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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Nov 25. 2023

도로 한가운데서 물건을 쏟고 나서 생긴 일

올해 초 아내가 일하는 요양원에서 푸드뱅크란 곳에 식품을 받고 싶다고 신청을 해두었다. 푸드뱅크는 생산, 유통, 판매, 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잉여식품들을 후원받아 사회복지기관들에게 나눠주는 곳이다. 한 기관 당 나눠주는 양이 팔레트 2개 분량으로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반드시 1톤 이상의 트럭을 가져오라는 조건이 붙었는데도 수많은 기관들이 신청을 해서 요양원에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식품을 받으러 오라는 공문이 왔다. 이번 가을에 들어온 기부 식품들은 울산에서 딱 3개 기관이 선정되는데 그중 아내의 요양원이 선정된 것이었다.


아내는 1톤 트럭을 마련하기 위해 아는 장기요양기관 원장님들에게 수소문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빌릴 수가 없었다. 트럭을 가지고 계신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했다. 내가 아버지께 연락했다.

"아버지, 사과는 이제 다 파셨어요?"

"그래, 월요일에 상인이 와서 다 따가기로 했다."

"일 년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뭘~ 다 따 가지고 가면 정리해 놓고 올라갈 거다."

"그럼, 언제쯤 오세요?"

"몰~따. 한 목요일이나 금요일쯤 안 되겠나?"

"아~ 그렇군요. 그럼 아버지 목요일 오전에 오시면 안 되실까요?"


아버지께 여차저차해서 공문에 적힌 목요일 오후 2시까지 부산 장림물류센터로 식품을 받기 위해 가야 한다는 설명을 드렸다. 며느리가 일하는 기관에서 차를 필요로 한다는 말씀을 들으시자 아버지는 두말없이 밭에 일을 서둘러 정리해 놓고 수요일에 울산에 오시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차량문제가 해결되었다.


며칠이 흘러 음식을 받으러 가는 목요일이 왔다. 오전에 일부 업무를 마무리해 두고 아내와 본가로 갔다. 수동 트럭을 운전 못하는 아내 대신 운전을 내가 맡기로 했다. 아버지께서 차키를 주시며 짐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갑바는 운전석 뒤에 있고 고무바는 짐칸에 있다며 조심히 운전하라고 말씀하셨다. 더 단단히 고정해야 할 때 사용하는 끈의 위치도 알려주었다.


부산으로 이동했다. 낮기온이 20도에 육박할 정도로 따뜻했으나 뿌연 공기가 아쉬웠다. 그렇게 2시 되기 20분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한 기관이 먼저 와있었다. 인사를 하고 울산푸드뱅크 담당자를 기다렸다. 담당자와 다른 한 기관이 각각 10분쯤 뒤에 도착했다.


식품 팔레트는 총 여섯 개였다. 각각은 랩핑 되어 있었고 곧 지게차가 와서 각 트럭에 옮겨 실어 주었다. 한 기관은 더블캡을 가지고 왔는데 두 팔레트를 실으니 트럭 짐칸이 조금 좁았다. 뒷 판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지만 다 들어가긴 해서 위에 갑바를 씌웠다. 우리는 짐칸의 공간이 넉넉했다. 짐들이 단단히 랩핑이 되어 있는 것 같아 실어 놓은 짐들을 고무바만 쳐서 고정하기로 했다. 나머지 한 기관은 트럭 적재함에 보루가 쳐져있었다. 옆으로 열 수가 없었는데 뒤로 올리려 해도 발판이 있어 지게차로 올릴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랩을 손으로 뜯어 물건을 하나하나 트럭에 올리는 소위 까대기를 쳐야 했다. 선탑자와 운전자 두 사람이 낑낑거리며 박스를 차에 싣는 것을 보니 그냥 갈 수가 없어서 우리 부부도 일손을 거들었다. 확실히 2명이 더 붙으니 금방 적재를 했다. 적재가 끝나고 우리 세 기관은 다시 각자 갈길로 떠났다.


트럭을 몰고 물류센터를 나왔다. 아내는 갑자기 걸려온 전화로 통화하느라 바빴고 나는 물류센터에서 낙동강변 쪽으로 가기 위해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고 좌회전을 하는데 아내가 통화를 하다 말고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길래 그러지?' 하며 사이드 미러로 뒤를 본 순간 심장이 철렁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고무바로 고정해 둔 식품 박스들이 코너를 돌면서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편도 4차선 중에 3개 차선이 된장, 고추장, 식초, 밀가루, 육개장, 햇반, 컵밥 등 트럭에서 떨어져 내린 식품들로 엉망이었다. 급하게 도로가에 비상등을 켜고 주차를 했다. 병목이 발생해서 순식간에 도로가 꽉 막혔다. 일단 도로 한가운데 떨어진 물건들을 재빨리 치웠다. 통행을 막고 있다는 미안한 마음에 2차로와 3차로의 물건들을 도로가로 밀었다. 발로 차고 손으로 주워가면서 열심히 치웠다. 와이프도 통화를 끊자마자 합류했다. 그나마 가운데 2개 차선의 물건을 치우니 차량들이 한 번의 신호에 빠지기 시작했다.


인도와 가까운 4차로에 떨어진 물건들이 가장 많았고 2, 3 차로의 물건들도 그쪽으로 몰아 놓았기 때문에 이것을 치우는 것이 또 막막했다. 사거리 시작부터 차를 세워둔 곳까지 널브러진 물건을 주워야 했다. 우회전을 해서 우리가 있는 도로로 들어오는 차선에서 큰 화물트럭이 멈춰서 있었다. 그 앞에도 물건들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운전자에게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하고 우선 도로 위의 물건들을 길가로 옮겼다. 혼자서 용을 쓰고 있는 것을 보고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트럭기사가 차에서 내렸다.


"아이고, 뭐 하러 물건들을 발로 찹니까? 천천히 치우면 되지."

"빨리 치워드려야 하니까요. 죄송합니다."

"박스에 넣어서 치웁시다."


트럭기사의 이런 말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침착한 마음을 먹도록 해주었다. 그는 물건이 쏟아져 비어있는 종이박스를 주워 들고 와서 물건들을 다시 하나하나 담아 인도에 올려놓았다. 그가 나를 도와 물건들을 치워준 덕분에 우회전 차선의 물건들이 한쪽으로 정리되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고 그는 쿨하게 떠났다. 급한 불은 껐으니 트럭으로 이동했다. 고무바가 간신히 버티고 있는 무너져 가는 짐들 속에서 박스들을 빼내어 다시 쌓아야 했다. 비상등을 켜놓은 우리 트럭 뒤 4차선 도로에 식품들이 제법 널브러져 있었으나 그것들도 짐칸이 정리가 되어야 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쓰러지는 박스를 붙잡고 있을 때 아내가 고무바 사이로 기울어진 박스들을 밖으로 꺼냈다. 박스마다 무거운 장류나 소스, 가루들이 있어서 빼내면 쏟아졌다. 둘이서 하기에는 너무 짐이 많았다.


그때 우리가 낑낑대는 것을 보았는지 승용차 한 대가 트럭 앞에 섰다. 중년 남자가 내렸다.

"물건을 처음에 쌓을 때 잘 못 쌓았나 보네요? 무거운 게 위에 있으니 넘어질 수밖에요."

"저도 랩핑이 되어 있어서 몰랐는데 그랬나 봅니다."

 

그는 박스를 들어 같이 내려주었다. 내가 적재함에 올라가 쓰러져 가는 박스를 내려주면 그가 받았다. 안정되게 쌓인 것들만 남기고 쓰러진 박스들을 전부 내렸다. 이제는 다시 쓰러지지 않게 박스를 잘 쌓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내와 둘이서 짐과 씨름할 생각에 막막하다가 그가 도와주니 쉽게 정리가 되었다. 고무바를 걷어내고 나서 그에게 고맙다고 얘기했다 그 역시 아까의 트럭기사처럼 별 것 아니라며 다시 자신의 갈 길을 갔다.


아내가 포장지에 구멍이 나서 질질 새는 소스나 곰국 같은 것들을 따로 분류하는 동안 4차선 도로에 떨어진 물건들을 다시 주웠다. 머릿속에는 빨리 이런 당황스러운 순간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물건을 트럭 옆으로 옮기고 있는데 소방차 사이렌이 크게 울렸다. 소방차가 반대편 차선에서 이쪽 차선으로 급하게 유턴하는 듯 보였다. 차량들에게 먼저 지나가자고 울린 사이렌에 아내가 말했다.

"우리 때문에 소방차까지 출동한 거 아니에요?"

"아닌 것 같은데요. 설마 우리가 물건 쏟은 것 때문에 출동했으리라고."

사이렌 소리 하나에도 제 발 저린 상황이었다.


물건을 옮기다가 구멍 난 비닐팩의 육개장이 흘러 내 양복바지를 흥건하게 적셨다. 와이셔츠 손목에는 소스가 묻어있고 옷 여기저기가 얼룩덜룩했다. 게다가 바지 속에 단정히 들어가 있어야 할 셔츠가 삐져나와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옷차림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사거리 신호가 바뀔 때마다 빵빵 대며 몰려오는 차량들을 보니 몰골을 신경 쓸 계제가 아니었다.


일대를 순찰하던 경찰차가 우리를 발견했다. 물건들이 떨어진 4차선 시작점에 차를 댄 경찰들이 차에서 내렸다. 물건을 줍다가 그 모습을 본 내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코너를 돌다가 물건이 쏟아졌네요. 빨리 치우겠습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경찰관 2명은 주섬주섬 도로에 쏟아져있는 물건을 함께 옮겨 주었다. 그들이 도와주니 힘이 났다. 경찰차가 있으니 한 차선을 막고 있어서 받는 따가운 시선도 좀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도로가 깨끗이 치워졌다. 병이 깨져 도로 위에 뒹굴던 유리 조각들도 차량들이 밟을 까봐 걱정된 아내가 치웠다. 이제 떨어져서 트럭 옆에 모아둔 박스와 물건들을 트럭에 잘 싣는 일만 남았다. 온전히 우리가 할 일이었다. 경찰들에게 감사하다고 하였다. 더 이상 자신들이 손써 줄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경찰들은 다시 경찰차로 돌아가서 순찰을 돌았다.


우리는 운전석 쪽에 최대한 무거운 박스를 싣고 박스가 찢어져 담을 곳이 없는 물건들을 적재함 구석구석에 끼워 넣었다. 그렇게 정리하고는 출발할 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갑바를 그제야 꺼냈다. 물건들이 다시는 도로로 떨어져서는 안 되었기에 단단히 동여매고 고무바로 한번 더 탄탄히 메었다. 출발 전에 도로가의 쓰레기를 다 치우고 주변이 깨끗한 것을 확인하고 운전석에 올랐다. 바지에 묻은 육개장 국물은 어느새 말라있었다.


음식물찌꺼기와 고무바의 검정이 묻어서 손이 새까맸다. 당장 물티슈가 없어서 핸들에 냄새가 베일까 봐 장갑을 끼고 운전을 했다. 무거운 물건들이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가득 쌓여 아내와 나는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기어와 가까이 쌓인 박스 때문에 5단으로 변속할 때는 번번이 박스를 밀어야 변속이 되었다. 아내는 코너에서는 무조건 속도를 줄이고 고속도로에서도 70km를 넘지 말라며 계속 주의를 주었다. 운전을 하면서 놀란 마음을 진정할 겸 아내와 아까의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아내는 아까 통화하면서 실시간으로 짐이 기울어져서 도로에 흩어지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꿈에 나타날지도 모를 충격적인 모습이라며 웃었다. 그 얘기를 들으며 쓰러지는 상황을 직접보지 못하고 도로에 물건들이 널브러진 모습만 본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까 물건을 치울 때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하며 참 감사하다는 얘기도 나눴다. 그러면서 고속도로에서 짐이 쏟아지면 답이 없다는 생각으로 조심조심 긴장을 늦추지 않고 운전을 했다.


요양원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긴장이 풀렸다. 갈 때는 1시간 10분이 걸렸는데 올 때는 2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중에 40분 정도는 길가에 떨어진 물건을 수습한 시간이었다. 직원들이 모두 나와 짐을 내려주었다. 짐을 내리고 트럭을 정리하여 아버지께 반납하였다. 아버지께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고 핀잔을 들었다. 짐 싣고 다닐 때는 단단히 매고 조심운전하라고 출발 전에 강조하셨는데 랩핑을 한 짐들이라고 너무 안이하게 생각을 한 내 잘못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도로에 물건을 쏟은 건 짐을 실을 때 남이 싼 랩핑만을 믿고 한번 더 점검하지 않은 것과 코너 시에 속도를 많이 낮추지 않은 것이 가져온 결과였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지만 열심히 수습을 했다. 그 와중에 고군분투하는 우리를 도와준 트럭기사와 승용자에서 내린 중년남성, 경찰관 두 분의 따뜻한 손길이 인상 깊었다. 세상이 우리의 실수를 불편해하고 어떤 사람은 경적을 울리며 비난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를 딱하게 보고 힘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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