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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May 19. 2024

*내친김에 대마도까지 달렸다

1박 2일 전북문협 문화탐방 (161)


무엇이든 지나치면 탈이 붙기 마련이다. 

먹고살기 위해 바쁜 것도 아니고 , 인기를 먹고사는 유명인도 아닌 주제에 어쩌다 보니 과하게 달렸나 보다.

4월과 5월 한 주도 빠짐없이 주말에 행사 또는 모임이 있었고, 주중에도 그런 일들이 계속되었다.

좀 과하다는 생각의 끝에는 '오늘이 나의 가장 젊은 날'이라는 자위와, 이 만큼의 건강이 허락될 때 열심히 

감사하며 달려보자는 생각이 내 등을 밀었다.


서울로 함양으로 신안으로 임실로 다른 고장은 물론 우리 고장 탐방까지 따라나섰다.

그 와중에 여럿이 호흡을 맞추고 거들어야 하는 행사도 네 개나 치렀다. 발로 뛰고 눈으로 보고 가슴에 맞아들여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붙박이 나무 같은 삶이지만 단풍나무의 씨앗처럼, 민들레의 홀씨처럼 훠얼 훨 바람의 깃을 잡고 날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제 그제 꽉 찬 1박 2일 달리는 김에 바다를 건너 대마도 까지 내달렸다.

전북문인협회(회장 백봉기) 회원 54명의 대마도 문화탐방기행에 동참한 것이다.


대마도 한국전망대 앞에서 단체사진(전북문인협회,  회장 백봉기)
빼곡하게 채워진 4월과 5월

 


옥정리 우리 집에서 출발한 시각이 17일 0시 20분(중간 지점에서 일행과 만나 전주로 출발한 시각은 오전 1시), 집에 돌아온 시각이 18일 밤 11시 40분이니 꽉 채운 48시간의 긴 외출이었다.


내 몸에 과부하가 걸린 것은 여행 떠나기 4~5일 전이었다.

배꼽보다 약간 왼쪽 위가 벌레에 물린 듯 가렵고 따끔거리더니 500원짜리 동전크기만큼 빨갛게 부어올랐다. 시골에 살다 보면 그런 일이 가끔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연고만 열심히 발랐다. 그런데 증세가 나아지지 않고 허리를 지나 등 쪽에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드디어는 처음 시작했던 주변에 세 개의 수포가 새로 생겼다.

여행 떠나기 전날인 16일에사 걱정스런 마음에 아침을 먹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대상포진이라고 했다. 바로 다음 날 여행이 잡혔다고 했더니 우선 일주일분 약을 처방해 줄 테니, 절대 무리하지 말고 잘 먹고 쉬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바르는 연고와 먹는 약을 챙기고 가볍게 여행가방을 꾸렸다.

까짓것 1박 2일 멀지도 않은 대마도라는데 가보는 거지 뭐!

남편도 딸도 괜찮겠느냐 자꾸 물었지만 혹시 아프다고 하면 못 가게 할까 봐 아무렇지 않은 듯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새벽 2시 전주를 출발할 때까지는 괜찮았다. 눈을 붙여보지도 않고 나온 터라 잠깐 잠 짓을 하려는데 따끔따끔 콕콕 간헐적인 통증이 온다. 저녁 식사 후 먹은 약기운이 떨어진 것 같다. 아침이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그럭저럭 견디며 아침을 맞이하고 도시락으로 식사도 하고, 물론 약도 챙겨 먹었다.

부산항 여객터미널에서 아침 8시 10분 출항! 바람이 많이 불고 파도가 높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평소대로면 뱃멀미를 안 할 것 같기는 한데 몸상태가 별로여서 자신이 없다.

일행인 효순씨가 마지막 남은 멀미약 한 알을 내게 주고 자기는 젊으니 괜찮을 거라더니 거센 파도에 멀미를 조금 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미안했다.

군산 팀의 다른 여성문인 두 분은 심하게 멀미를 해서 크게 고생을 했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대상포진으로 오는 통증과 싸우며 멀미약 효과인지 다른 약 때문인지 잠깐씩 잠을 자느라 뱃멀미는 비켜갔다.


부산에서 직선거리로 49.5km밖에 안된다는 거리, 맑은 날에는 섬 안에 있는 산꼭대기 한국전망대에서 부산이 보인다는 대마도 남쪽 이즈하라에 들어오는데 딱 세 시간 10분이 걸렸다.

거친 몸짓으로 입도를 거부하는 그곳 사람들 속마음을 닮은 풍랑! 까짓것 겁나지 않았다.

조선말 항일운동을 하다 순국하신 최익현선생의 순국비와 먼 먼 조상인 백제인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이 길에 거센 파도쯤이야, 틈틈이 찔러대는 대상포진의 통증까지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대마도는 옆으로 서있는 말을 닮아서 마도라 한다던가?

망강교( 이 다리 아래로 인공운하를 만들었다)

머리와 가슴 부분인 북섬과 배부터 뒷다리까지의 남섬으로 되어있고, 허리 부분엔 인공으로 운하를 만들고 

만제키바시(망강교)라는 큰 다리를 놓았다.

이 인공 운하를 뚫음으로 하여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대승을 거두게 되었으며, 그 여파로 우리나라가 일본인들의 핍박아래 식민통치를 받게 되는 치욕스러운 35년의 서막이 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첫날의 일정은 구불구불한 길을 하염없이 걸어서 관광하는 트레킹코스 같았다.

마치 골목길 투어 같은 느낌의 대마도의 남쪽 부분 이즈하라는 길이 좁고 구경하는 곳도 별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버스로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한다.

다행히 햇볕은 따가워도 바람기도 있고 걸어 다니는데 그다지 덥지는 않았다.


*표민옥적: 서쪽(우리나라)에서 파도에 밀려 흘러들어온 사람들을 대마도 원주민들이 구해주고 그곳에 정착하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는 작은 포구도 보았다.


면암 최익현선생의 순국비, 뒤로 무궁화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좁은 골목을 걸어 올라가 면암 최익현 선생의 사적비가 있는 수선사를 방문했다. 우리나라의 사찰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암자 비스므레한 추레한 건물, 그러나 절문 안쪽에 세워진 최익현선생의 순국비와 비석 뒤에 자라고 있는 무궁화나무 한 그루가 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면암 최익현선생은 1906년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왜군에 잡혀 대마도로 유배를 왔다.

비록 뜻을 못 이루고 잡혀왔으나 왜놈들의 땅을 밟지 않겠다며 조선을 떠나올 때 신발바닥에 조선의 흙을 담아 신고 왔다는 최익현선생! 또한 그들이 주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거부하다 끝내 그곳에서 숨졌다고 한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됨)


최익현선생과 함께 끌려온 사람이 군산 옥구사람 의병대장 임병찬 장군이었다는 말에 귀가 쫑긋 세워졌다. 임병찬 장군 역시 최익현선생과 함께 대마도에 유배되었다가 최익현선생이 1907년 1월 1일 끝내 단식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임병찬 장군은 고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귀국 후에도 고종의 밀조를 받아 국권반환요구서를 보내는 등 항일 운동을 하다 다시 일본에 잡혀 거문도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단식으로 결국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됨)


군산문화원에서는 매년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 고장출신의 훌륭한 분들의 제를 지내는데 임병찬 장군도 그중 한 분이시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바다 건너 일본땅 대마도에 와서, 끝내 꺾이지 않는 조선의 얼과 애국심을 보여준 면암 최익현선생의 순국비 앞에 서니, 가슴 뜨거운 경외심으로 벅찬 감동에 울컥했다.


비운의 황녀 덕혜옹주와 대마도 번주의 결혼 축하비

여기저기 고만고만한 곳을 둘러보다 조선말기 대마도 번주와 고종황제의 딸 비운의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갔다.

누군가가 놓고 간 꽃다발 몇 개가 놓여있었다. 누군가 이곳에 와서 비운의 황녀를 기억해 주고 갔나 보다.


몇 년 전 소설 덕혜옹주를 구입해서 읽으며 조선왕조의 옹주로 태어났으나 너무나 억울하고 슬픈 생을 살다 간 그녀가 안쓰러워서 눈물을 흘리며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뒤에 영화채널에서도 덕혜옹주를 다룬 영화를 보았는데 소설로 읽을 때보다는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이번 대마도 여행 중 가장 맘에 들었던 건 숙소 이즈하라펜션!

3~4명용 룸이 독립된 한 채의 구조로 되어있고, 창문을 열면 푸른 바다가 눈 아래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두 번째로 탐나는 것은 섬전체를 덮고 있는 울울창창한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이다.

편안하고 청정한 공기가 그냥 느껴졌다. 어느 곳이나 나뭇잎들은 깨끗하고 윤기가 흘렀다.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삼림


여행 중 상점이나 식당을 제외하곤 현지인을 만날 수가 없었다. 첫날 어느 골목에서 만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한 무리를 만난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인상적인 딱 한 사람! 둘째 날 와타즈미 신사에서 메가폰을 들고 나와 나가라고 소리치던 남자!

자기들이 건국신으로 모시는 신 도요타마히메의 나라에서 온 우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바닷가에서부터 신의 길을 나타내는 토리 다섯 개가 일직선으로 신사를 향하고 있는데, 반대로 일직선으로 

서쪽을 향해 나가면 우리나라 땅에 닿는다 하니, 그들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도요타마히메 역시 우리나라에서 흘러든 백제인이 아니겠는가?


저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는데, 우리도 큰소리로 대마도는 한국땅이라고 외쳐보면 어떨까?

자기네 땅 곳곳에 고대에 백제인이 건너가 미개한 섬나라사람들에게 발달된 문명을 전파하고 가르쳐준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으니 우리는 허황된 얘기가 아니지 않은가!


날아보자 훨 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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