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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Dec 04. 2023

광군제와 랜덤박스 그리고 나

11월 11일, 옆나라가 만든 광군제라는 행사에 대한민국도 휩쓸렸다. 천만영화의 주인공 배우가 나오는 광고 덕에 알리익스프레스(이하 알리)는 수년 전 쿠팡이 그랬던 것처럼 엄청난 이슈가 되고 있었다.


알리를 통하면 통관번호, 배대지 같은 생소한 용어들을 헤치며 해외직구를 하지 않아도 국내 쇼핑몰처럼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하면 되었다. 또 입점상품들이 중국 현지 가격에 가깝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국내 쇼핑몰의 1/3 가격에 살 수 있었다.


편리함과 가격 메리트를 가진 알리에서 광군제 이벤트로 일정금액 구매고객에게 럭키박스 추첨 행사를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고작 몇천 원을 내고 참여했는데 타블릿이 배송 왔다느니 하는 후기가 컴퓨터 하드웨어 커뮤니티 게시글로 올라왔다.


부랴부랴 관심이 생겨서 알리에 접속해서 찾아보니 행사는 이미 끝나 있었다. 대신 랜덤박스로 검색하면 수많은 전자기기를 취급하는 업체들이 나왔다. 그들은 5천 원에서 1만 원 사이의 가격을 붙여두고 미스터리 박스라는 상품을 팔고 있었다. 상품설명에는 상품가격에 해당하는 가치 이상의 제품을 임의로 발송한다고 적혀 있었고 후기도 별 5개짜리들로 채워져 있었다.


광군제 이벤트는 참여 못 했지만 미스터리 박스 상품에 기대를 걸어 보기로 하고 어느 스토어에서 파는 상품을 2개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했다.



선물 같은 상품 이미지는 겉보기에도 어떤 것이 올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행운이 올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며칠이 즐거울 터였다. 다른 상품들도 둘러보며 퇴근 후 시간을 알리와 같이 보냈다.


그리고 2주일이 흘렀다. 그 사이 알리에서 주문한 휴대폰 거치대며 애플워치 용 손목줄이 속속 도착했다. 중국 선전에서 각 세관을 거쳐 이곳까지 물건이 오차 없이 배송이 되니 알리에 대한 믿음이 더 깊어졌다.


한날 여느 때처럼 알리에서 택배로 온 물건의 비닐포장을 뜯는데 잘 못 배송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분명 일주일 쯤전에 '라이트닝 usb c타입'과 '라이트닝 usb a타입' 전송케이블을 각각 2,364원에 구매하고 전날 이 두 개를 배송받았는데 '라이트닝 usb a타입' 케이블이 2개가 더 발송된 것이었다.


'알리라고 착오 발송이 안 생기란 법은 없구나!'라고 생각하고 알리에서 반품하는 법을 찾는데 케이블 판매 업체는 정상 발송이 떠 있었다. 뜬금없는 이 상황을 곰곰이 되씹어보다 미스터리 박스 생각이 났다. 배송조회를 할 때마다 통관에서 머물고 있던 터였다. 조회를 하자 상황이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배송완료"


그간의 행복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미 있는 것을 2개나 중복으로 받은 것도 그렇지만 내가 지불한 가격의 1/3만 줘도 구할 수 있는 것을 비싸게 산 것이었다. 환불 방법이 없는 듯했다. 상품소개를 누르면 아이템은 사용할 수 없다는 화면만 나왔다.

최소한 상품가격에 해당하는 물건을 보낸다는 약속과는 거리가 먼 결과에 사기를 당한 느낌까지 들었다.


결제완료를 누르지 않고 하루가 지났다. 감언이설에 속은 내가 스스로 그 버튼을 누를 순 없었다.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결제가 될 것이었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나 같은 사람이 꽤 많았다. 조작된 좋은 리뷰만 남기고 나머지는 삭제처리를 하니 스토어에선 실상을 알 수 없었다. 사기 전에 한 번이라도 구글검색을 했다면 막을 수 있던 일이었다. 그저 막연한 기대감에 빠져 알지도 못하는 업체를 무턱대고 믿은 게 잘못이었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적은 금액을 잃어서 다행이고 쓸데없지만 케이블은 건졌다. 복권을 사고 꽝 걸린 것보단 나았다. 중국인들 아니 모든 상인들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는 것도 상기해 볼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상거래의 원칙을 되새겨 본다. 세상에는 손해 보고 파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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