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그라나다에서의 하루
[여행 8일차]
여행의 종반부에 이르니 시간이 휙휙 흐른다.
어제는 암흑 속에서 짐을 꾸려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형의 도움으로 부엘링 항공 바르셀로바발 그라나다행 항공 온라인 수속을 밟고 공항에 도착한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비행기에 오른다.
저가 항공이고 악명이 높다해서 걱정했는데, 한국 저가항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행기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비행기 창 너머로 맑은 하늘이 보였고 먼 동이 트고 있었다.
안달루시아 지방에 이르니 왼편으로 눈 덮힌 고산들이 보였다.
우뚝 솟은 봉우리가 있었는데, 이름이 궁금하다.
비행기에서도 그 산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맑은 하늘을 품은 채로 비행기는 착륙했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알람브라 궁전에 갔다.
막내 준이와 아내의 다툼이 있었다.
짜증이 짜증을 냈고 결국 막내는 울었다.
다행히 서로 사과함으로써 일단락되었지만, 여행은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
택시는 미터기를 쓰지 않아 바가지 요금을 냈다.
보통 25~35유로라고 하는데, 45유로를 냈다.
차도 좋고 기분도 맑아서 그냥 흔쾌히 줬다. 큰 돈일 수 있는데, 다툼으로 기분 상하고 싶지 않았다.
맑은 날씨의 알람브라 궁전은 기온이 차서 상쾌했다.
아내는 춥다고 했는데, 나는 기분이 맑았다.
처음에는 유적지 같은 폐허라서, 그리고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고 해서 이게 뭔가 싶었는데, 성터 높은 곳에 올라 그라나다 시내를 바라보면서, 유럽의 작은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끼니 기분이 좋았다.
붉은 기와를 인 낮은 흰색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었고, 뾰족뾰족 사이프러스 나무가 풍경에 포인트를 준다.
압권은 나스르 궁전이었다.
이슬람 양식으로 조각된 부조는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이었는데, 서늘한 기운까지 겹쳐 더운 여름에도 이곳은 시원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관광객이 많아 떠밀리다싶이 구경하는데도 입에서 탄성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사람은 대단하다.
파밀리아 성당에서도 느낀 경외감이 이곳에서도 들었다.
어떻게 단단한 돌을 이리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지 마치 조각칼로 나무를 다루는 느낌이다.
여행 내내 별로 들지 않았던 카메라로 홀린 듯 셔터를 눌렀다. 비록 괜찮은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누른다는 행위로 만족했다.
나스르 왕궁을 다 보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 왔다. 이제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배도 고프고 힘이 부쳤다.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를 타고 숙소에 온다. 택시는 중세시대로 들어온 것 같은 오밀조밀한 알바이신 지구를 요리조리 달려 예약해 놓은 스마트 스위트 알바이신 호텔 앞에 데려다 주었다.
호텔 간판도 없었는데, 리셉션에 들어간 순간, 호텔 주인이 친절하게 맞이해 준다.
입실 시간이 15시였는데, 우리는 13시도 되지 않아 찾아갔지만, 반갑게 그라나다에 대해 설명해 주고 방을 내어준다.
방에 들어온 순간 탄성을 지른다.
아파트형 같은 숙소는 넓었고 거실과 주방, 화장실이 1층에, 2층에는 독립된 2개의 욕실 딸린 침실이 있는 것이다.
10여만 원의 숙박비로 이렇게 고급 호텔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니. 감동이었다.
새벽부터 서둘렀기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한다.
그러다 배고픔을 못 이긴 막내는 가방에 담아온 컵라면을 먹고, 우리 부부는 호텔에서 비치해 둔 캡슐 커피와 스낵으로 잠시의 여유를 즐겨본다.
호텔에서 쉬다 보니 밥 때를 놓쳤다.
그래도 대수랴.
알바이신 마을을 걸으며 구경을 했다.
비싼 견과류를 사서 군것질을 하며 동네 여기저기를 걸었다.
대성당까지 걸었는데, 날은 점차 궂어져서 비가 내렸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이탈리안 식당은 4:30이 되자 점심 장사를 마치고 문을 닫았다.
타파스를 먹고 싶었는데, 무턱대고 들어가서 메뉴를 시킬 용기가 없어서 결국엔 KFC에 갔다.
치킨박스를 시켜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날이 어둑어둑해진다.
장을 보고 호텔에 들어가기로 한다.
대형마트를 찾아 밤에 먹을 먹거리를 샀다.
오렌지 쥬스와 오렌지 한망, 콜라 등을 사서 다시 어둑해진 알바이신 거리를 걷는다.
구글맵이 없으면 분명 길을 잃었으리라.
미로처럼 생긴 거리는 아름다웠지만 정처없이 헤매기에도 딱이었다.
숙소로 돌아왔다.
피곤에 지쳐 아내는 바로 잠이 들고 우리는 모처럼 한국의 밤처럼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은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나도 뉴스도 보고 이것저것 한다.
배가 출출해 컵라면을 먹었다.
그렇게 하루가 간다.
그라나의 다른 풍경들은 못봤지만 이 도시가 맘에 든다.
다음에 느린 여행을 와서 며칠을 느긋하게 묵다가 가고 싶다.
푹신한 침대에 누웠다.
하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