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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Nov 25. 2022

*삶을 낭비한 죄

       - 쓰담쓰담 나를 응원해(2)

  

살인죄라는 누명을 쓰고 악명 높은 수용소에 갇힌 빠삐용은 끊임없이 자신의 누명을 밝히고자 몸부림쳤으며, 여러 번 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했으나 연이은 실패로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방에 갇혀 어느 날 꿈을 꾸게 된다. 꿈속에서 재판관은 빠삐용을 ‘죄인’이라 공격했고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지 죄가 없다며 항변했다. 그때 재판관은 다시 말한다.     


“당신이 주장하는 사건이 무죄라고 하더라도 당신의 인생을 허비한 것은 유죄다.”     


나는 이 대목에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생을 허비한 죄, 삶을 낭비한 죄라니! 인생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는지, 시간은 한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고 모래시계 속의 모래알처럼 빠르게 줄어드는데, 나는 지금 무엇에 정신을 팔고 있는지, 쓸데없는 일에 집착하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허덕이며 누군가를 향해 화를 끓이고 있지는 않는지...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름 모범적인 시민으로, 딸로 아내로 며느리로 이웃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 마음 저 안쪽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무겁고 축축하고 언짢은 그 무엇인가 자꾸 고개를 든다.

오랫동안 억지로 욱여넣고 가라앉히려고 애썼던 가식의 얼굴이다. 아닌 척, 괜찮은 척, 너그러운 척, 고상한 척... 여러 가지 ‘척’들이 더는 참을 수 없다며 울퉁불퉁 떠오르려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척’들을 가두어 둔 나는 누구의 삶을 살았다는 말인가? 곰곰이 나를 들여다보니 눌러놓기만 한 분노의 감정과 견디기만 했던 억울한 생각이 울컥울컥 고개를 치켜든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절규하며 한사코 탈출을 하려는 빠삐용은 재판관에게 항변이라도 하고, 감옥을 빠져나가려는 목적이나 뚜렷한데, 나는 이제와서 누구에게 화를 내고 누구에게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하고 어디로 떠나자는 것인가? 이미 이 세상에 오면서 받은 시간은 거의 다 써버렸는데...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 억제하고 눌러 앉힌 삶, 그래서 밖에서 보면 한없이 평온하고 어쩌면 우아해 보였을지도 모르는 삶도 물밑에서 끊임없이 물살을 젓고 있는 백조처럼 말 못 할 가슴앓이가 왜 없을까?

이제 힘들면 힘들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내 목소리를 내고 싶다. 지레 겁을 먹고 남들이 어찌 생각할까 걱정하며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타인의 삶을 사는 일 뒤집어엎고 싶다.

이 나이에 무엇을, 여자가 어떻게...주저하고 눈치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분명 삶을 낭비한 죄인으로 후회만 가득한 삶을 마칠 것이다.     

말은 이래도 결국 세끼 밥을 걱정하고 반찬을 챙기는 아직도 며느리, 아내, 어머니, 할머니인 내가 저기 서 있다. 저무는 가을이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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