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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 Jan 02. 2016

#21 해돋이란?

해 뜨는게 뭐 그렇게 대수인가?

해돋이


해돋이란 무엇인가. 해가 뜨는 것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하여 단지 태양이 떠오르는 것 처럼 보일뿐이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에 있어서 해돋이도 있다. 이것 말고도 문학적으로도 쓰인다.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역시 새해를 알리는 해돋이 만큼 의미있게 생각하는 해는 없는 것 같다. 달력이 바뀌고, 나이도 바뀌며, 신분, 직급, 월급 등 많은 것들이 변화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새로운 상황은 좋다. 정체되어있는 삶은 재미도 의미도 발전도 없으니깐 말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년,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새해의 소망과 목표에대한 다짐을 굳게다진다. 삐딱하게 말하자면 쓸데없는 짓이라고생각한다. 1월 한겨울 그 추운날, 그것도 가장 추운 해뜨기 직전 부터 꽁꽁 싸매고 바닷가로 해를 보러가는 모습이 너무 미련해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도와같이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하는 도구인 점에서는 꽤 효과적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래봤자 작심삼일을 작심삼주 정도로 늘려주는 정도밖에는 안되겠지만. 새해라고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다. 얼마안가 자신이 무엇을 소망했는지, 어떤 목표를 결정했는지 잊어버린다. 결국 다음해 12월 31일에서야 아차하며 다시 떠올릴것이다. 물론 착실하게 새해목표를 달성해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해뜨는 날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일어나 자신의 집에서 따뜻한 커피한잔과 함께 새해를 맞이할 것이다.

커피한잔과 맞이하는 새해 아침. 얼마나 이상적인가. 항상 난 늦잠이였지만

지금까지 딱한번 중학생3학년이 끝나는 겨울. 가족들의 성화에 못이겨 새해 첫 해돋이를 보기위해 호미곶에 간적이 있었다. 아침잠이 많은 난, 추운겨울 새벽에 일어나 해를 보러 그 먼거리를 가야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않았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멋진 해돋이의 풍경과 함께 새롭게 입학하는 고등학교의 모습이 겹쳐떠올랐다. 꿈에 그리던 고교시절의 시작인데 한번쯤 괜찮지않을까라는 안이한 마음이 날 지옥으로 이끌었다. 단언하건데 그 해돋이는 내생에 처음이자 최악의 경험이였다.


새벽부터 따뜻한 물, 컵라면, 커피 등 식량을 챙기고 따뜻해지기위해 온갖 옷은 다껴입고, 해를 찍겠다고 커다란 디지털카메라, 캠코더까지 바리바리 싸들었다. 그리고 차에 올라타는 순간 후회했다. 차는 냉장고였고 옛날 사람들이 냉장고 대신 사용했다던 석빙고가 딱 이랬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도 기왕 나왔는데 해를 보면 그래도 괜찮겠지 라는 생각으로 호미곶으로 향했다. 차가 막히는 것을 예상하고 일찍나왔더니 너무 일찍 도착해버렸다. 지옥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였다.

개구리처럼 겨울잠을 자자. 가장 현명하다.

2시간가량 일찍 도착해버려서 간단히 컵라면을 먹은 뒤 한숨 자자고 선택을 내렸다. 밖이 너무 추워서 도저히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밖에는 노점상이 불을 밝히고 즐비하고있었고, 그 풍경을 보며 소름이 돋았던 것이 기억이난다. 추워서였는지 나도 모르게 미래의 두려움을 느낀것인지는 잘기억이 안난다. 그 생각을 뒤로한 체 잠이들고 다시 일어났을 때는 정말 밖에 나가기싫었다. 자기전에도 그랬었지만, 자고 일어나니 몸이 다 식어버렸다. 도저히 밖을 돌아다닐 몸 상태가 아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강압에 못이겨 끌려 나오자, 마치 시베리아벌판에 떨어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때부터 추위와의 싸움이였다. 시끄럽게 떠들며 즐겁게 바닷가로 향하던 주위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지만 점점 바보라서 추위를 못느끼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정적으로 변해갔다. 특히 호미곶의 상징인 손모양의 석상에 도착했을 땐, 그냥 그자리에 주저앉고싶었다. 차로 되돌아간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졌다. 수많은 인파가 빽빽히 석상앞을 채우고 있었고 우리가족은 동상부터 족히 2,30m는 떨어진곳에서 해돋이를 봐야만 했다. 안 그래도 키가 작아서 잘보이지도않는데 앞에는 아이들 목마태운 사람들이 넘치고 심지어 여자친구를 목마태운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결국 사이사이 틈새로 해가 뜨는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요새는 아마 셀카봉들이 우수수 서있지않을까 싶다. 멀리서 보면 촛불시위처럼 보일지도.

그때, 딱이랬었다. 모나리자 대신에 태양인 것만 빼고

단 몇분 동안의 짧디 짧은 태양의 새해 알림을 끝으로 난 서둘러 도망쳐나왔다. 물론 그전에 소원을 비는 것도 잊지않았다. 애써 여기까지 왔는데 소원은 반드시 빌어야하지 않겠는가. 사실 어린 나이에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기억은 나지않는다. 아마 가정의 평화같은것을 바라지않았을까. 혹은 학업에 대해서라거나. 가려서 잘보이지도 않는 태양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에 부모님은 동생과 이미 사진찍으러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찾으러 가자니 앞 길이 너무 험난해보여서 찾을 생각조차 하지않았다. 내가 도망쳐나오고 얼마 뒤, 대 이동이 시작됬다.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물쏟아지듯 나오는 사람들을 멀리서 보고있자니 무서우면서도, 안쓰러웠다. 물론 나 자신도 말이다.


겨우겨우 가족들과 만나고 나오는 길에 노점상에서 떡국과 꼬지를 하나 씩 먹었다. 맛은 모르겠는데 엄청 따뜻했고, 얼어붙은 손과 삐딱한 중3의 마음을 녹는 듯 했지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메뉴판에는 살인적인 가격이 나를 반겼다. 나와 부모님만이 숟가락을 멈추고 굳었을 뿐이다. 이 추위에 장사하는 것이니 만큼 가격도 장난이 아니였다.

콩 한알도 나눠먹는 인심, 이제 부산에는 머나면 나라의 이야기다.

모든 일을 끝마치고 귀가길에 오른 우리 가족은, 정말 죄송하지만 아버지 빼고 전부 골아떨어졌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고 전부 각자 방으로 들어가 골아 떨어지는 것으로 새해 첫날이 끝났다.

항상 화려함 뒤에는 이런 어두운 뒷모습이 있다. 옛날 즐겨보던 만화에서 나오는 대사가 떠올랐다. 등가교환의 법칙. 해돋이를 대가로 그냥 하루를 피곤에 절여 날려먹었다.


10년을 걸쳐 기억이 왜곡되고 변질되다보니, 어느새 현실에 절어버린 이야기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내가 천재도, 컴퓨터도 아닌이상에야 기억은 변하기마련이다. 마지막 해돋이구경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역시나 해돋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주변에서 해돋이보러 해운대를가자, 자전거타고 간절곶을 가자는 등 인디아나존스를 방불케하는 도전적인 의사를 표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역시 나에게는 무리였다. 그래서 그냥 따뜻한 학교 동아리에서 지인들과 모여 술한잔 기울이며 새해를 맞이했다. 제야의 종소리도, 떠오르는 새해도 잊고 그냥 마지막 하루를 평범히 보냈다. 이런 소소한 행복을 2015년 마지막 부터 2016년 까지 느낀다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제껏 그렇게 해오긴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뭔가 색다르게 느껴졌다. 너무 애늙은이 같긴 했지만 대학교에서 맞이 할 새해가 점점 끝나가서 그런지도 모른다.


2015년 정말 바쁘게 달렸다. 공부하고, 글쓰기 시작하고, 여행도가고. 평범하지만 나름 충실하게 보냈다. 2016년 올해는 특별한 계획도 있고, 첫 휴학계이니 보람차게 보내자고 다짐하고 마무리 하겠다.

다함께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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