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면(249)
*버스는 떠나가고 / 전재복
낯선 곳 낯선 거리
해는 지고 어둠이 내리는데
간발의 차이로
버스는 떠났네
갑자기 땅 끝에 선 듯
하얘진 머릿속
아무나 붙잡고 물었네
어쩐대요
이렇게 남은 생을 가다가
돌연 길을 잃을 날도 있겠지
차를 놓친 것이 아니라
돌아올 길을 놓치는 날도 있으리
나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무나 붙잡고
안타까이 물어보는
내가 있을 수도 있겠지
날은 저물고 막막하여
가슴 무너지는 날도 있으리
어느 날 느닷없이
**********************************************
우리가(6명) 서로 얼굴을 익히고, 마음길을 놓은 지는 3~4년 남짓하다. 우연히 어떤 문학단체방에서 만나 글로 먼저 인사를 트고, 온라인이 오프라인으로 마음길을 넓혀갔다.
청주에서 둘, 평택에서 하나, 광주 하나, 나주 하나 그리고 군산에서 하나, 누구라도 먼저 보고 싶다고, 불씨를 일으키면 막내가 봉화를 피워 올린다.
언니들이 반가이 화답을 하고 막내가 계획을 세워 만난다. 만남을 갖는 곳은 군산 광주 평택을 돌아 올해는 광주에서 다시 모였다.
1년 만의 모임인데 청주 사는 아우 둘이 몸이 아프고 불가피한 사정이 생겨, 이번엔 어쩔 수 없이 넷이서 만났다.
어쨌거나 느지막에 내게는 다섯 명의 아우가 생겼다. 나이 들어서 사람을 만나 새롭게 관계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살갑고 든든한 아우가 다섯이나 생겼으나 늦복이 터졌다.
평택에서, 군산(아침 7시 20분 버스)에서, 나주에서, 기차로 버스로 일찍부터 출발했을 것이다. 10시에 광주 종합터미널에서 우리는 반갑게 만나 얼싸안았다.
든든하고 멋진 막내가 오늘 하루도 지휘관이 되어 운전에 가이드에 온갖 시중을 들며 봉사를 자처했다.
불갑사, 법성포, 불교최초도래지, 백수해안도로를 두루 거치며, 20첩 반상의 맛있는 점심도 먹고, 나주 사는 아우가 만들어온 수제 쿠키도 나눠먹고, 길거리에서 군것질거리를 사서 먹기도 하며 아이들처럼 즐거워했다, 바닷물이 코 앞에 보이는 2층 카페에서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가을 햇살을 즐기며 차도 마셨다.
바람은 적당히 쌀쌀하고, 하늘엔 구름이 쉼 없이 추상화를 그리느라 바빴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은 아쉽게 흘러갔다. 군산행 5시 20분 버스표를 예매한 맏언니를 배웅하러 아우들은 다 함께 터미널로 들어와 포옹하며 작별을 했다. 돌아갈 차와 시간들이 모두 달라서 나만 터미널에 남았다.
문제는 아우들이 떠난 조금 뒤에 일어났다.
혼자 대합실에 남아 약 20분쯤 남은 버스를 기다리면서 핸드폰에 올라온 사진들을 둘러보고, 카톡을 뒤적이는 잠깐 사이 내가 탈 버스가 떠나버린 것이다.
핸드폰에서 고개를 들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5시 21분! 버스는 정확하게 5시 20분에 떠난 것이다.
바로 눈앞에서 차를 놓치다니!
(나중에 보니 시간이 되면 게이트 조그만 전광판에 잠깐 행선지 불이 켜지고, 기사가 내려와 '어디 어디 출발합니다' '타실 분 안 계세요?' 두 번 얘기를 하곤 버스로 올라갔다. 그리고 약 3분 정도 차문을 열고 기다리다 출발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금방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아침에 보니까 직통으로 달려도 2시간이 넘는 거리던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물어볼 만한 사람은 눈에 띄지 않고,
표 파는 곳에 몇 차례를 가 봐도, 모두 자동화기계이다 보니 안내해 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무작정 한 시간 후에나 있는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내가 가진 표는 아들이 편하게 다녀오라고 우등표를 끊어줬는데, 한 시간 뒤에도, 두 시간 뒤에도 일반 버스뿐이다.
차액이 문제가 아니라 타고 갈 수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1시간 10분을 기다린 뒤, 출발하기 10분쯤 전에 버스가 들어왔다. 얼른 달려 나가 기사에게 스마트폰에 저장된 차표를 보여주며 앞차를 놓쳤다고 탈 수 있느냐 했더니 안된단다. 매표소에 가서 표를 받아오란다. 차는 곧 떠날 텐데...
정신없이 뛰어들어가 매표소로 달렸다.
마음이 급하니 아픈 발도 무릎도 돌아볼 새가 없었다.
다행히 자동발권하는 부스들 옆에 아까는 보이지 않던 여자 하나가 앉아있었다. 핸드폰에 저장된 표를 보이며 바꿔줄 수 있는가 물었더니 새로 표를 끊으라고 했다.
친절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도우미의 안내대로 표를 끊고 또 달렸다. 차에 올라 자리에 앉고서야 가방이 열린 채로 사색이 되어 달렸던 매표소에서 24번 게이트까지의 거리(내겐 수월찮은 거리)를 넘어지지 않고 달린 내 다리가 기특해서 가만히 두 손으로 쓰다듬었다.
달리고 달려서 내가 탄 버스는 6시 30분 군산행 시외버스, 해가 짧아져서 금방 어둠이 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