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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Jan 15. 2024

신입이 선임이 되었던 지난 두 달의 시간

오랜만에 신입의 기분을 마음껏 느끼고 있었다. 20여 년 전 막 회사에 들어가 일을 배울 때와 차이가 없었다. 모르는 것 투성이에 알려줘도 며칠 지나면 처음 듣는 냥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선임이 막힘없이 일을 쳐낼 때마다 대단해 보였다.


'언제쯤 저렇게 유연하게 고객응대를 하고 전산에 입력하고 서류를 작성해서 깔끔하게 정리해 놓을 수 있을까?'

'기존 업무에서 비효율을 발견하고 고칠 수 있으려면 얼마나 걸릴까?'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컨설팅 업무는 베테랑이라도 새로운 분야에서는 한낱 신입일 뿐이었다.


2년 전에 코로나가 한창일 때 그냥 있으면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낼 것 같아서 '놀면 뭐 하니?'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한 사회복지사 과정이었다. 자격증을 받고도 사회복지사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주요 업무인 컨설팅과의 접점이 없었다. 컨설팅은 컨설팅 대로 사회복지 업무는 사회복지업무 대로 시간을 쪼개야 했다. 둘째는 시급이 낮았다. 컨설팅 몇 번만 다녀오면 복지사 한 달 월급은 쉽게 벌 수 있었다. 셋째는 사회복지사 실습 때 지켜본 사회복지사 업무가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경험이었다. 일정에 맞춰 빠듯하게 돌아가면서 어르신들을 챙기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땐 남의 일이었다.


추석이 지나자 컨설팅, 심사평가, 멘토링 등 쌓여있던 업무들이 정리되었다. 이제야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그동안 못 하고 있던 독서, 공부, 게임까지 겨울 동안 마음껏 할 생각에 부풀어있었다. 통장 잔고도 든든하겠다 내년도 사업이 시작할 때까지 자기 계발을 명목으로 편하게 보내려고 했다. 


어느 날 요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고 있는 아내와 얘기를 하다가 별생각 없이 한마디를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사회복지사 자격은 굳이 왜 땄는지 모르겠어요."

"따놓으면 좋지요!"

"나중에 사회복지 관련 컨설팅이나 심사를 할 수도 있겠지만 경험도 없이 자격증 하나로 되겠어요?"

"그럼 경험을 쌓으면 되지요!"


아내는 마침 잘 되었다는 듯이 겨울 동안 놀지만 말고 요양원에 나오라고 하였다. 쳐내야 할 일도 있고 꼼꼼히 살펴야 할 일도 있다며 와서 거들어 주면 좋겠다고 했다. 기간이 한시적이고 내가 메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저 거들어 주면 된다고 하니 구미가 당겼다. 별생각 없이 알겠다고 하였다. 봄까지만 일하기로 하고 채용건강검진을 받았다.


번갯불에 콩 볶듯 사회복지사가 되어 신입교육을 받았다. 한 해 동안 들어야 하는 법정의무교육 8개도 퇴근하고 짬을 내어 온라인으로 수강하였다. 업무는 아내가 내어주는 것 위주로 했다. 아내는 이 분야에서만 15년을 일한 베테랑이었다. 제대로 하나하나 배워 나가기보다는 베테랑이 시키는 일을 꼼꼼히 처리하는데 집중했다. 정리안 된 문서를 철하고 빠져있던 업무를 체크하여 메워 나갔다. 어르신들과 생활실에서 직접 대면하는 일이 아니라서 수급자 및 요양보호사들과 부딪힐 일도 없었다. 간간히 소모품을 불출할 때 잠시 대면할 뿐이었다. 아직 마무리가 덜된 컨설팅 몇 가지를 처리하기 위해 평일에 빠지게 되면 주말에 출근해서 그 시간을 메웠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가자 기존의 사회복지사 두 명이 차례로 퇴사를 했다. 일을 하나 맡으면 마무리를 짓지 않고 벌려놓던 복지사가 나갈 때는 '저분은 이 일이 잘 맞지 않으니 서로 잘 된 일일지도 모르겠군.'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남은 복지사마저도 사직서를 쓰고 다음날부터 연락을 끊어 버리자 뭔가 잘 못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아~ 이래서 아내가 내게 사회복지사 업무를 하라고 한 것이었군.'


일을 잘하던 못하던 일상 업무라도 쳐내주던 선임 사회복지사 2명이 사라지자 나는 인수인계받은 적도 없는 업무까지 해야 했다. 직원회의, 사례회의, 월말 서류 올리기, 생활실 일지 받아서 점검하고 정리하기, 어르신 동태파악, 면회 외박 응대, 연말 결과보고와 다음 해 급여계획서 작성 등의 업무를 아무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아내와 간호파트 선생님들에게 물어물어 하나씩 쳐냈다. 첫 직장에서 교육보다는 실전으로 업무를 파악했던 경험이 20년이 지난 지금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었다.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는 사이에 신입 사회복지사 2명이 채용되었다. 사회복지사 신입 교육을 맡았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할 사람이 나 밖에 없었다. 사회복지 경험이 일천하고 어르신의 이름과 얼굴도 아직 매칭을 못하는 내가 두 달 만에 선임 사회복지사가 되어 갓 들어온 사회복지사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지만 신입 사회복지사들에게 지난 두 달간 배운 것을 남김없이 알려주고 있다. 신입 두 분은 어르신을 살피고 상태를 파악하는 부분에서는 나보다 많은 것을 아는 수준이 되었다. 물론 이들이 보호자응대, 신규입소자 상담과 서류절차, 프로그램 준비 등 중요한 업무를 손에 익히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렇게 따지면 나 역시 겨우 업무가 돌아가는 큰 흐름을 익혔고 루틴화 된 업무 몇 가지를 할 줄 알 뿐이다.


선임 사회복지사들이 그대로 있었다면 아직도 시킨 일이나 쳐내고 있을 것이다. 힘들어도 나 말고 일할 사람이 없는 지금이 업무를 익힐 최고의 기회이다. 배운 걸 금방금방 흡수하는 신규 복지사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배워야 하니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평생 하는 것도 아니고 봄이 되면 본업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힘들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재밌는 경험이라고 생각하자!'


누구나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고 나처럼 쉽게 현장에서 업무를 해볼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어리바리 신입이면서 선임의 자리에 있는 지금이 나중에는 웃으며 얘기할 추억이 될 것이다. 


경영 컨설턴트인 내가 두 달 만에 요양원의 선임 사회복지사가 되어있는 걸 보면 인생이란 참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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