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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혼삶여행자 Nov 22. 2021

어묵이 만들어가는 도시재생

삼진어묵과 영도(부산 2편)

도시재생사업의 새로운 시도삼진어묵 그리고 영도

  추운 계절에 자주 생각나는 따뜻한 어묵꼬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간식이다. 신기하게도 우리에게 친근한 이 어묵이 쇠퇴해 가는 도시를 재생하고 있다. 우선 도시재생의 사전적 의미는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쇠퇴한 도시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등의 방법으로 부흥시키는 것’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들의 도시에서 급격히 나타난 도시 확장에 따른 도심 공동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 해외사례로는 폐역이 된 기차역을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변모시킨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나 1960년대부터 영국 런던 시내에 전기를 공급하던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가 문을 닫자 그것을 활용하여 현대미술관(=테이트모던)으로 변모시킨 성공적 사례가 있다.        

  

폐역을 활용하여 만든 오르세 미술관(프랑스 파리)


  한국에서도 2000년대 접어들어 도시재생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들이 시도되었는데 앞서 설명한 케이스에 영향을 받아서인지는 몰라도 대부분은 문화예술과 연계하여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인상적이지 못했다. 지역의 문화와 예술과의 접목은 나쁘지 않았으나 예술가들에 의존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못했고 지역주민은 배제된 채 진행돤 도시재생사업으로 낙후됐던 구도심은 활성화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로 인해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말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발생시켜 정작 도시재생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현지의 지역주민들이 외부로 내몰리는 등의 문제들을 야기시켰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해외사례는 왜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 핵심에는 지역주민/지역기업/지자체가 함께 도시 재생을 위해 십수 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치열하게 논의하고 비전을 세웠기 때문이다.      

영도대교 및 영도 전경(출처 : 영도구청 홈페이지)


  어묵을 통한 도시재생의 시도를 확인하기 위하여 신협협동조합의 발자취를 따라갔던 부산 중구에서(한국 신용협동조합 발상지, 부산 (brunch.co.kr) 참고) 영도다리를 건너 영도로 향했다. 영도는 지역 색이 무척이나 강한 부산 안에서도 또 다른 지역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지리적으로는 동해와 남해를 마주하는 부산에서도 그 코너 한가운데에 있으며 영도구 자체가 섬 하나를 이루고 있다. 현재는 4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부산 해안을 이어주는 고속화도로의 중심이 되었다.(해안을 활용한 고속화 도로는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평지가 부족한 부산의 지형적 특징) 

  영도에는 6.25 전쟁 이후 많은 피난민들이 모여 살았고 당시 피난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유명했던 영도다리는 많은 애환을 품고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도는 폐쇄성이 강한 섬이라는 지형적 특색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키며 가업을 이어가는 노포(老鋪,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들이 많다.          

부산 영도 삼진어묵 본점

                                                        

  지금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삼진어묵’도 그중 하나이다. 영도의 삼진어묵(부산시 영도구 태종로99번길 36) 공장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 공장으로 6·25 전쟁 직후인 1954년, 일본에서 어묵 제조 기술을 배워온 고(故) 박재덕 사장의 어묵 가공소다. 생선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며 저렴한 음식이었던 어묵은 서민들이 쉽게 단백질을 공급받을 수 있게 만들어준 기특한 음식이었고 70~80년대에는 포장마차의 대표 안주 메뉴로 어묵꼬치가 자리 잡으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어묵의 제조와 유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생 관련 문제가 발목을 잡으며 위기를 맞기도 했는데 선친으로부터 어묵 생산기술을 이어받아 어묵 사업을 발전시킨 2대 박종수 대표와 미국 유학 후 어묵의 신개념 판매방식 모델인 베이커리 매장 형태를 국내 처음 도입한 3대 박용준 대표의 노력으로 지금은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이 되었다. 

  실제로 영도다리를 건너 조금만 걸어가면 봉래시장 가까이에 삼진어묵 본점이 있다. 과거에는 봉래시장 안에 위치해 있었지만 봉래시장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지금은 시장 외부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렇게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1층에 마련된 어묵 베이커리에는 손님들로 분주했다. 해당 건물 2층에는 삼진어묵의 역사를 소개하는 역사관과 어묵 만들기 체험공간을 함께 운영 중으로 삼진어묵과 어묵이란 식품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럼 이 삼진어묵과 사회혁신 중 하나인 도시재생의 새로운 모델은 어떻게 이어지는 것일까?

삼진어묵 본점內 역사관 및 어묵체험역사관


삼진이음 대통전수방

  삼진어묵은 최근 몇 년간 매출 증가에 따른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업 성장의 근간이 되어온 영도를 중심으로 한 사회공헌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삼진이음이라는 비영리법인을 세웠다. 그렇게 세워진 삼진이음은 중앙부처, 지자체(영도구청)와 협업하여 지역 활성화를 위해 ‘대통전수방’이라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지자체에서 주도해 중심시가지의 상업 입지를 총체적으로 활성화하는 TMO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대통전수방의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한국에서 진행된 기존의 프로젝트들과 차별점은 도시재생을 통해 발생한 혜택이 지역주민에게 돌아가지 않는 기존 프로젝트들의 구조의 한계점을 극복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영도라는 지역이 가지고 있는 유/무형자원들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사람과 기술을 연계하여 역사/문화/관광자원/전통기술/상권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선순환을 만들어내며 결국 도시재생에 중심에 지역주민이 함께 참여하여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진행한 것이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는 작업이었다는 점이다.


대통전수방 사업 추진전략(출처 : 대통전수방 홈페이지)


그 소통의 결과로 삼진어묵 본점을 중심으로 한 주변 영도지역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영도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려 도시재생을 할 수 있는 '대통전수방 사업'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대통전수방 사업은 영도의 지역적 특색에 따라 전통시장, 물량장, 창고군, 노후주거지역으로 구분되어 장인기술 전수와 역사자원 활용을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된다

창고군 / 물양장 지역
노후주거 / 전통시장 지역
영도의 지역을 기반으로 한 대통전수방 주요 사업(출처 : 대통전수방 홈페이지)


  이렇게 지역에 대한 많은 고민과 지역주민들을 중심에 두고 추진된 대통전수방 사업은 어떤 결실들을 맺었을지 찾아보았다. 본격적으로 사업이 추진된 17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된 대통전수방의 성과들을 최신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통전수방은 ▷전수창업지원 프로그램 ▷전통산업 통합 프리존 조성(M마켓) ▷공간 활용 대학 ▷주민 대학 ▷상인 대학 등 5개 카테고리로 진행됐다. 사업 기간 내 8만 5000여 명이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특히 전수창업지원 프로그램의 기술전수교육은 7기까지 진행됐고, 어묵 두부 캐러멜 등 커리큘럼으로 운영돼 총 44명의 전수생을 발굴했다. 전수생 가운데 30%가 해당 프로그램으로 습득한 장인의 기술을 이어가고 있다.


또 M마켓은 대통전수방을 통해 만들어진 대표 콘텐츠로 영도 내 전통산업 기업과 장인, 부산 내 젊은 창업가가 참여하는 지역 대표 프리마켓으로 자리매김했다. M마켓의 누적 방문객 수는 8만 3000여 명, 참여 판매자는 651명으로 회를 거듭할수록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M마켓의 누적 매출도 5억 원 정도로 지역 소상공인 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했다.


이 밖에 공간 활용 대학 사업을 통해 지난 6월 ‘창업지원센터’가 완공돼 운영되고, 오는 10월 ‘창의상업공간’도 문을 열 예정이다. 지역 주민과의 소통으로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고 주민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운영된 주민 대학에서는 주민 문화 여건 개선을 위한 ‘봉봉클래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영도같이친구’ ‘어린이잡화점’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적극적인 주민 참여가 기반이 돼 일회성이 아닌 정기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지역 전통시장의 상인 의식 개선을 통한 상권 활성화를 목적으로 진행된 상인 대학에서도 전통시장 상인이 요즘 트렌드와 소비 동향을 알 수 있는 ‘봉짝프로젝트’ 등이 3기까지 운영됐다.


이 사업은 올해로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지만, 현장지원센터를 운영한 삼진이음은 다른 도시재생사업과 달리 해체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운영된다. 삼진이음은 ‘M마켓’ ‘봉짝프로젝트’ 등의 콘텐츠를 기반으로 자립할 수 있는 수익을 창출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 2월 봉래동에 문을 연 소상공인 창업 플랫폼 ‘AREA6(아레아식스)’도 그 중 하나다. 아레아식스에는 삼진이음의 컨설팅을 받아 리브랜딩에 성공한 지역 브랜드 ‘희희호호’ ‘인어아지매’ ‘부산주당’ ‘송월타월’ 등이 입점해 소비자와 활발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 밖에 삼진이음은 지역의 로컬 크리에이터를 발굴하고, 이들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지역의 우수 로컬 크리에이터로서의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투자 유치 연계, 마케팅 활동 지원 등의 역할도 할 예정이다.


삼진식품 황창환 대표는 “삼진식품이 중견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ESG 경쟁력 강화가 필수라고 생각한다” 며 “부산 영도구에서 시작된 오랜 역사를 가진 향토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지역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의 사회 공헌 활동으로 꾸준히 이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출처 : 2021-08-12 삼진식품發 새바람…영도 대통전수방 대박 터트렸다 : 국제신문 (kookje.co.kr)


  직접 방문하여 돌아본 영도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기존의 실패사례를 충분히 스터디하여 지자체, 기업, 지역주민이 역할을 잘 나누고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고 지속가능성까지 염두하고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그것이 기반이 되어 수치적으로나 내용적으로도 유의미한 결과들을 만들어 냈다. 또한 전세계에서 진행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프로젝트 대부분은 공공주도보다는 민간주도였던 만큼 앞으로도 기대가 된다. 다만 이 사업이 어느 정도 알려지자 주변 부동산 시장은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나고 있고 각 사업들의 향후 발전 방향 모색 등 풀기 어려운 과제도 안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기존의 실패를 거울삼아 도시재생의 결과가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의 모델의 대표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영도와 함께한 도시재생 여행을 통해 이제는 어묵이 오래된 도시를 재생하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에필로그 :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초량 이바구길)

  부산을 떠나기 전 초량 이바구길을 걸었다. 부산역 바로 앞에 위치한 초량 이바구길은 부산의 향기가 물씬 나는 부산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다. 이곳에는 많은 부산사람의 삶의 애환이 서려 있고 많은 이야기가 있어 개인적으로 부산에 오면 꼭 들리는 곳이다.(실제로 이바구는 경상도 말로 이야기를 뜻한다) 산등성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사이로 지금은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든 골목길들이 가득하다. 이곳을 거닐다 ‘장기려 기념관’(부산시 동구 영초윗길 48)을 들렸다.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는 '일생에서 의사를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뒷산 바윗돌처럼 항상 서 있기 위해서'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평생에 걸쳐 실천한 분이다.     

장기려 기념관

   그는 1968년에는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만들고 영세민들에게 의료복지 혜택을 주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이는 한국의료보험의 효시가 되었다. 이러한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1979년에 수상하였다. 이것만이 아니라 의학적으로도 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국내뿐 아니라 세계의 여러 나라로부터 훈장과 표창을 받는 등 사회적으로도 공헌한 바가 매우 컸지만, 정작 자신은 일생에서 집 한 채도 없이 지낼 만큼 청렴하고 검소했다.

  이곳을 방문하면서 의료란 돈 있는 사람만이 혜택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이 누려야 한다는 그의 신념대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되는 세상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산에서 직접 찾아다니며 바라본 신용협동조합 발상지와 도시재생의 사례 또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회혁신의 모습이자 동시에 희망이었다.

부산 답사 코스(신용협동조합/영도도시재생 통합)

<이동 코스>          


<여행 팁>

  오늘의 코스는 부산 영도를 중심으로 코스가 이루어져 있다. 영도에는 유명한 태종대가 있고 영화 '변호인' 배경지인 흰여울 문화마을을 둘러보면 영도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영도 봉래산에 오르면 부산항을 비롯하여 부산의 매력적인 구도심의 전경을 바다와 함께 한눈에 감상할 수 있으니 추천한다.


※ 본 답사기는 현장 답사를 기본으로 관련 도서와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으며 참고자료는 출처 표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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