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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 Dec 28. 2015

#18 외로움이란?

정말 외로운가요?

해피 크리스마스 였던 걸로.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이름을 가져다 붙이고는 특별한 날인듯 마냥 온 길거리가 들떠있다. 크리스마스 하루로는 부족했는지 크리스마스 전날부터 아주 오늘이 삶의 마지막날처럼 불타오르고 있다. 솔직히 대부분의 솔로가 그렇겠지만 크리스마스가 싫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스트레스 받는 것도, 반드시 이렇게 보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수 탄생일을 기념하는데에 있어서 왜 굳이 연인과 보내야하는가에 대한 논쟁은 끝이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국민은 연인과 보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여겨진다. 오죽하면 콘돔판매량 부동의 1위를 크리스마스가 차지하고 있다. 얼마전 외국인 펜팔친구와 크리스마스에 뭐할건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때 내가 집에서 혼자 보낸다고 푸념을 했더니 돌아온 답장이

Good for you

처음에는 순간 나를 놀리는 줄 알았다. 혼자 보낸다는데 좋은 일이라니. 하지만 이후 대화를 이어나가다보니 가족이랑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고 한다. 각종 포털사이트나 SNS에서 외국과 우리나라의 인식차이를 비교하는 글을 심심할 때마다 읽고는 그냥 그렇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단지 가족과 보내는 소중한 휴일중 하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언제 헤어질지모르는 연인같은거랑 시간 때우지말고 가족이랑 좀더 진솔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라고 글을 쓰며 혼자 푸념을 했다. 푸념거리는 더욱 많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풀릴 것만 같았다. 글을 쓰고난 이후부터 생각만으로 슬픔을 잠재우다, 아무글이나 쓰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으로 슬픔 해소법이 바뀌었다. 그래서 일기형식으로 나마 이렇게 글을 쓰고있다.


슬프다


이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감정이 아님에도, 이보다 더 간단하고 와닿는 단어가 없다.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지만 결국 '슬프다'였다.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둔 한명의 싱글로서, 나는 슬프다라는 말만을 되풀이하며 카페에 따뜻한 라떼한잔을 주문하고 따뜻한 머그컵을 메마른 손으로 문지르며 천장을 응시하고있었다. 앞에 세워진 아이패드에서는 커서 만이 깜빡이고 있었고, 키보드는 아무렇게나 팽겨쳐져있었다.


올해 12월은 아팠다. 가슴시리도록 차가운 외로움, 곤두박질친 성적, 실수로인한 날이선 친구의 차가운 목소리. 이 모든것들이 크리스마스를 앞둔 24일 나를 괴롭게했다. 술로 인한 실수였기에 술로 풀고싶은 생각조차 할 수없었으며, 가장 친한친구에게 웃기지도 않은 실수로 못질을 했다. 멍하니 생각이 꼬리를 물고이어져나갔다. 문제를 찾기위해서였는지, 단순히 현실도피 였는지 확신할수는 없었다. 하지만 결국 내 입에서 뱉어진 말은


외롭다


뻔한 말이였다. 하지만 어떤생각이 흘러간건지 깨닫지도 못한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말이라 말하고도 화들짝 놀라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크리스마스 이브라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혼자 멋쩍어 라떼만 홀짝였다.

싸고 맛좋은 라떼, 카페만큼 사색하기 좋은 곳도 없다.

외롭다, 맞는 말이다. 겨울이라서, 크리스마스라서 그렇다고도 할수 있겠지만, 친구에게 실수 한 이후로 더욱 심해졌다. 거기다 그러자마자 성적발표가 나고, 집에 힘든일이 생기자, 걷잡을수 없이 우을해졌다. 난 매우 긍정적이고 잘 우울해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는 정말 끔찍하리만큼 괴롭다. 오죽하면 무신교인 내가 신에게 욕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겠는가. 만약 내가 예수를 믿지 않아서 크리스마스 이브날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면 정말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신임이 틀림없다.


없는 신에게 투정도 부려봤지만, 결국 난 신을 찾을 정도로 외로웠다. 처음으로 종교를 가진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뭐라도 믿고 기댈수 있다는 사실이 순간적이나마 안심을 줄 수있다는 것을. 물론 종교뿐만아니라 가족, 친구, 연인 등 주변사람이 될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모두 실존하는 것들이고 이래나 저래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종교는 완벽하니깐 믿는데 부담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신을 믿는 건 포기했다. 마음이 동해도 머리가 부정하기 때문에 믿을 자신도 없고, 헌실할자신도 없다. 

십자가만 보면 전신주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 외로움은 어떻게 해결해야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친구와 화해, 성적이 다가 아니라는 자기 만족, 집안일을 가족과 함께 헤쳐나가기 등 여러 방법들이 우수수 떠올랐지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없었다. 모두 결국 사람을 만나야 했다. 겁이나서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나랑 가장 가까운 사람과 껄끄러운 상태로 만나야한다는 사실이 내가 도망치는 것을 선택하게 했다. 생각의 늪속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햇다. 온갖 상상을 하며 글을 써나갔다. 실제로 아무것도 해결된것은 없지만 그렇게라도 마음을 안정시켰다. 마음이 안정되자 외로움대신 만족감으로 가득 채워졌다. 왠지 즐거워졌고, 뭐든지 할수 있을 것같았다. 그래서 그 생각이 들자마자 수십번 번호만 치고 지우고를 반복하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하다. 친구야
결국 난 사람을 만나고싶었던 것이 아니였다. 물론 우울함은 사람으로 인해 비롯했지만, 해결 방법이 꼭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였다.


외로움은 행복의 반대말이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 따위가 아니다. 사람들이 불행을 헤쳐나가 행복해질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이 외롭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이는 외로움을 소속감으로, 사람으로, 일, 꿈, 취미 등 수많은 방법으로 해소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만 외로움을 해결 할 수 있다는건 잘못된 사고 방식이다. 혼자만의 사색이 필요할 때도 있고, 일과 결혼할듯이 일에만 파묻혀살면서 외로움을 해소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면 나 처럼 취미생활에 집중하던가 말이다. 예전에 하고싶은 일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적이 있었는데, 마지막에 이런 말을 썻었다.


하루를 뜻깊게 살았다고 옆에서 속삭여주는 그런 존재를 찾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존재라는 말은 물론 사람이 될수도 있겠지만, 그뿐만아니라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주는 일이다. 취미, 꿈, 목표 등 내가 남이 아닌 나로서 있게해주는 사람으로 인해 외로움따위 느낄 겨를도 없게 해주는 그런 것들. 자신이 지금 외롭다는 기분이 드는 사람들은 한번쯤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정말 사람관계 때문에 외로운것인지. 단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 자신에 대한 불확신, 이러한 것들로부터 오는 공허감을 단지 사람으로 채우려고 하는것이 아닌지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책한권 펼쳐놓고 조용히 사색에 빠지는 것을 추천한다.

사람은 몸으로 뛰고, 입으로 말을 내뱉는 것보다 생각하고 고뇌하는데 익숙한 생물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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