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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May 10. 2022

혼자가 편하다.

골프는 한때 경제적으로 안정된 부류나 기업의 고위층 인사들이 주로 즐기던 고급 취미였다.

일반 직장인들도 골프를 배우긴 했지만 취미로 즐기기보다는 사업상 접대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가 하면 소득 수준이 고만고만한 사람들 잘 나가는 부류로 보이기 위 과시으로 배웠다.

내 또래 남자들은 대부분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골프에 입문했다.

중년이 된 지금 그들은 대부분 제법 수준 높은 골프 마니아되었다.


"요즘 몇 개 치세요?"

"언제 라운딩 한번 나갈까요?"

"식사하고 스크린이나 한번 합시다."


이런 대화가 시작되면 나는 말이 거의 없어진다.

골프에 관한 한 잼병이 때문이다.

또래들이 골프를 입문할 때 나도 주변의 권유로 기초를 배우기는 했지만, 몇 번 필드에 나가보고 나서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그 이면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어렵사리 예약한 시간대에 맞추려 동이 트려면 한참이나 남은 캄캄한 새벽에 집을 나서야 했다.

라운딩을 하는 동안에는 비싼 공을 엉뚱한 곳으로 날려 보내 수없이 잃어버리곤 했다.

실력이 달려 같이 간 사람들과 경기 흐름을 맞추지 못해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때문에 취미로 즐기기 위한 골프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었고, 쓸데없이 헛돈만 날다는 생각뿐이었다.

게다가 당시 나는 누군가를 접대해야 할 부서나 지위에 있지도 않았고 취미로 즐기기에는 벌이가 시원찮 샐러리맨에 불과했다.

그러니 골프는 계속하고 싶은 동기도 매력도 내게 주지 못한 취미였다.

무엇보다 누군가와 어울려야 하는 스포츠라서 내 기질에 잘 맞지 않았다. 




나는 상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운동 꺼린다.

치열한 경쟁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 나이가 되도록 누구나 즐기는 프, 당구, 탁구처럼 짜릿한 승부가 생명인 스포츠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이유 여기에 다.

승부욕이 전혀 없진 않지만 아득바득 이기려고 하질 않는다.

더구나 몹시 낮을 가리는 성격이라 실수를 했을 때 느끼는 창피함이 두려워 자신 있게 시합에 임하지도 못한다.

나로 인해 상대방도 덩달아 경기에서 긴장감이 떨어지고 열정이 타오르지 않는다.


이러니 직접 시합 참여하기보다는 남의 경기를 관람하길 좋아한다.

웬만한 스포츠는 대략 경기의 룰을 알고 있다.

굳이 하고 싶은 운동을 든다면 남들과 섞이지 않고도 홀로 즐길 수 있는 종목이다.


내가 꾸준히 하는 운동이 딱 한 가지 있는데 바로 피트니스다.

취미로 즐기는 스포츠라기보다는 건강을 위한 체력단련 운동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젊었을 때 몸이 워낙 허약해서 여러 가지 운동을 해보려 시도했는데, 20년 이상 흐른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는 유일한 운동이다.

내 기질과 잘 맞기 때문에 가능했지 싶다.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아도 되고, 내킬 때면 아무 때나 할 수 있다.

경쟁 대상도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의 몸이다.  

어제보다 나은 건강상태, 작년보다 튼튼해진 육체가 목표라서 오로지 나와의 싸움이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튼튼한 몸을 지녔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도 다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운동을 꾸준히 기 때문이다.




나는 일상생활에서도 누군가와 경쟁할 일이 생기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거나 의도적으로 거리를 휘말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직장 생활하면서도 남들보다 승진이 두어 발자국 늦었던 것도 이런 내 기질과 무관하지 않다.

직장에서 승진하고 싶은 욕망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만, 나는 치열한 경쟁 속으로 뛰어들 엄두 감히 내지 못했고, 거기에 휘말려 들었을 때도 중요한 승부처에서 포기하곤 했다.

체면이나 명예보다는 그저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큼의 지나 급여가 보장된다면 만족하고 살았다.

치열한 목표 달성 끝에 오는 짜릿함을 맛보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와 좌절을 피하고 싶었다.


반대로 지금까지 혼자서 나를 기준으로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일 좋아한다.

 대상도 타인이 아니라 어제의 나, 지난날의 나다.

말하자면 나 자신과의 싸움을 즐긴다.

궁금한 분야가 생기면 깊게 공부하는 스타일이다.

전문 자격증도 여러 개 취득했는데, 꼭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궁금해서 조금만 더 깊이 파고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특정인을 상대로 한 경쟁이기보다는 스스로 지식을 쌓기 위한 목표가 우선이기에 즐기면서 할 수가 있다.

내가 궁금해하던 것을 해소하는 게 동기였기에 꼭 합격해야만 하는 일도 아니었다.

물론 시험의 당락여부가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고 공부가 잘 안 될 때는 갑갑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뭔가를 얻으려고 할 때 감내해야 하는 짜릿한(?) 고통이 아닐까 싶다.




뭘 배우려면 일단 사람을 만나야 하고 누군가로부터 배워야 한다.

나는 일상에서 뭘 하든 혼자 할 수 있는 일만 찾다 보니 취미라 할만한 게 별로 없었다.


그나마 몇 해 전 아내의 권유로 시작한 것이 대금이다.

기초를 배우려면 누군가를 만나 가르침을 받아야 해서 망설다.

더구나 함께 배우는 사람이 있을 게 뻔해서 낯가림 심한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한번 발걸음하고 나서 안면을 튼 다음엔 점차 그 걱정이 조금씩 사라졌다.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가 계기가 되어 1인 대면 수업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행운이었다.

오로지 선생님과 둘이서 공부를 하니 실수를 해도 선생님 앞이라 창피하지도 않았다.

혼자서도 연습할 수 있고 서툰 내 모습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아 마음 상할 일도 없었다.

대금은 소리 내기가 까다롭고 연주 자체가 서양음악과 많은 차이가 있어 시작한 사람 중 9할은 1년도 안돼 그만둔다고 한다.

나는 벌써 3년을 훌쩍 넘겼고 선생님의 칭찬을 들을 정도로 기량이 늘어났다.

다 내 취향에 맞는 취미라서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남들과 겨뤄야 하는 승부욕이 부족해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는 현대사회에 맞지 않는 인간형일 수 있겠다는 자격지심에 끝없이 시달렸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남들보다 뒤처져 패배의식에 젖어 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내가 해낸 일도 별거 아니라는 열등감에 의기소침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내 부족한 성격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다니던 직장을 떠나면 가깝다고 여기던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 떠나고 혼자만의 시간이 더 많아진다.

한 때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 많은 사람들로부터 스포트 라이트를 받다가 나이 들어 현직에서 물러나고 사회의 관심 밖으로 멀어지면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얘기도 많이 들린다.

그래서 나이 들어도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살고자 노욕을 부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젊을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이제는 혼자 있기가 익숙하다.

이제는 혼자 있음을 즐기기까지 하니 더 나이 들어 혼자 있을 일이 많아져도 외롭다거나 우울해하지 않을 듯하다.

또 살벌한 경쟁 상황을 의도적으로 우회하며 살아왔기에 그럴 필요가 없어진 지금의 삶이 홀가분하고 편안하다.

게다가 누군가와 함께 해야만 하는 취미 생활보다는 나 홀로 즐기는 활동을 잘할 수 있어서 노후에도 별로 심심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젊은 시절 한 때, 이런 성격의 나 자신이 몹시 싫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삶이 내 기질과 맞아 가고 있는 듯하여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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