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 Jan 17. 2016

#27 짝사랑이란?

좋아했었던, 포기했었던 따뜻한 커피한잔

오늘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내가 일하는 가게문을 벅차고들어와 뭐가 그리도 급한지 숨을 헐떡이며 ATM기를 찾고 있었다. 오른 쪽 눈 아래의 점, 단발과 긴머리의 중간 지점인 적당한 연갈빛머리, 주변을 밝게 만들어버리는 밝은 목소리. 문을 열고 들어온 익숙한 키작은 아가씨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 구슬같은 눈을 더욱 크게 치켜뜬다. 작은 입술도 놀람덕분인지 동그랗게 말려 더 붉게 보였다.


"XX아~!!"


놀랍게도 그녀는 나를 반겨주었다. 나도 놀라고있던차라 놀람에 겨워 나도 모르게 호들갑을 떨며 반응해주고 말았다. 그럴 자격도 없는데 말이다. 그녀는 나같이 음침한 사람조차도 밝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였기에 난 그녀를 좋아했었다. 그림자가 빛을 쫒듯 그녀를 쫒았었다. 그녀에게 닿고싶었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빛을 감싸안을 수 없었다.


지난 봄, 학원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밝고, 자신감에 가득차있었으며, 다정했다. 그 아름다움, 아니 멋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사랑에 빠졌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것이지만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난 그저 그녀와 함께 수업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어짜피 있으나 없으나 나는 그녀에게 모자란 사람이니깐. 사랑을 동경으로 뒤덮으려고 무던히 애를 썻다. 그녀의 능력에, 내가 가지고 있지않는 빛나는 것에 동경만 하기로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우리가 함께 학원을 다닌지 2달가량 지났을 때 쯤, 그녀와 나는 꽤 친해져있었고 밥이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곤했다. 소심한 성격이라 대부분 먼저 밥먹자라는 말조차 먼저 꺼내지 못했지만 그녀는 나를 불러내주었다. 그렇게 서로간의 간격을 아슬아슬히 이어나가던중 그녀의 입에서 이별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안타까웠지만 점점 마음속에서 묻어뒀던, 애써 가려왔던 감정이 다시 싹텄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녀와 다시 얘기를 할 기회는 없었다.



"아직 여기서 일해 XX아?"


잠시 멍하니 있는사이 그녀가 간격을 좁혀왔다. 향수인가. 향기가 더욱 향수를 자극했다. 당황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체 화답을 했다. 아마 거울로 내 모습을 봤다면 온몸이 떨리고있었을 것이다. 특히 동공이, 아니 심장이. 꽤 웃긴 모습이였을텐데도 그녀는 익숙하다는 듯 말을 이어나간다. 어머니의 따스함 같았다.


"나중에 연락할게~ 열심히해!"


"아, 어...네!"


멍청하게 마지막까지 말을 더듬었다. 바뀐번호라도 물어볼껄, 아니 내 번호는 저장하고있을까? 온갖 생각이 그녀가 떠나고나서 머리속에 휘몰아쳤다.


멍청한 놈


또, 나는 가만히 앉아서 상대가 거리를 좁혀주기를 기다리고있다. 발전도, 최소한의 학습능력도 없는 멍청이다. 앉은뱅이에게 돌아오는 건 사랑이아니라 동정임을 뻔히 알고있으면서도 나는 아직도 일어서기를, 다가서기를 주저하고있었다. 그때 그 가을처럼.


그녀는 외로움의 계절 가을에 이별했다. 원거리 연애의 한계였는지 떨어져있는 남자친구에게 거리감과 외로움을 지독히 느꼈다고한다. 이 말조차 건너건너 들었다. 솔직히 헤어진 이유는 궁금하지않았다. 다만 그녀에게 의지가되어주지 못한것이 가슴 한편이 지독시리 아팠다. 나를 의지해주지 않아서 나락과도 같은 깊은 절망을 느꼈다. 그때부터 은은한 밝은 빛을 띄던 감정은  질투, 욕심, 절망 등 온갖 감정과 섞여 검게 변해갔다.


나의 상태는 내가 잘 알고있었다. 더 이상 그녀와 가까이 지낼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차갑게 대하고, 무관심한 척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뻥하니 시원하게 까여버려도 좋으니 홧김에 고백해버릴 것 같았으니깐. 그렇게 겨우겨우 지켜가던 마음이 어느날 한 술자리에서 모래성 마냥 우르르 무너져내렸다.


"XX야 너 나 좋아했었잖아."


그 순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학원 사람들과 모여있던 자리에서 그녀는 술에 취한탓인지, 아니면 그저 가볍게 생각한 것인지 서슴없이 문장을 토해냈다. 어렵사리 쌓아온 감정의 성이 무너져내렸다. 고작 저 문장 하나에 무너질 정도로 내가 몇달간 쌓아올린 방벽은 보잘것 없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모래성을 무너뜨리고 들어온 파도는 마음을 짠내나는 소금물로 다 적셔버렸다. 그렇게 술을 마시며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뒤부터 마음을 닫았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한번 적셔진 모래는 단단하게 굳었다. 덕분에 마음에서 지울수있었다. 그녀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짝사랑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술자리가 끝나고 얼마안가 그녀는 학원을 떠났다. 당시 학원 내에서 그녀는 여자들로부터 배척당했다. 전형적인 남자에게 인기많은 여자의 결말이였다. 그때 난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방관했고 마지막에 벌려온 손을 무정하게 내쳤다. 내가 지금 그녀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중 하나다.


딸랑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는 캔커피 하나를 흔들고 있었다.


"힘들지? 마시면서 해~ 그럼 또봐"


그녀가 건내준 커피는 그녀의 말만큼이나 따뜻했다. 어색하게 웃음으로 화답하고 그녀를 떠나보냈다. 이제서야 끝냈다라는 기분이 들었다. 작년 그녀와 마지막으로 짧은 카톡을 나눌 때, 어중간하게 마음을 닫고 그녀를 밀어냈을 때가 아니라, 오늘 그녀가 내밀은 마지막 따스한 커피한잔에 짝사랑은 끝이났다.


짝사랑은 익숙하다. 24년간 짝사랑만 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올해 마지막 첫 사랑은 숨이 막힐 듯이 힘들었고, 고된여정이였으며 행복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26 생일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