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휴가를 냈다.
몇 개월간 일상을 짓누르던 업무 중 내 몫을 해서 넘겨주고 나니 진이 빠졌다.
우울증 치료차 먹는 안정제 때문에 무표정으로 보름을 보냈다.
남들 일하는 날 누워 있으니 몸이 아파 왔다.
주중 한낮의 텅 빈 집 거실에 누워, 잠의 경계를 들락날락하며 책을 읽었다.
마흔 된 중년의 싱글남이 서울에 생애 최초로 집을 구입하는 과정을 엮은 에세이였다.
꿈속에서 그간 내가 살아온 수많은 집이 깜박대며 스러지는 불빛처럼 명멸해갔다.
고등학생 때는 누나들과 단칸방에서 살았다. 대학생 때는 더부살이도 했고 공동체 생활도 했다.
창이 없는 컴컴한 독서실에서 반년을 나기도 했다.
결혼 전까지 내가 살아온 집 역시 책 속 작가의 집처럼 높은 언덕에 있거나 반지하 비슷하게 내려앉은 낡은 빌라들이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서야 서울 밖으로 빠져나가 그럴싸한 아파트 생활을 하게 되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 동네에서 가장 큰 카페에 왔다.
싸구려 커피를 시키고 일기를 쓴다.
보름간 일기를 쓰려고 무진장 노력을 했지만 쓰지 못했다.
안정제의 효과는 강력해서 감정의 사지를 꼭꼭 묶어버렸는지, 내 작은 숨소리 하나 글로 토해 낼 수 없었다.
어제는 처음으로 독서토론회에 갔다. 최진영 작가의 소설 ‘단 한 사람’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자리였는데, 통성명조차도 SNS상 닉네임으로 부르며 철저히 자아를 지운 채, 책의 내용만을 이야기하는 토론장이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
소설이 다루는 주제가 이미 확고해져 버린 내 가치관으로는 담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기에 주로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쓰는 어휘들이 책에서 막 떠낸 고급진 말들이었다.
한명 한명이 야무져 보였고 책으로 단단해진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주중의 늦은 오후라 대형카페는 한적하다. 땅땅거리는 팝송이 계속 흘러나온다. 내 생각 역시 두서없더라도 툭툭 터져 나왔으면 좋겠다.
이게 오늘의 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