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Jbenitora Jan 03. 2024

나의 1월 1일

2024년 첫날

2024년은 시작부터 코로나를 일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 해이다. 대한민국은 2023년 5월 11일에 코로나 19 종식을 선언했다. 아직 병원과 요양원에서는 마스크 의무화가 남아있지만 한동안 만남을 죄악시하게 만든 전염병이 두렵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2023년을 작년이라는 말로 부르기가 어색한 시기이지만 지난해의 일들은 과거로 보내버리고 올해를 희망차게 맞이한다. 그러기 위해 나도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새해 첫날이 올 한 해를 좌우한다며 계획을 세웠다. 오전에 아이들을 본가에 데려다 놓고 사무실에 출근해서 다음 한주를 시작할 준비를 해놓는 것이었다.


그런데 새벽부터 계획이 삐걱될 신호가 보였다. 2시에 눈을 뜨고는 다시 잠이 오질 않았다. 컴퓨터를 켜고 앉아서 다른 사람의 브런치를 깔짝거리고 PC하드웨어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다 보니 뭘 하지도 않았는데 5시가 되었다. 잠시라도 눈을 다시 붙이려고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그대로 잠들었다. 7시에 아이들의 물 달라는 소리와 배고프다는 소리에 잠시 일어났다.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물을 따라주니 아내가 깼다. 눈꺼풀이 자꾸 내려와서 아이들을 아내에게 맡기고 다시 누웠다. 그리고 깨어나니 9시 30분.


거실에 며칠째 널브러져 있던 빨래를 개어서 옷장에 넣고 아이들이 제멋대로 빼놓고 바닥에 팽개쳐둔 책들도 책장에 넣었다. 기저귀에 응가를 한 둘째를 씻기고 로션까지 바른 뒤에 본가로 출발한 시간이 11시였다.


새해 첫날이니 본가로 가는 길에 떡국 떡과 물만두를 샀다. 아침에 못 먹은 떡국을 점심에 먹었다. 두 그릇을 먹었더니 바닥에서 엉덩이를 떼기가 힘들었다. 그저 쉬고 싶었다. 아이들은 둘 다 태블릿으로 유튜브를 보고 어머니는 TV를 우리 부부는 핸드폰을 만지면서 한 시간이 지나갔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느끼며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어머니와 근처 수변(水邊)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오기로 했다. 그사이 아내는 아이들과 유유자적한 시간을 더 보내기로 하였다. 기온이 영상이라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1시간을 넘게 걸었다. 나이 들수록 몸을 움직여야 한다느니, 다른 사람을 돕더라도 자기 실속은 챙겨야 한다느니, 애들은 어떻게 키우는 게 좋다느니 이런저런 주제로 어머니와 수다를 떨었다. 돌아와서 호박전을 하나 구워 먹고는 일어섰다. 더 이상 뭉개고 있다가는 집에 가는 것도 귀찮아질 판이었다. 4시 30분이었다.


오늘 하기로 한 일을 정리하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당직 근무인 장모님이 업무를 하고 계셨다. 애들을 자기들끼리 놀도록 해두고 미뤄뒀던 일을 하면서 몇 가지 일들이 어제나 오늘 오전에는 처리되었어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알았다면 미루지 않고 주말에 잠시 나와서 했을 일이었다. 일을 잘 아는 아내에게 '알면서 일처리를 이렇게 하냐'며 입을 삐죽거리고 있으니 아내도 '왜 이리 툴툴거리냐'며 한마디 하였다.


서로 편하지 않은 감정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첫째가 자꾸 사무실에서 뛰어다녔다. 혼자 놀면 심심하다고 조용히 영상을 보고 있는 둘째에게 자기를 잡아보라며 치댔다. 뛰다가 여기저기 부딪히기도 하고 소리 때문에 집중에 방해되기도 하였다. 그만하라고 몇 번을 말했다. 아이는 변함없이 뛰었다. 그대로 둬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필꽂이에서 30cm 자를 빼들고 아이를 불렀다.


"아빠가 뛰지 말라는 소리 들었어 못 들었어?"

"들었어요."

"들었는데 왜 계속 뛴 거야?"

"…"


아이의 손바닥을 한 대 때렸다. 평소 목소리를 높이긴 해도 때리지는 않는데 오늘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빠의 말의 무게감이 없어질 것 같았다. 아이가 한번 '어차피 때리지도 않을걸' 하고 생각하면 부모의 말은 허공에 흩날리는 연기와 같이 되는 것이었다. 매 한대로 아이는 긴장하며 아빠말을 들었다. 눈물을 글썽거리는 모습이 안타까워도 이런 일은 정확한 원칙을 정해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애들이 사무실에 함께 있는 정신 사나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일을 속성으로 마무리했다. 집으로 올라오니 7시였는데 아내와 아까 일로 서로 간의 불만사항을 털어놓고 얘기했다. 아이들은 부부간의 대화의 무거움을 아는지 조용히 자기 놀이를 했다. 이야기 끝엔 나의 툴툴거림이 일을 개선시키기는커녕 다른 사람의 기분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내가 굳이 상관하지 않아도 되고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 신경질 내는 것은 오버라는 것도 깨달았다. 안달하기보다는 덤덤하게 빈 곳을 메꾸어 나가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아내가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화를 고기로 풀어야겠단다. 화의 원인이 나라서 떡국과 호박전으로 채운 배가 꺼지지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외투를 입혀 집을 나섰다.


우리 동네에 대패삼겹살 맛집이 있다. 원래 해장국집인데 메뉴에 삼겹살이 있는 걸 보고 한번 시켜 먹었다가 단골이 되었다. 아기의자가 없는 곳이라 둘째 낳고는 못 갔는데 아이도 좀 컸겠다 여기서 먹기로 했다. 고기를 일부 구워 아이들 밥을 먼저 먹였다. 배가 부른 지 아이들이 딴짓을 시작하자 이제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김치를 리필하여 불판에 올리고 남은 고기를 다 구워가는 그때 둘째가 울어댔다. 잠투정이었다. 다행히 가게에 있던 손님과 직원들이 이해해 주었지만 계속 울릴 수 없어서 안고 밖에 나갔다. 밖으로 나가니 울음소리가 공명을 받아 더 커져서 조용한 저녁거리에 울려 퍼졌다.


아이를 안고 한참을 왔다 갔다 하다가 식사를 끝낸 아내와 손을 바꿨다. 아내가 내 몫으로 남겨둔 고기와 반찬을 후딱 먹고는 가게를 나왔다. 아내는 식사 후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한잔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둘째의 울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말을 하지 않고서도 지금은 집으로 가서 아이들을 재울 때라는 것에 동의했다.


집에 와서 둘째는 오전에 씻었으니 첫째만 목욕시키고 모두 누웠다. 아내는 누워서 뒤척이는 둘째와 옆에서 엉겨 붙는 첫째에게 책을 읽어주었고 피곤한 나는 곧 곯아떨어졌다.


40대에게 1월 1일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20대에는 새해를 보러 인파 속에 섞여 있기도 했고 30대 때만 해도 가는 해를 보내기 위해 카운트다운하는 현장에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니 세월에 둔감해지고 큰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멋진 한 해가 되기보다는 그저 건강하고 행복한 평소 같은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도전정신이 없어 그 자리에 머무려고 하는 나이만 먹는 꼰대가 되어가는 것인지 내 분수를 알고 그만큼의 행복에 자족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아직도 새해 습관은 있다. 새해 소망을 정해 올해 마지막 날에는 전부 이루어지길 기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코로나도 물러갔고 부모님과도 사이가 좋고 일도 성과를 내며 아내와 대화를 하고 아이들도 잘 크고 있다.


다른 분들도 각자의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드리며 Happy New Year Everyone!

매거진의 이전글 8시간의 요양보호사 실습이 남긴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