치는 사랑이 말로만 하는 고백보다 상대의 마음을 얻기 수월하다.
'곳간에 인심 난다'는 말도 그런 측면을 담은 속담이다.
누구나 내게 베풀어 준 자들에게 마음이 기울지는 법이다.
의도가 어찌 되었던 내가 배고플 때 도와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평생 잊지 못한다.
그러니 베푼 자가 뭔가를 요구할 때는 사랑이나 충성을 바치는 게 보통 사람의 예의이고 보답이며, 그러지 못하면 배신자라 비난받는다.
이를 두고 돈에 팔려 물질만능주의에 굴복했다느니 하는 비난은 성급하고 순진한 처사이다.
인간의 이런 취약성을 파고드는 저급한 노림수가 뇌물이라 하겠다.
퇴직을 앞두고 있으니 재취업이 걱정된다.
주변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재취업했다는 소문이 들릴 때마다 마음이 다급해진다.
혹자는 말한다.
평생 벌어놓고 뭘 또 벌려느냐고.
있는 사람이 더 욕심으로 부리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평범한 월급쟁이로 몇십 년 살았지만 퇴직할 때가 되니 다 갚지 못한 대출금을 낀 집 한 채 달랑 남았다.
그동안 먹고사느라, 애들 공부시키느라 돈을 모을래야 모을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내 또래들은 다 그렇게 살았다.
자식들 일찌감치 결혼시키고 애석하지만 부모님도 이미 여읜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다.
큰돈 드는 집안 대사는 퇴직 후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부조금을 챙길 수 있는 현직에 있을 때 집안 경조사를 다 치른 사람을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뤄도 정승이 죽으면 썰렁하다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높아지는 취업문턱에 대학을 나온 자식은 늘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제 갈길을 찾을 때까지 품 안에 보듬고 살아야 한다.
예전보다 훨씬 길어진 수명으로 아직도 정정하신 부모님은 큰 축복이지만 늙은 자식 눈치보느라 어깨가 늘 쳐지셨다.
웬만큼 벌어놨다손 치더라도 퇴직을 하고 나면 들어오지는 않고 나갈 돈만 생길 터이다.
언제부턴가 각종 재테크 책을 사보는 아내가 한심스러웠는데, 퇴직이 성큼성큼 다가오니 아무 말도 못 붙이겠다.
아침저녁으로 꼬박꼬박 밥을 챙겨주니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