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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Jan 11. 2024

다이어리 활용법을 바꿔보기

글과 말을 배우는 어린 학생들은 받아쓰기와 일기를 병행한다. 우리 글을 정확하게 쓰고 내 경험과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일기는 유용하다. 노트 한 바닥을 넘게 채우던 일기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쓰지 않게 되거나 다이어리로 넘어온다. 중고등학생은 수험생 다이어리를 성인들은 업무 다이어리를 쓴다.


다이어리를 언제부터 썼는지 헤아려 보니 20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전에는 일기를 조금 끄적이다 말다 하는 수준이었다. 매 해 쓴 다이어리를 보면 그날 그날 한 일들이 한 줄에서 많으면 몇 줄씩 적혀있었다. 다이어리를 보면서 '그땐 그랬지'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자세하게 그날 있었던 일을 적는 것은 해외로 나가는 경우 밖에 없었다. 일상에서 할 수 없는 경험들을 하다 보니 숙소에서 시간을 내어 일기를 적었다. 몇 페이지에 걸쳐 그날 있었던 일과 생각을 쓰기도 했다. 그 기록들이 노트에 남고 랩탑에 남기도 했다. 일기가 되었건 다이어리가 되었건 이리저리 흩어진 과거의 기억들을 잡아놓은 기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 써질 글들의 소재가 될 것이었다.


약속을 미리 적어두거나 업무마감일을 적어서 꼭 해야 할 일을 누락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도 다이어리의 기능이었다. 다이어리를 쓰는데도 자신의 머리를 믿다가 꼭 가기로 한 친구의 결혼식에 가지 못한 일, 병원 진료를 받기로 하고는 언제 오느냐는 전화에 헐레벌떡 뛰쳐나가는 일이 생기는데 쓰지 않던 대학시절은 어찌 살았을까 싶었다. 다이어리는 비서와 다름없었다.


연말마다 신년 다이어리를 고심했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전 직원에게 지급되는 회사 다이어리를 쓰면 되었지만 지금은 개인 사업자이다 보니 어디에서 다이어리가 나올 구멍이 없었다. 보통은 시간을 내어 서점에서 수십 종의 다이어리를 살펴보며 크기와 재질이 무난한 것으로 골랐다. 달력형식의 월별 계획표와 노트 형식의 일별 계획표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크게 고민할 것은 없었다.


작년 연말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다이어리를 고르다가 PDS 다이어리를 알게 됐다. plan do see의 앞글자를 딴 이 다이어리는 겉보기에 다른 다이어리와 큰 차이가 없었다. 모든 칸들이 널찍널찍하고 세계지도니, 알아두어야 할 상식이니 하는 자질구레한 페이지가 없는 게 차이랄까. 그럼에도 가격은 다른 다이어리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비싸지?'


호기심이 일어 제작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다이어리 활용법과 예시글을 읽고 영상을 보았다. 계획을 하고 실행한 것을 쓴 뒤 그 실행에 대해 칭찬하거나 반성하고 향후에 어떻게 할지를 적는 다이어리였다.

'모든 다이어리는 이렇게 쓰는 거 아닌가?'

사용 예시로 공개한 사진들은 같은 다이어리인데 제각각의 모습이었다. 누구는 표처럼 만들어 쓰고 누구는 알록달록 색칠해서 쓰고 누구는 대충 끼적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쓴 내용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느낌이랄까.

'여긴 단순히 다이어리를 파는 곳이 아니고 다이어리를 산 사람들을 연결해 주어 사기를 고양해 주는 곳이구나!'

각자가 다이어리 쓰는 방식을 공유하고 계획을 세우고 시행하는 것도 공유하면서 서로를 독려하는 커뮤니티가 PDS다이어리의 본질이었다.


커뮤니티의 힘이 얼마나 강하기에 이걸 통해 꿈을 이뤘다니, 삶이 바뀌었다니 하는 사람들이 나왔을까 궁금했다. 마침 스토어를 통해 주문이 가능하기에 하나를 샀다. 다이어리는 고유번호를 가지고 있어서 미리 등록하면 카카오 오픈톡 다이어리 방에 초대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신청을 하고 신년이 될 때까지 잊고 있었다.


새해가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카카오 오픈톡 초대가 왔다. 나를 비롯하여 오픈방에 참여한 사람이 150명이 넘었고 PDS에서 각 오픈방마다 배치한 매니저들도 있었다. AI 봇이 과제를 내기 시작하자 오픈톡 알람이 쉬지 않고 울렸다. 과제는 올해를 되돌아보고 내년에 이룰 계획을 써서 인증하는 것이었다. 방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의 인사, 과제 증명하는 사진과 태그를 올리는 사람들, 다이어리 활용법과 동기부여하는 영상들의 링크로 카카오톡은 활활 타올랐다.


업무로 바빠 신경을 못 쓰다가 새해가 되자 부랴부랴 올해 계획을 톡방에 올려 인증하였다. 그 후로 매일 매니저들의 동영상 가이드를 보면서 계획하고 시행하고 그 후기를 남겼다. 확실히 기존 다이어리와 차이가 있었다. 다이어리의 넓은 칸들을 채우기가 어려웠다. 시간별로 계획을 촘촘하게 세워보려고 해도 중요한 것만 적던 습관으로 일일이 루틴을 적기가 어색했다. 옆칸의 실행 내용도 자잘한 업무를 적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주요 내용만 적었다. 하루 일상을 되돌아보는 마지막칸은 그날을 보낸 생각을 적었다.


며칠 해보니 처음 생각과 좀 다른 느낌이었다. 매일의 시간을 딱딱 나누어 활용하는 측면에서 시간관리의 디테일을 연습하기에는 좋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일일이 적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2024년도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에 집중한 다이어리를 쓸 필요가 있었다. 목표와 별 상관없는 일상 업무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업무시간 이외에 흘려보내는 시간을 촘촘하게 관리하여 한 시간이라도 목표에 다가가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루종일 꿈을 위해 달릴 수 있는 학생, 수험생, 자영업자들은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업무에 큰 목표를 두지 않는 직장인은 하루 8시간을 통째로 관리 안 하고 보낼 수도 있을 것이었다.


이렇게 이번에 바꾼 다이어리는 여러 면에서 그간 써오던 다이어리와는 차이가 있었지만 적응기간이라 1월 초순의 다이어리 글 내용은 이전의 글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아직 목표중심적인 삶을 기록하는 연습이 되지 않은 것이 컸다. 새는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 업무 목표 하나를 세워 관리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다이어리가 비서의 역할이라면 목표 달성 중심의 다이어리는 코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새벽에 눈을 뜨면 자기 전에 모두 읽어서 0이던 다이어리 톡방의 안 읽은 글이 수십 개가 새로 떠있다. 어제의 일상을 공유하거나 오늘의 계획을 적어 올리는 등 새벽부터 의욕이 타오르는 다이어리 동지들을 말릴 수 없다. 바뀐 다이어리가 만들어 준 느슨한 네트워크와 타인의 일상을 당당히 관음 할 수 있는 기회가 올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가 궁금하다.


새해를 시작하고 목표를 세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각자 어떤 방식으로 삶을 관리하든 간에 꾸준히 자기 성장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돌아보면서 우리 같이 우보천리(牛步千里)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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