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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 Feb 01. 2016

#28 프레젠테이션이란?

발표란?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발표는 나에게 맞지 않다. PPT 제작, 딱 거기 까지가 내가 내 능력을 온전히 발휘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는 자료조사, PPT제작, 보고서 작성 등 서류작업을 내가 모조리 도맡아서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한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 저 PPT를 저렇게 발표하지?

항상 발표를 맡은 조원, 흔히 말 잘하고,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잘하는 친구가 간혹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 말고는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바를 잘 전달하지 못하고, 심지어 건너뛰기 까지 했다. 분명 발표전 중요 포인트를 집어줬고, 어디를 중점으로 해달라고 말했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물론 대본이나 사전 예행연습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신입생들이 준비를 해봤짜 뭘하겠는가. 발표보다 PPT나 보고서에 중점을 두기 마련이고 효율적인 발표방법은 전혀 알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PPT질에 비해 발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고 깨닫게 된 것은 발표자는 무조건 PPT제작에 참여해야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PPT의 구성이 어떤의도로 만들어 졌는지 무슨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 알아야했고, 그 점은 발표의 수준을 높였다. 마치 고등학생 때, 문학을 공부하며 작가의 의도를 파고들듯 제작자의 의도를 알아야 이해를 하고 써먹을 수 있다. 일단 이 단계가 첫단계였고 발표의 수준이 조금은 올라갔다. 이말은 결국 PPT제작부터 발표까지 내가 맡게 되었다란 말이다. 솔직히 조원들이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1학년 때 주변 학과 학생들은 말그대로 놀지 못해서 안달난 상태였고, 그런 학생들에게 발표를 맡겼다가는 속만 뒤집어질 것 같아서 포기했다. 그런데 포기하고 난뒤는 꽤 괜찮았다. 학과에서 발표 잘한다고 알려지기도 했고, 그로인해 발도 넓힐 수 있었다. 알다시피 과제는 사람들이 뭉치기 좋은 구실이다. 특히 잘한다면 더욱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학기중에 과제에 치여 살면서 나 스스로가 조금은 발표에 소질이 있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아니였다.

PPT는 맞겨둬

다니던 영어학원에서 영어 발표를 할 기회가(기회라기보다는 악몽이였지만) 있었다. 무려 50분간 영어로 떠들어야 하는 발표였다. 물론 혼자 50분동안 말만하는 발표는 아니고 적절한 질문과 논쟁을 유도해서 발표를 이끌어나가는 형식이다. 대략 정보전달 질문 그리고 토의 이런 식이였다. 그래서 발표는 어땟냐고? 시원하게 말아 먹었다. 발표가 끝난 뒤 내가 뭘했었는지 기억조차 안나고 맹렬한 비판의 목소리만이 귓가를 때리고 있었다. 처음 느낀 발표에대한 절망감, 수치스러움, 그리고 자신감의 붕괴. 아직도 그 때의 상황이 잊혀지지 않는다. 청중의 어리둥절한 표정, 떨리는 손과 목소리, 나도모르게 대본으로 얼굴을 가리고 글속으로 숨어버린 것 등. 최악이였다. 발표라는 것을, 남들 앞에 선다는 것을 너무 만만히 보았다. 내가 이제껏 기대어왔던 PPT는 언어의 장벽에 가로 막혀 나의 무기가 되어주지 못했고 오히려 발표능력의 미숙함을 적나라하게 들어냈다.

PPT가 너무 아깝다.

그녀의 짧고 굵은 마지막 문장 한마디가 벼랑끝에서 붙잡고있던 마지막 밧줄마저 댕강 잘라버렸다. 결국 나는 PPT와 한국어로 할 수 있는 그때 그때의 임기응변 그리고 짧은 발표시간이 갖는 청중과의 교감이 중요치 않다는 이점을 가지고 발표를 잘하는 척을 해온 것이다.

미사여구가 가득한 언어가 빠지고, 내 소통능력을 보여야할 시간이 길어지며, 다른사람과의 공감을 형성해야하는 발표의 최중요 요소와 마주하니 내가 이제껏 잘한다고 했던건 기만이였다. 발표가 끝나고 피드백을 받던 그 때, 정말 발가 벗긴듯한 기분이였다. 속속들이 파헤쳐져서 우물안의 개구리라고 조롱받는 기분.

물론 내가 한,두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그 때의 그 피드백은, 충고는 정말 소중했다. 그저 그와 딸려온 자괴감이 너무 심해서 문제였지만. 몇일동안 제대로 잠들지도 못했다. 눕기만 하면 그 때 상황이 떠오르면서 '이땐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을 하고, 발표를 이끌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발표를 2번, 3번을 다시하고 끝날 때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 만큼 분했고, 아쉬웠다. 다음 발표 때는 꼭 잘해야겠다라는 다짐을 몇번이고 되새겼다.


그리고 3달뒤 2번째 발표시간이 찾아왔다.


주제 선택도 좋았고, 자신감있게 목소리 톤도 높여서 잘 했다. 전보다 떨지도 않았고 시간도 아슬아슬하게 잘 맞추었지만 발표는 실망스러웠다. 정보량이 너무 많아서 전달하기 급급한 것도 있었고 전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소통능력이 부족했다. 청중을 어떻게 끌어들이고 그들의 말에 어떻게 반응 해주어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그 부분에 있어서 충고를 들을 때 생각한 것이 '도대체 어떻게?' 였다. 사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발표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특유의 유머나 매력으로 발표에 잘 끌어들였다. 하지만 난 주제도 탄실했고, 정보량도 많았고 계획도 잘 짜져있었지만 그 부분이 부족하여 발표를 조금 어둡게 만들었다. 발표가 끝나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지만 내가 '노잼'이란 것만 확실해질뿐이였다. 사람을 웃길 재주가 없으면 발표도 영 꽝인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끼야앙 웃겨양

이번에 침대에 누웠을 때는 눈조차 감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마음졸이던 발표가 끝나서 발뻣고 잘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지만 발표후에 떠오른 답없는 물음에 끝없이 혼자 답하면서 사색아닌 사색에 빠져 새벽 까지 생각만하다 잠이 들었다. 내가 무슨 전문가도 아니고, 전공도 아니고 관련 책을 읽어본적도 없지만 혼자 내린 결론은 하나다. 대부분 유머에 강한 사람들은 자신을 내보이기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다. 혹은 무언가 하나에 미쳐본적이 있거나. 그들은 필요한 순간에는 남들의 시선에 구애 받지 않고 그들만의 매력을, 행동을, 말을 꺼낸다. 예를 들자면 학원 같은반에 엄청 소심해보이고 말도 크게 잘 못하는 여학생이 있는데 놀라운 것은 그녀가 유명한 댄스동아리 출신이라는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 엄청 놀랐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 미안하긴하지만 처음 봤을 때 청중 앞에서는 정말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발표 때는 달랐다. 남의 시선이 익숙한 것인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지 발표에서 질문에 당황한 것 말고는 전혀 당황함없이 유들유들하게 발표를 해내었다. 그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어 밝은 분위기의 발표가 되었고 성공스럽게 끝이났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떠오르는 답이 없었다. PPT제작, 목소리톤, 자신감. 여기까지는 노력으로 어떻게 되었지만 성격이 문제였다. 사람의 성격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을 성격이라고 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죽기전까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겠는가. 그래서 결국 남은 방법이 연기다. 내 성격을 속이고, 청중을 속여야한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거울을 보며 전에 했던 발표 대본을 보고 읽으며 연기를 해봤지만 눈이 떨리는 건지 거울이 떨리는 건지 알수 없을 정도로 떨었다. 하지만 전보다 발전한 내 모습이 확실히 보였기 때문에 어렴풋한 희망을 가지고 무대위에 서는 연습을 해야겠다.

잠좀 자자...

발표 준비한다고 글도 못 쓰고....

게다가 곧 해외로 갈 예정이라 준비하느라 바쁘네요.

해외가면 꼭 사진 일기라는 걸 써보고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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