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번춤, 입춤으로 무대에 섰어요(179)
"더도 말고 십 년만 일찍 이런 신바람을 만났더라면 뭔 일이 나고도 남았을겨"
나무토막 같은 열다섯 명의 여인네들(50대 중반부터 80까지)이 모여 뻣뻣한 팔다리를 굴씬거리며 우리 춤으로 무대에 올랐다.
우리 한국시낭송 예술원 회원 중에서 연습시간을 낼 수 있는 열다섯 명이 모여 자발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한 것이다. 권번춤! 그중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입춤(서서 추는 춤)을 배워보기로 했다.
불과 두어 달 남짓, 일주일에 한 번 만나 손짓을 해보고, 걸음을 떼어보고, 우리 가락에 맞춰 흥을 익혀갔다.
공연을 앞둔 마지막 2주는 한 주에 두세 번씩 만나 맹연습에 돌입했다.
땀으로 흠뻑 젖고 평소에 잘 쓰지 않던 근육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쳤다. 파스로 도배하고 연습이 끝나면 병원으로 한의원으로 물리치료를 받아가면서도 모두들 즐겁게 애썼다.
일제 강점기 때 군산에는 '권번'이라는 기생교육기관이 다섯 곳이나 있었다 한다.
신분은 천했으나 주체적인 예능행위자였던 기생은 화대를 받으며 춤, 노래, 연주를 하는 예능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일제는 자기 나라 일본에는 없는, 주체적인 예능활동을 하는 조선의 기녀들을
통제하기 위해 기생조합을 만들어 묶어놓고, 이름도 일본식 이름인 '권번'이라 불렀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조선의 기생들은 민족주체의식이 강했고 나름의 긍지가 높았다.
또한 권번을 통해 춤, 노래, 연주 등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켰고, 철저한 예의범절을 가르쳤다.
술과 몸을 파는 작부와는 뚜렷한 구분이 있었다.
어찌 되었건 우리의 전통문화의 일면인 권번춤을 재조명하고, 옛것과 현대를 조화롭게 발전시켜 보려는 노력이 꿈틀대고 있다.
작년에 이어 이번에 군산에서 열린 2024군산국제무용제의 한 영역 속에 우리 시낭송팀이 시낭송이 아닌 우리 춤(입춤)의 연습생으로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짧은 기간 집중력을 최고로 끌어올려, 재미있고 신바람 나게 춤바람을 일으켰다.
모두가 처음 접하는 우리 춤이라는 것이 중년의 여인네들을 충분히 매료시키고도 남았다.
애간장을 녹이는 우리 가락에 맞춰 한껏 우아하게( 장작개비일망정 상상만은 우아하게) 동작을 익혀 나갔다.
전문가가 바라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었을 테지만, 서로 잘한다고 추켜주며 신명 나는 춤바람에 한바탕 휩쓸려 보았다.
발표 당일(페스티벌 4일 차) 관객들의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도 받았다.
우리에게 춤을 가르쳐주신 도립 국악원 수석무용수이신 최은숙선생님, 그리고 또 다른 전문가 선생님들과 춤은 다르지만, 한무대에 서본 것 만도 우리에게는 꿈같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