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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May 11. 2022

관행이라는 울타리

실외에서 마스크 쓰기는 해제되었지만 거리를 나서면 마스크를 벗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는 나는 출퇴근 시간 만이라도 햇볕을 쪼이려고 거리를 걸을 때면 마스크를 벗는다.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나도 몰래 슬금슬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된다.

아직 해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익숙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

여전히 안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더 커서 과감히 벗고 다니기가 망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을 띄엄띄엄 만나는 강변 산책길에서 조차 단정히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지 싶다.

산책길에 나오기까지 여러 공공장소를 거치기에 집에서부터 쓰고 나오지 않을 수 없고, 산책하면서도 벗고쓰기를 반복하기가 번거로워서 그럴 거라 이해한다.

그런데도 어쩌면 지난 2년간 몸에 배어 어디에 가서나 자신도 모르게 반복하는 행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책, <열두 발자국>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이틀 정도 굶긴 원숭이 네 마리가 있는 우리 안에 바나나를 장대 끝에 매달아 놓고 실험을 했다.

배고픈 원숭이 두 마리는 장대위로 미친 듯이 올라갔는데, 바나나를 따려는 순간 물대포를 쏘아 방해했다.

물을 몹시 싫어하는 원숭이는 기겁하며 바나나를 포기하고 내려다.

그 이후로는 네 마리 원숭이 아무도 바나나를 따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둘째 날, 우리 안의 원숭이중 두 마리를 밖으로 빼내고 이틀 굶긴 다른 원숭이 두 마리를 들여보냈다.

새로 들어온 원숭이 두 마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바나나를 따러 장대위로 미친 듯이 올라 가려했다.

그때 첫날부터 있던 원숭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새로 들어온 원숭이들을 말렸다.

다음 날, 첫날 들어온 원숭이 두 마리마저 우리 밖으로 꺼내고, 또 다른 원숭이 두 마리를 굶긴 후 들여보냈다.  

그 두 마리 원숭이들 역시 바나나를 따러 올라가려는데, 둘째 날 들어왔던 원숭이들이 한사코 못 올라가게 말렸다.  

이번엔 물대포 아예 치는데도 말이다.  

자신들은 올라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모르면서 새로 들어온 원숭이를 제지한 것이다.

이 실험을 며칠간 반복해도 같은 행태가 지속됐다고 한다.


실험자는 사람이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앞선 사람이 한 행위를 이유 불문하고 반복한다고 추론했다.  

관행이라는 이유로, 다들 그렇게 하니까, 나만 튀는 행동을 하기 민망하니까 등 갖가지 이유로 하던 대로 반복할 거라 결론지었다.  

어제 배운 지식, 사고방식, 습관, 고정관념을 오늘의 문제에도, 내일의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해 해결코자 하는 행태다.  

변화를 싫어하는 우리 뇌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국가의 리더가 바뀌었다.

정치를 한 번도 한적 없던 사람이라 신선하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아슬아슬하게 당선됐지만, 기존 정치 문법에서 벗어난 그의 뚝심을 높이 산 사람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주변은 여전히 기존 정치권에 있던 사람이다.

한 사람만 바뀌고 온통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정치에 문외한인 그가 국정을 이끌고 나가려니 기존의 문법에 숙달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겠거니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당선이 확정되고 취임하기까지의 행태를 보면 신선하다고 뽑힌 사람도 어쩔 수 없어 보인다.

기존의 관행에 갇힌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으니 그만의 뚝심도 아집으로 비친다.

이제 시작하는 마당이니 아직 기대를 접을 수는 없지만 얼마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지 걱정이 앞선다.

제발 이번만은 5년 후에 실망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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