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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May 18. 2022

삶의 목적

아주 오래전에, 이이름은 잊어버린 어느 문예 잡지에서 읽은 이야기이다.

잡지에 실렸던 글을 그대로 복기할 순 없지만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색해 본다면 대략 이렇다.




한시도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아온 어느 성공한 사업가가 이만하면 됐다 싶어 장기간 휴가를 떠났다.

사람 틈바구니에서 전쟁하듯 살아온 그는 조용한 곳에 가서 한동안 푹 쉬다 오고 싶었다.

수소문한 끝에 사람이 잘 찾지 않는 산골 오지를 발견하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그곳으로 갔다.

오랫동안 바쁜 일상을 보냈던 그는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하루는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좀 먼 곳까지 가게 되었다.

그가 발길을 멈춘 곳은 산속에 울창한 나무로 둘러 싸인 조용한 호수였다.

호수의 풍광과 분위기가 맘에 든 사업가는 그 이후로도 매일 같이 산책 삼아 그곳까지 가서 쉬다 오곤 했다.


그곳에는 갈 때마다 낚시꾼 한 사람이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낚시꾼은 물고기를 잡으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고 고요히 호수를 쳐다보며 명상하듯 시간을 보내곤 했다.

게다가 하루에 꼭 한 마리 물고기만 낚으면 낚싯대를 거두고 돌아갔다.

몹시 궁금해진 사업가는 어느 날 낚시꾼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어디 사시나요?"

"저 산 너머 오두막에 삽니다."

"이곳에 오래 사셨나요?"

"네, 나고 자란 곳입니다."


사업가는 매일 걸어오는 길에 얼핏 보았던 산아래 허름한 오두막을 떠올렸다.


"왜 하루에 물고기 한 마리만 잡아서 가시나요?"

"한 마리면 하루 반찬거리로 충분합니다."


사업가는 평생을 허름한 오두막을 벗어나지 못하고 곤궁하게 사는 낚시꾼이 측은했다.


"좀 많이 잡아서 읍내에 나가 파시면 좋을 텐데요?"

"그래서 뭘 하려고요?"

"여유 돈이 생기니 모아서 암수 닭 한쌍을 사서 키우시면 달걀을 낳을텐데 그걸 내다 팔면 더 많은 돈이 생기는데요."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기나요?"


모든 일을 돈 버는 일로 바라보는 사업가는 낚시꾼이 답답하기 시작했다.


"그 돈으로 암수 돼지 새끼 한 쌍을 사서 키울 수 있잖아요. 그러면 나중에 새끼를 치면 더 큰돈이 생긴 답니다."

"그 돈으로 뭘 하게요?"


사업가는 꽉 막힌 낚시꾼의 말에 슬슬 짜증이 났다.


"그 돈으로 송아지도 살 수 있고 송아지가 자라면 새끼를 쳐서 여러 마리로 늘릴 수 있잖습니까? 잘 되면 목장을 차려서 꽤 큰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 돈으로 노후에는 아무 걱정 없이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즐길 수도 있을 겁니다.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낚시도 맘껏 하실 수 있고요"


눈만 껌벅껌벅하던 낚시꾼이 한참 동안 사업가를 바라보더니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제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데요"




출근길 복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데 누군가 닫힘 버턴을 눌렀는지 내가 완전히 타지도 않았는데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몹시 바쁜 사람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

몇 개 층을 내려가다가 멈춰 누군가 타고 있는데 이번엔 맨 앞에 섰던 내가 닫힘 버턴을 습관처럼 눌렀다.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그냥 바빴다.


큰길에 나섰더니 뛰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파란 신호등이 바뀌기 전에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서였다.

남은 시간이 5초도 안 남았을 때쯤에는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저 멀리서 뛰어오는 사람도 수두룩했다.

나는 안정권에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지하철 역에도 다들 뛰고 있었다.

멀리서 전동차가 도착한다는 음악소리가 번져왔기 문이었다.

그 차를 놓치더라도 고작 1분 후면 후속 차가 도착할 텐데 한 사람이 뛰니 다른 사람들도 뛰었다.

내 팔을 후려치면 앞질러 가는 사람도 있었다.


환승역에 도착해 갈아타고 통로를 지나는데 매달려 있는 안내 스크린에서 1분 후에 바꿔 탈 열차가 도착한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주변에서 뛰기 시작했다.

나도 마음이 급해졌다.

뛰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뛰니 발걸음이 빨라졌다.

저만치 앞서가던 여학생에게 다다르니 핸드폰을 보며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좌우로 사람들이 북적여 앞질를 수가 없다.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을 만큼 답답했다.


왜 그렇게 다들 아침부터 뛰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왜 덩달아 조급했었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일상은 무엇 때문에 바쁘게 돌아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지구의 자전 속도가 시속 1,300Km가 넘고 공전 속도가 100,000Km가 넘는다고 하니 그런 것일까?





우린 뭘 위해 사는 걸까?

왜 바쁘게 살아야 할까?

뛰더라도 이유나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오래전에 필사해 두었던 문구가 생각나서 들춰보았다.


수줍음이 많고 온화한 성격의 또 한 남자는 출장을 다닐 때마다 시오랑의 책 가운데 아주 짧은 문장들로 쓰인 책 한 권을 꼭 가져간다고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날의 모토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디 한번 나를 보고 다른 책을 추천해보라 도전적으로 말했다.
머리에 아무런 책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아무 페이지를 펼치고 있었다.

(...)

"행인들의 얼굴에 주목하는 대신 나는 그들의 발을 보는데, 바쁜 사람들은 항상 발걸음도 서두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결국 별로 심각하지도 않은 어떤 비밀을 찾아다니며 먼지를 일으키는 것임이 분명했다"

그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읽었다.

 - 올가 토카르추크, <방랑자들> 4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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