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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 Jan 14. 2016

#26 생일이란?

이제는 덧 없는 '나'의 날

12월 14일, 내 생일이자, 기말고사 첫 날 이였다.

 신도 무심하시지, 매번 생일 때마다 시험을 치르니 스트레스가 2배로 늘어났다. 액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2학기 기말고사를 갈아엎는 것을 보면 생일의 붕 뜬 기분이 영향을 준것은 틀림없다. 주변에서 축하메세지는 날라오고, 약속자리는 만들어져 가는데 정작 현실은 카페인 웅덩이에 허우적거리며 새벽까지 충혈된 눈으로 책이나 뚫어져 쳐다보고 있다. 아침잠 또한 충분히 보충 할 수 없으며 일찍 일어나 멍한 상태로 종이 쪼가리와 책으로 가득찬 가방과 함께 통학 한다. 가방은 종이 뭉치들이 얼마나 무거운지, 6기월 가량 배운 공부량이 얼마나 방대한지 깨닫게 해주고 깊은 한숨과 함께 졸음과 함께 버스를 탄다. 잠시동안의 꿈속에서는 친구들과 내 생일을 축하하며 맥주잔을 부딛히는 덧없는 꿈을 꾸다가 흔들거림에 잠이 깨어 손에든 정리 노트를 다시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의 반복.


12 더하기 14는 내.생.일.... 집중이 안돼


생일이 무슨 대수 이겠냐만, 그래도 1년에 한번이고 나름 태어난 날의 기념이라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생일은 나의 현재 사회적 위치를 판단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그 관계성에서 부여받은 자신의 위치, 그 위치로 보통 사람을 평가한다. 그래서 공동체 생활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생일이 가지는 의미가 조금 크다. 우린 어린 시절 부터,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사회 생활에 익숙해져온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생일은 뚜렷이 기억난다. 그 당시 생일초대 카드를 만들어서 대대적으로 아이들을 집에 초대하여 어머니가 음식을하고, 주문하여 아이들과 몇몇 부모님들에게 대접한건 그 때가 처음이다. 초등학생이니 누구나 한번쯤은 거창한 생일파티를 벌여보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때는 단순히 다른 친구는 하는데 나는 왜 안해? 라는 어리기만한 생각이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때 부터였던 것 같다. 보이는 모습으로 서로를 비교하고 등급을 매기고 뒤쳐지지 않으려고 아닌척, 맞는척 가면을 쓰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초등학생들의 생일이란 어머니들간의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이며, 아이들간의 경쟁의 장이자 처음으로 겪게되는 냉혹한 현실의 사교파티다. 평소에 옷차림, 성적으로 서로를 탐색하고 점수 매기다 생일이 되면 본격적인 판별에 들어간다. 생일 파티의 규모, 음식, 집의크기, 장소 등 실질적으로 눈에 띄는 데이터가 산출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단지 음식이 많은지 생일선물은 몇개나 받았는지, 아이들이 몇명이나 초대되었는지로 서로간의 우위를 따진다. 얼마나 냉혹한 세계인가. 지금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그런 수라장을 초등학교 때 부터 겪으니 중, 고등학교 때 학교가 폐쇄된 정글이 되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웃어! 웃어라고!

중학교 때 부터는 생일과 부모님의 상관성이 조금 멀어진다. 물론 생일 때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돋보이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지갑이 필요하지만 생일에 놀 친구를 모아서 파티를 여는 것 자체를 이제 스스로 하기 시작할 때다. 정글에서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은 생일파티 자체를 열지 못한다. 피라미드 계층에서 가장 상위인 포식자 계열이 대부분 독차지하고 중간 잡식계열들은 서로 뭉쳐서 산다. 다만 초식계열은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한체 풀만 뜯거나 포식자에게 재물로 바쳐질 뿐이다. 초등학생 때 느끼지 못한 첫 씁쓸함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부모님 탓도 할 수 없고, 그들에게 호소할 수도 없다. 자의식이 점점 자리잡기 시작한 시절에 자신의 패배를 용납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년 생일을 통해 1년간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나면 어느정도 자의식은 완성된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가치관이 대충 자리잡고 졸업을 기해 고등학교에서는 다른 삶을, 혹은 이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마음으로 마무리한다.

밀림의 왕은 고독하다는 다 옛말이다

고등학교는 인문계를 기준으로 정글이라고 보기는 조금 힘들다. 포식자들은 대부분 실업계에서 걸러진다. 포식자가 남아있다고 해도 그 수가 적어 별 영향도 없다. 잡식계열과 초식계열이 대부분이며 가끔 잡식중 몇몇이 포식자행세를 하기도한다. 그래봤자 정글이라기보다는 동물원 같은 느낌이다. 그들은 미성년자라는 울타리 안에 있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대학입시라는 굴레에 가로막혀 감시당하고 조련당한다. 가끔 우리를 뚫고 도망치거나, 이탈을 꿈꾸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결국 우리안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생일은 일종의 친목다짐이다. 동물원에서 가끔 동물들의 생일이라고 홍보하듯이 같은 학년사이에서는 대부분 알고 축하해준다. 다만 거리가 먼 우리(반)에서는 그냥 무덤덤하다. 다만 여기서 차이는 동물의 종류의 차이다. 인기많은 동물은 동물원에서 대대적으로 홍보, 광고도 하지만 비주류는 그냥 손으로 휘갈겨 쓴 팻말이 전부다. 그래도 정글에 있을 때 보다는 대우가 나아져서 위안을 삼을 뿐이다. 그래도 자신의 존재를 생일에 인식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니깐 말이다.

쟤도 고양이과니깐 나도 포식자?

미성년자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면 그 때부터 생일은 단지 사람들과 모일 좋은 핑계거리가 되어준다. 오래동안 보지 못했던 지인들에게 연락도 오고,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안부도 물을 수 있다. 생일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사람들의, 특히 현대인의 인간관계는 퇴보했음이 틀림 없다. 솔직히 명절이라고, 크리스마스, 부처님이 오신날, 온갖 공휴일에 안부를 취하고 굳이 특별한 의미를 되새기며 만나지 않는다. 혹 '한글날인데 세종대완님의 위대함을 되새기기 위해 우리 만나지 않을래?' 라고 하는 지인이 있다면 사기꾼이거나 당신을 사랑하는 얼빠진 남정네일 것이다. 다름아닌 생일이기에 축하의 메세지와 함께 끈어질듯 말듯한 관계의 끈을 이어나가며 우리가 흔히 부르는 인맥이란 것을 유지해 나간다. '언제 한번 밥이나 한번 먹자' 라는 뻔하디 뻔한 형식적인 멘트로 마무리하며 말이다.

그.래.밥.이.나.한.번.먹.자. 전송

다 지나간 일이고 이제와서 이야기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어린시절 생일이 가지는 의미는 어마어마하다. 자신도 모르게 생일을 통해 성장한다. 성장이라기 보다는 찌들어간다가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문득 생각이 났는데 초등학교 시절 생일이 방학이였던 아이들은 정말 애처로웠다. 대부분 방학 때 친한 친구들 몇명과 생일파티를 하던가 억지로 우겨서 생일을 방학전으로 앞 당겨 치르기도 했다. 어릴 때는 그저 놀릴 거리에 불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엄청 스트레스였을 것 같다. 방학에 생일이라고 놀려서 미안하다.


결론 : 생일이 시험기간과 겹쳐서 생일파티가 미뤄졌다고 해서 스트레스 받지 말자.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삐딱해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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