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보내며 (180)
천식처럼 기침을 달고 달포를 지냈다. 연일 폭염주의보는 뜨고, 에어컨은 밤낮으로 돌려대며 목수건과 마스크를 동무하고 살았다.
그런 중에 미뤄두었던 여섯 번째 시집 원고를 탈고하여 출판사로 넘기고, 첫 시집을 내는 지인이 한사코 읽어달라고 들이미는 85편의 시를 읽고 감상문도 써 보냈다.
그리고 한 열흘 바짝 긴장하며 난생처음 어설프지만 우리 춤 한 자락을 연습하여 무대에도 섰다.
다행히 기침이 조금 잦아들었다.
그리고
9월의 마지막 날에는 소설 '탁류'의 길을 따라 채만식을 조명하는 작은 토론회에도 참여해야 한다.
잘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렇게 뒤엉크러져 떠밀려가며 추석을 맞이했다.
공연이 끝나고 조금 멈칫하던 기침이 다시 도져서 약을 받아왔다.
왼쪽 무릎은 앉고 설 때마다 찢어지는 듯 통증이 온다.
견디다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수술하자고 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거기까지는 가지 않아서 얼마나 고마운지! 처방해 준 약 잘 먹고, 주사치료 해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큰 명절 한가위를 맞았다.
다른 때와는 많이 다르게, 우리 직계가족만 한가롭게.
부산 사는 둘째 시동생네야 어머님 생전에도 잘 오가지 않았지만, 대전 시누이네도 늘 함께하던 막내시동생도 올 추석에는 못 오겠다고 전화가 왔다.
제각각 며느리 사위 손주들이 생기니 오고 가는 일이 번거로운 일이다.
47년간 해온 제사며 명절 상차림이 솔직히 혼자서는 힘에 부쳤었다.
동서가 둘이나 있었지만, 다들 사정이 있어서 돕는 손이라고는 딸 하나밖에 없었다.
남편이 작년 어머님 장지에서 올해부터는 가볍게 하자고 형제들에게 뜻을 전했으니 나도 이제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홀가분하면서도 우리 식구만 명절을 지내려니 왠지 쓸쓸하다. 이 무슨 이율배반인가? 후련해야 마땅한데!
아들은 이틀 전에 미리 내려와서 장 보는 일을 도와주고, 딸은 명절 당일만 쉰다고 제발 조금만 간단히 하자고 신신당부했다. 그렇게 했다. 최대한 힘들지 않게.
추석 당일은 느긋하게 집에서 지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식사 전에 일찌감치 임실 호국원으로 출발했다.
지난번 아버님 제사에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놓아드린 조화도 그대로 두었다.
아침 안개를 두른 앞산의 전경이 유난히 멋스러웠다. 오늘도 여전히 폭염주의보는 떴지만.
간단히 과일로 요기를 하고 군산으로 돌아오는 길, 은적사에 들러 친정부모님도 뵙고 왔다.
청정한 도량에 서서 큰 숨을 들이쉬었다. 맑은 물 한 바가지 들이켜듯이!
칼국수가 당기는 날, 아점으로 시원한 해물칼국수가 좋았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헛헛할 때 먹는 특별한 음식 칼국수!
그렇구나! 한적함은 이렇게 쓸쓸함에 닿아있기도 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