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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Dec 21. 2023

8시간의 요양보호사 실습이 남긴 것

요즘은 어디 가나 요양보호사 구인이 활발하다. 방문요양, 주간보호센터, 요양원 등 노인들을 서비스하기 위한 기관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2025년에 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 비율이 20%가 넘어갈 예정이니 앞으로 수요 역시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에 맞춰 현재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자들도 계속 양성되고 있다. 자격을 처음 도입한 2008년부터 2022년 말까지 요양보호사를 취득한 사람들의 숫자가 140만 명이 넘는다. 2022년 한 해에만 32만 명의 요양보호사가 배출되었으니 바야흐로 요양보호사 전성시대이다.


요양보호사가 치매노인들을 수발하는 아줌마, 아저씨가 아닌 국가공인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가로 포지셔닝하는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공익광고가 제작되기도 하고 요양보호사 자격을 가지면 장애인 활동지원사와 같은 다른 분야의 전문자격자가 되기도 쉽다.


이렇게 요양보호사가 소위 뜨면서 요양보호에 당장 투입될 현장인력들보다는 향후를 대비한 자격증으로 취득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사회복지사가 누적 취득인력이 100만 명이 넘고 매년 8만 명씩 (2022년 기준) 배출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이런 시대적 트렌드에 따라 나 역시 사회복지사를 취득하였고 쇠뿔도 당김에 빼라고 요양보호사까지 취득하기 위해 가까운 전문학원을 찾아보았다.


갈수록 늘어나는 자격 취득인원과 그에 맞는 전문성 확보를 위해 2024년부터 요양보호사 교육과정이 더 길어지고 시험도 조금 더 까다로워지기에 이왕 딸 것이라면 지금 따라는 사회 분위기에 혹한 것이었다. 부랴부랴 학원을 알아보고 등록하니 11월 중순이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었기에 5일간 하루 8시간 교육으로 이론을 간략히 끝냈다.


2023년도 마지막 기수로 나와 같이 수업을 들은 교육생은 총 7명이었다. 60대 남녀 각 1명, 30대 여성 2명, 50대 여성 3명이었다. 60대가 왜 요양보호사 자격과정을 들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건강한 노인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아야 하는 시대적 흐름 상 40~50대만큼이나 60~70대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필요로 할지 모르겠다고 스스로 납득했다.


이론이 끝나고 남은 8시간의 실습은 학원 인근의 한 주간보호센터에서 진행했다. 9시에 맞춰 실습기관에 들어갔다. 실습명부에 서명하고 간단한 안내사항을 듣고 생활실에 입장했다. 뭔가를 드시고 있는 어르신들을 지나 안쪽 테이블에서 기관의 팀장님의 브리핑을 들었다.


"오늘 여덟 분이 오셨네요. 지금은 어르신들께서 간식 드시는 시간입니다. 다 드시면 오전 프로그램으로 체조를 할 겁니다. 실습생분들은 모두 같이 참여하시고 체조를 마치면 각자 실습하실 곳을 배정해 드리겠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어르신들이 거실 소파와 탁자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국민체조를 다 함께 따라 하고 나니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였다. '오동동타령'에 맞춰 팔을 좌우로 팔랑팔랑 탈춤 추듯 펄럭이는 동작을 하면서 내가 신이 났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궂은비 오는 밤 낙수물소리

오동동 오동동 그침이 없이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이요"


어르신들도 실습생들이 신나서 따라 하는 것을 보고 뻣뻣한 몸을 최대한 펴며 같이 신나 했다. 한 어르신이 나를 보고 "저 선생님 잘하네!" 라며 칭찬을 했다. 그 말에 어르신들과 선생님들이 한바탕 웃었는데 요 몇 년간 받은 칭찬 중에 가장 기분 좋은 칭찬이었다.


연달아 나훈아의 '홍시' 노래가 나오고 진행하는 선생님이 어르신들이 따라 하기 좋도록 쉬운 율동을 했다. 노래를 들으니 눈물 난다는 어르신이 계셨는데 나도 눈 아래 눈물이 맺혔다. 어머니가 살아계시고 언제든 연락드리고 뵈러 갈 수 있는데도 찡했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세라 사랑땜에 울먹일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겠다던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무슨 얘기를 해도 니가 잘했어야 한다며 남의 편을 들지만 그 속 깊은 곳엔 험한 세상에서 자식이 자리 잡고 잘 살아가길 바라는 우리 엄마가 괜스레 보고 싶어졌다.


체조와 율동이 끝나고 실습생들은 배정받은 파트로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물리치료실에서 치료를 받는 어르신들을 살피는 역할을 맡았다. 오전은 여자 어르신들이 이용하시는 시간이었다. 뻘쭘 뻘쭘 두리번거리며 서 있으면서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하는 걸 지켜보았다. 몇 번을 보니까 대략 어떤 식으로 치료기가 조작되는지 어르신들은 각자 어떤 기기를 좋아하는지 등이 파악되었다. 기기 조작법을 배우고 치료를 마친 어르신들을 부축하여 자리로 모셔다 드리다 보니 슬슬 적응이 되었다. 30분으로 정해진 물리치료 시간이 지나 기기이용을 끝내신 어르신과 다음 시간 이용할 어르신이 몰리며 동시에 대응이 어려울 때 적절히 조치를 해 놓자 물리치료사 선생님도 금방 적응한다며 칭찬해 주었다.


점심시간에 가까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와서는 남자어르신들의 물리치료를 도왔다. 2시 반쯤 되자 물리치료실 일정이 다 끝났고 3시에는 외부에서 기체조 선생님이 와서 단전 치기, 손뼉 치기 등 활력 체조를 진행했다. 이때도 우리 실습생들은 뒤에 서서 적극적으로 따라 했다. 평소에 잘하지 않는 체조를 이 기회에 하면서 몸이 개운해짐을 느꼈다.


기체조 프로그램이 끝나고 잠시 쉬고 있으니 어르신들을 집으로 모시는 송영이 시작되었다. 남은 우리 실습생들은 빈 생활실 곳곳을 쓸고 닦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화장실 청소를 하였다. 사회복지사 실습 때 늘 하던 것이라 별 위화감이 없었다. 청소를 마치고 도구를 빨아두고 정리하니 5시가 넘었다.


회의실에 모여 실습일지를 쓰고 하루를 돌아보았다. 어떤 실습생은 어르신을 모시고 병원을 다녀왔고 어떤 분은 약국을 다녀왔으며 어떤 분은 설거지를 전담했다고 했다. 각자 배정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실습을 마쳤기에 뿌듯하였다.


이제 요양보호사가 되기 위해 남은 건 며칠 뒤에 있을 시험뿐이었다. 요양보호사 시험은 합격률이 90%에 달하는 시험이라 별 걱정이 되진 않지만 서로에게 시험을 잘 보라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사회복지사 실습 때는 어르신들과 직접 대면하기보다는 서류를 확인하는 시간이 더 길었는데 요양보호사 실습은 현장에서 어르신들이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직접 확인하고 소통할 수 있어서 더 깨닫는 바가 많았다.


먼저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이 모두 수십 년 후의 내 모습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했다. 또한 현재의 건강한 몸과 마음을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지금부터 해야 할 것이 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 장인 장모님과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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