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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 Dec 29. 2015

#19 긍정적이란?

모든게 다 귀찮다.

긍정적임과 귀차니즘은 하나다


나는 꽤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왠만큼 심각한 일이 아닌한 잠자고 일어나면 머릿속에서 다 잊혀지고  긍정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편이다. 지금에서야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어릴적 정말 힘든 세월을 보냈다. 세월이라고 쓰니 다 늙은 노인네같아 보이긴 하다. 어쨋든 10대 시절은 기억하고 싶은 일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많은 시절이였다. 집안이 매우 가부장적인 구조이다보니 집이 아버지 중심으로 돌아갔다. 여기까진 일반 가정과 다를바 없지만 문제는 아버지께서 술만 드시면 180도 변하는데에 있다. 술을 드시고 새벽에 들어오셔서 형제들을 깨우고 매질을 할 때에는 정말 죽고싶었었다. 어머니는 말리다 말리다 지쳐 포기하시고 결국 아버지를 상대해야하는 건 어린 우리 형제들이였다. 특히 장남인 '나'였다.  그렇게 밤새 시달리다가 학교에 등교하면 단지 떠있기만 한 눈으로 학교생활을 보냈다. 그래도 어려서 그랬는지, 학교에서는 항상 밝게 지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버티기가 힘들어졌다. 아버지가 늦으시는 날이면 동생과 함께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며 기도하고 잠들었다. 제발 오늘 하루 무사히 끝내게 해달라고.

햇님. 달님, 부처님, 하느님 제발 저희를 안 깨우게해주세요.

지금에 와서야 그저 추억아닌 추억으로 가족끼리 이야기꺼리로 가끔 튀어나오지만, 그 당시 어머니와 우리는 죽을 맛이였다. 가끔 어머니와 둘이서 이야기할 때면 정말 우리가 그때를 어떻게 버텼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는 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고나면 까먹는 성격 덕분이였다. 그냥 안좋은 일이 생기면 잠을자고 리셋해버렸다. 내일 하루를 위해서. 그래서 어지간히 심각한일이 겹쳐 겹쳐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내가 스트레스 받는일은 잘 없다. 자고나면 괜찮아지겠지, 고작 그 정도 밖에 안되는 일이라고 혼자 다독인다. 어디서 들었는데 정확한 출처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 중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 중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 중 22%는 사소한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 중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에 대한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즉 96%의 걱정거리가 쓸데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뭐 이말이 진짜 옳은 말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꽤나 공감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친구들과 걱정거리를 이야기 할 때면 자주 이 말을 인용한다. 걱정 해봤자 바뀌는건 하나도 없으니 접어두고 눈앞의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말이다. 다들 이런 기억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정말 심각하다고 하루종일 몇날 몇일을 고민하다가 겨우 입을 떼었는데 정말 시시하게 끝나는 바람에 허무했던적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힘든일이 있다하여, 그냥 가만히 방구석에 이불 뒤집어쓰고 우울의 우물을 파내려가는 짓은 하지 않는다.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아니면 잠을 잔다. 애써 잊으려는 것일 수도 있고, 내일은 괜찮을거야 라는 믿음으로 하루를 열심히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긍정적이다.

긍정적이면 Ok?어, 아닌가?


그럼에도 나는 귀차니즘의 대명사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귀찮음에 지배되어서 살고있다. 사실 내가 긍정적으로 사는 것은 일종의 도망이다. 걱정거리를 붙들고 늘어질 만큼 난 성실하지 못하며, 계획적이지도 않고, 열정적이지도 않다. 무엇보다 빠르게 타오르고 더욱 빠르게 식는 편이라 진득하게 부여잡고 고미하는 것은 나와 맞지 않다. 앞서 나를 긍정적이다라고 매우 포장해서 그럴듯 하게 보이게 만들었지만, 결국 다 귀찮아서 저런 것이다. 도망치면 편하다. 어짜피 해도 안될일 이라고 혼자 납득하고 마음이 편해지면 그걸로 괜찮다라고 넘어가는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은 정말로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거나, 나혼자는 불가능한 일 일때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정말 해결해야하는 일까지 이렇게 대처하니 문제가 되었다. 가령 빨간색의 옷을 주문했는데 파란색이 배달되었다. 잘못 왔음에도, '괜찮아 어짜피 이색이나 저색이나 그게 그거지' 라는 긍정의 가면을 덧씌워 납득해버리고 넘어가버린다. 뭐 이건 사소한 예시지만, 가격이 높아지거나, 좀 심각히 다루어야만 할 문제에도 긍정의 가면을 쓰고 '괜찮아'라고 넘어가버린다.

뭐 어때?

요즘들어 이 사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곧 학생 시절이 끝나고 사회로 나가야하는데,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죽도밥도 안되겠다라는 걱정이 생겼다. 하지만 정말 내 입장에서는 약관이며, 법이며, 규정이며, 스펙이며 머리에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힘들다. 이것도 일종의 회사들의 마케팅이겠지만, 정확한 정보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서도 나도 모르게 긍정의 힘으로 회피 해버린다.


이건 생활적인 부분 뿐만아니라, 인간관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 싸우고 관계가 악화되어도, '뭐 어짜피 이정도로 싸울꺼면 여기까지인건가'라고 생각하고 끝낸다. 관계를 회복하려고 힘쓰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잘 될 사람이면 알아서 잘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가만히 있는다. 긍정적으로 살다가 다 잃게 생겼다. 물론 대학생때 얕게 만난 사람들인 경우는 딱히 이래도 상관 없다. 잠깐 만난 사이고, 이 나이쯤부터는 이해관계로 얽히는 사이기 때문에 떨어져나가고 말고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오랫동안 친구였던 친구들과는 문제가 다르다. 지금도 날 이해해주겠지, 아무것도 아닌 일이야라는 생각으로 타자를 두들기고 있지만 깊은 대화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피드백을 하지 않는다. 그냥 받아들일 뿐. 귀찮아서.

긍정적임은 좋은 성격이고 좋은 말이고 좋은 의미이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 긍적적인지 단지 나처럼 귀찮음에 빠져사는 것인지 고민해볼만도 하다. 만약 긍정의 괴물에게 모든 고민을 미뤄놓고 침대에 퍼질러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얼른 자리에 일어나서 노트를 펼치고 진지해져야 할 때다. 긍정은 내면을 밝게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아무런 쓸데 없는 것이다. 고민해라, 단 고민에 사로잡히지는 말고 말이다. 언제든지 고민을 놓고 다른 것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진득하게 고민이 필요 할 때가 있다.
P.S 반성문을 쓴건지.... 왜 쓰면서 제 마음이 다 따끔거리는 건지....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 힘든건 알지만 쓰고나니 확 얼굴이 붉어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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