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파랑새는 옆에 있다

by CJbenitora

처가에 간다. 장모님은 부엌에서 요리를 하시고 장인께서는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계신다. 와이프는 소파에 앉는다. 신이 난 표정으로 리모컨을 만지작거린다. 화면이 잠시 멈췄다가 다음 채널로 넘어간다. 리모컨을 든 손이 바쁘다. TV가 없는 집에서 온 티를 낸다.


밥통에서는 ‘치익’하며 김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나설 차례이다. 수저를 놓고 밥공기를 밥통 옆에 가져다 놓는다. 메인 셰프인 장모님이 이미 만들어 놓은 국과 반찬들을 식탁 위에 세팅한다.

장모님은 사위에게 하루 동안 벌어진 얘기들을 하신다. 맞장구를 치면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밥이 다되었다는 안내가 나온다.


밥을 담는다. 내가 배가 얼마나 고픈지에 따라 식구들의 밥양이 결정된다. 점심을 늦게 먹어 배가 아직 안 꺼진 날은 밥공기 인심이 사납다. 아점을 먹어 곡기가 끊긴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면 고봉밥을 볼 수 있다.


밥을 뜨고 나면 방에 계신 장인과 거실에 있는 와이프를 부른다. 장모님은 아이들 밥을 먼저 먹인다고 따로 상을 봐서 거실로 향하신다. 아기인 둘째는 눕혀 두고 7살 첫째는 같이 앉아 먹으면 된다고 말씀드려도 늘 따로 먹이신다. 첫째는 식탁에 잘 앉으려 하지 않는다. 앉아도 장난부터 치려고 한다. 늘 이런 점 때문에 밥 먹는 자리에서 엄마 아빠에게 혼나고 만다. 아예 이런 분위기를 안 만드시려고 선택하신 방법이다.


지글지글 된장찌개에 상추쌈이 올라온 상에 식구들이 둘러앉는다. “거 참 맛있네, 자네도 들게” 된장찌개를 한입 떠먹어본 장인께서 내게도 권한다. 상추쌈을 싸서 된장만 올려 먹는데도 세상 행복하다. 장모님의 손맛은 어디 가지 않는다.


어느새 밥 한 그릇 뚝딱 비우신 장인께서 밥을 한 그릇 더 뜨신다. 난 한 공기면 될 것 같아 그만 먹으려고 숟가락을 놓는다. “자네도 한 그릇 더하게” 장인께서 식탁에 다시 앉으시면서 하신 말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와이프를 쳐다본다. 싱긋이 웃기만 하는 와이프를 보며 그만 “네”라고 말하고 만다. 반 공기를 더 떠온다.


“요즘 봄나물이 참 싱싱하네”, “내가 두릅을 좀 심었네”, “텃밭에 대파가 잘 자랐네. 좀 뽑아가게” 장인어른의 말씀을 들으며 남은 식사를 한다. 식사를 다 한 와이프와 손을 바꿔 식탁에 앉으신 장모님께 “봄나물로 끓인 된장찌개가 정말 맛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린다. “아까 밭에서 뜯어 만들어 본 건데 괜찮다니 다행이네.” 라며 겸손해하신다. 싱긋 장모님 얼굴에 웃음이 지나간다.


식사를 마친 장인께서 “많이 먹게. 밥을 많이 했네” 두 마디를 남기시곤 방으로 들어가신다. 나도 밥을 다 먹고 그릇을 싱크대에 넣어둔다. 혼자 식사를 하시는 장모님 건너편에 앉는다. “장모님 이건 어떻게 만드나요?” 만드는 방법이 그렇게 궁금 하진 않지만 한마디 건넨다. 장모님은 만들기 쉽다며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 장모님이 식사를 마칠 때쯤 냉장고에서 사과를 두어 개 꺼낸다. 8조각으로 잘라 껍질을 깎아 먹기 좋게 접시에 담는다.


사실 장인 장모님과의 시간이 이렇게 편해지기까지 시행착오가 꽤 있었다. 하소연을 하시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며 분위기 파악 못 했던 경험, 상황도 모르고 맞장구쳤다가 민망했던 경험 등 서로를 알아가는데 몇 년의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다.


서로가 가진 벽을 허물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상대의 말은 나를 위한 말이 되고 배려가 된다. 상대의 노력을 위로하는 칭찬 한마디는 말의 품보다 더 큰 감사를 불러온다. 모든 일상에 나의 생각보다 상대의 생각을 우선에 놓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과일 접시를 거실로 가져간다. 식구들이 거실 탁자에 둘러앉는다. TV에서는 와이프가 골라 놓은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다. 보통은 ‘금쪽같은 내 새끼’ 일 때가 많다. “할아버지 사과 드세요.” 첫째가 사과를 포크에 집어 방에 있는 장인께 간다. 사과 몇 조각을 집어먹으며 가족들과 TV를 보는 이 시간은 하루를 충실히 보낸 우리에게 허락된 여유로운 시간이다.


아직 집에는 씻지 않은 아이들 도시락과 분유병이 널 부러져 있고 오늘 입은 옷들도 빨아야 하고 목욕도 시켜야 하지만 걱정이 없다. 부른 배를 두드리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 파랑새가 옆에 와서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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