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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Aug 18. 2024

*철학이 좋은 삶의 기술이라고?

인문학강의 맛있는 삶(175)

*철학이 좋은 삶의 기술이라고?


이렇게 뜨겁고 푹 삶아질 것 같은 8월이 있었던가? 아슴한 칠십여 년 저쪽 유년의 기억부터 뒤적거려 봤지만, 이렇게 날마다 폭염과 열대야가 스무날 넘게 이어지는 더위 고문을 당해본 기억이 없다.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없던 시절,  여름대비라고는 방문의 종이를 떼어내고 모기장을 붙이거나, 그마저 아예 앞뒤 방문을 열어젖히고, 텐트 같은 대형모기장을 방구석 네 곳에 붙잡아 매고 대자리를 펼치면 되었다.

밤에는 엎드려뻗친 채 두어 바가지 찬물을 끼얹는 등목을 하고, 빳빳하게 풀 먹인 삼베이불과 부채질만으로 무던하게 지냈던 여름!


금방 길어온 샘물 한 양푼에 설탕 몇 숟갈, 미숫가루 서너 수저 넣어서 휘휘 저어 나눠마시면 얼마나 시원하고 맛있었던가!

바구니에 매달아 둔 보리밥을 찬물에 말아 된장에 풋고추 푹 찍어먹던 그 맛 또한 꿀맛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침부터 팡팡 틀어대는 에어컨에, 시원하고 맛있는 먹거리들이 쌔고 쌨다.

그런데도 나부터 더워서 못 견디겠다고 난리를 친다.

추운 겨울 무더운 여름, 계절을 진득하게 견디는 힘도 약해진 모양이다.

 


어제는 너 나 할 것 없이 덥다 덥다 하는 8월도 중순, 비 소식도 감감한 무더운 날에 말랭이  '봄날의 산책' 

독립출판사대표님이 귀한 자리를 만들어주셨다.

군산문화재단이 후원하고 '봄날의 산책' 독립출판사가 주관한 철학 강의였다.

철학박사이며 현재 서울 모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친다는 안광복 작가님을 어렵게 모셨다.

철학은 왠지 딱딱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나는 중학생들이 스무 명쯤 참석할 것이라는 귀띔에 우선 맘이 놓였다. 적어도 중학생들이 들을 정도면 강의를 어렵게는 안 하겠지 하는 안도감이었다.



역시나 안광복선생님의 강의는 적당히 빠른 속도를 유지하며,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 없이 청중을 끌고 나갔다.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 미처 몰랐던 것들 들쑥날쑥 정리되지 않던 생각들을 알맞게 제자리에 앉혀주셨다.


철학, 좋은 삶의 기술! 오늘의 강의 주제였다.


철학이 어떻게 좋은 삶의 기술이 될까? 

더위 먹은 머리로 처음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실은 잠깐만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면 살아가는 매 순간 반짝 고개 들고, 머뭇거리게 하고, 보다 나은 쪽을 선택하여 나아가게 하는 짧은 사유와 자기반성, 이 모든 것들이 철학에 닿아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뼈가 부러졌을 때는 멈춰 서서 깁스를 해야 한다

심리적인 상처도 다르지 않다

아동학대보다 더 잔인한 것은 자기 방치이다

인문학적 성찰은 멈춰 서서 나를 보듬는 과정이다.  <안광복>]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는 때때로 손잡아 달라고 애원하는 나를 외면하고 방치하지 않았던가?

갑자기 내가 나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위로는 남에게만 해주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아픈 곳을 깊이 들여다보고, 원인을 알아내고, 아픔을 덜어내고 일어날 방법을 찾아 삶의 탄력성을 

회복시키는 학문, 그것이 철학인 것 같다.



강사님은 니체가 말한 인간형을 소개하셨다.

체념과 순종. 의무와 굴레에 갇혀 사는 낙타형의 인간,

안돼!라고 말할 수 있는 강한 존재감으로 분노와 공격성을 드러내 주변사람을 제압하는 사자형의 인간,

그러나 언제나 강하거나 너무 존재감이 없는 삶이란 좋은 삶이라고 볼 수 없다.

어린아이처럼 유연하게 받아들일 줄 알고, 자기 처지에 맞게 대처한다면 좋은 삶의 해법을 찾을 수도 있겠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몰입'과 '절정경험'에는 '고통의 고비'가 필요하다.


욕구는 채울 수 있어도 탐욕은 채울 길이 없다.


간추린 말씀을 따라 적어보며 멀고 어렵고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다가간 철학을

조금은 말랑해진 시선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참 좋은 두 분을 따라 숨겨놓은 보물 같은 찻집에 갔다.

뙤약볕 산길을 걷다 만난 맑고 시원한 옹달샘 같은 곳!

왕언니인 숙자언니가 사주신 맛난 빙수와 대추차를 마시며, 걸어 다니는 보살 그녀와 나는 행복에 

뭉근하게 젖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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