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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이 보람이다

by CJbenitora

아이들은 평소 주말이면 대부분 본가에 가서 지냈다. 손자를 귀여워하는 부모님 덕에 밀린 업무를 하고 목욕탕을 가거나 낮잠을 자기도 하였으며 논문을 쓰기도 했다.


첫째가 초등2학년이 되고 둘째가 말을 깨치고 있는 지금도 아이들은 주말에 본가에 간다. 꼭 태블릿 PC를 챙겨가서 절반은 유튜브 삼매경이고 절반은 문제지를 풀고 논다. 둘째도 할아버지를 졸라 뽀로로 영상을 보거나 소파를 오르내리며 미끄럼틀을 탄다.


이번주는 부모님이 일이 있으셔서 정말 간만에 주말을 아이들과 보냈다. 주말에 못 놀아준 미안한 마음 때문에 아이들과 진심을 다해 놀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도 근무가 잡혀있는 아내가 아이들과 뭐 할 거냐고 물었다.


"애들 데리고 동네 운동장이나 놀이터 가려구요."

"그러지 말고 돈 쓰고 놀아요. 최근에 키즈카페 데려간 적 없잖아요."

"둘째도 트램펄린 정도는 잘 타니까 충분히 잘 놀겠죠?"

"맛있는 거 사 먹이고 재밌게 놀다 와요."


그렇게 아이들을 차에 태웠다. 첫째는 오랜만의 키즈카페 나들이에 들떴다. 두 아이의 나이차가 6년이 되기 때문에 키즈카페 선택도 신중해야 했다. 둘 다 즐거워야 했다. 종합쇼핑몰 안의 한 키즈카페가 생각났다. 부모들이 쇼핑하면서 아이들을 데려다 놓기 때문에 같이 놀 아이들이 많고 뛰고 달리고 뒹굴기 좋을 정도로 넓었다. 신난 아이들과 쇼핑몰로 이동했다.


오전이라 군데군데 자리가 많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키즈카페로 내려갔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키즈카페 자리에는 3월 한 달 동안 재단장을 한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첫째가 실망을 하였다.


"이왕 온 김에 아래 마트에서 맛있는 거 사서 다른 키즈카페로 갈까? 키즈카페는 많잖아."

"어디로 갈 거야?"

"일단 각자 음료수 하나씩 사고 먹고 싶은 거 하나씩 사자. 그다음에 아빠가 재밌는 키즈카페를 검색할게."


아이들을 데리고 식품관에 들어갔다. 빵 몇 개를 고르는데 둘째가 넓은 매장 내부가 마음에 들었는지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수족관에서 물고기를 본다고 한참을 서있고 음료 코너로 이동하다 사라져서 매대를 돌며 찾아야 했다. 형아와 아빠눈을 피해 도망가다가 우리가 자기를 발견하면 "까꿍" 거렸다. 둘째에겐 여기가 키즈카페였다. 그렇게 산 군것질 거리를 계산하고 나오니 둘째는 매장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듯 땅바닥에 '大'자로 누워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떼쓰는 것이 귀엽다고 웃었다. 잠바를 통째로 잡고 아이를 들어서 밖으로 나왔다. 다시 매장으로 들어가려고 발버둥 치는 녀석을 안고 가방을 들고 낑낑거리며 차로 데려왔다.


차에 앉아 본격적으로 검색을 했다. 늘 갔던 곳, 첫째와는 수준이 안 맞는 곳을 빼고 나니 전부 가본 적 없는 곳들이 검색되었다. 사진과 후기로 보는 키즈카페는 전부 놀기 좋다고 되어있지만 지상최강 체력의 초등저학년(이라 쓰고 잼민이라고 읽는다.)이 가기엔 뭔가 부족했다. 놀이 공간이 넓지 않고 다양한 놀거리가 없으면 같이 간 부모가 술래라도 되어줘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친구를 만들어서 놀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최종적으로 낙점된 것은 우리 동네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키즈카페였다. 3층과 4층 전부를 쓰는 곳이라 초등학생들이 놀기 좋을 정도로 넓었다. 둘째에게 맞을지가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집에서 혼자 트램펄린을 뛰고 아까 매장에서도 혼자 술래잡기 놀이를 하던 녀석에게 재미없는 곳은 아닐 것이었다.


길 한편에 주차해 두고 키즈카페로 올라갔다. 가장 긴 시간인 2시간 30분 동안 노는 것으로 결제하고 자리를 잡았다. 첫째는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쌩하고 사라졌다. 둘째는 전에 한번 온 적은 있지만 아기 때라 실제 기구들을 타거나 이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둘째는 형아 누나들이 노는 걸 보고 자기도 스펀지 pool 위의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균형을 못 잡고 중간에서 떨어졌다. 짧은 팔다리로 다시 올라가려고 버둥거렸다. 아빠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도움의 눈빛을 보내면 들어 올려 주었다.


이런 식으로 둘째와 30분을 놀다가 아빠도 같이 놀 수 있는 트램펄린 공간으로 이동했다. 이곳의 트램펄린은 다른 키즈카페에 비해 규모가 남달리 컸다. 스무 개가량의 트램펄린이 연결되어 있어서 뛰어다니면서 놀기가 좋았다. 시간별로 사이키 조명을 켜 아이들이 신나게 춤추며 놀 수 있도록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아빠가 시범을 보인다며 트램펄린에서 먼저 뛰자 둘째도 집에서 하듯 깡총깡총 뛰었다. 형아 누나들이 풀쩍풀쩍 뛰어지나 갈 때마다 반동에 넘어지기도 하였지만 혼자서 잘 뛰어다녔다. 둘째와 30여분을 트램펄린에서 놀았더니 허리가 뭉쳤다. 다리에 힘도 풀려서 구석에 앉아 쉬었다. 둘째는 지치지도 않는지 뛰고 또 뛰었다.

그러고 있으면 어디서 놀다 왔는지 짠하고 첫째가 나타나 놀다가 또 사라졌다.


둘째의 기저귀가 두툼해졌다. 기저귀를 갈고는 홍길동 같은 첫째가 있을 법한 4층으로 이동했다. 첫째는 여기서 알게 된 또래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아빠가 나타나니까 친구들과 키득 거렸다.


"아빠가 좀비야!"

"내가 왜? 아빠는 아기랑 놀아줘야 하니까 너네들끼리 놀아."

"아저씨, 우리 잡아보세요."


첫째와 같이 놀던 아이까지 잠정적으로 날 좀비로 취급하고 있었다.


"아빠는 좀비 놀이 안 하니까 너네들끼리 놀아"


실망한 아이들이 형아들 노는데 끼고 싶어 하는 둘째를 좀비로 상정하고 뛰어다녔다.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는 형아들이 자기를 보고 놀라 도망치니까 쫓아다니느라 신이 났다. 아빠는 그런 둘째를 눈으로 좇으며 미끄럼틀 위에서 앉아 있었다.


어느새 2시간 반이 흘렀다. 첫째와 같이 놀던 애가 아빠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자 첫째도 자연스럽게 가방을 놓아둔 자리로 돌아왔다.

"잘 ~ 놀았다."

첫째의 한마디가 귓가에 멈췄다가 내 얼굴에 미소를 피우고 사라졌다.


첫째가 잠바를 입고 밖으로 나가는 걸 보고 둘째도 신나서 따라 나갔다. 집으로 가자니 아쉽다고 하는 녀석들을 데리고 동네 운동장에서 한 시간을 더 놀았다. 첫째는 운동기구에 원숭이처럼 올라다니며 놀고 둘째는 운동장을 뱅뱅 돌면서 놀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빠의 삭신이 뻐근했다. 씻고 나오니 아이들은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한잠에 빠져 있었다. 이걸로 그간의 못 놀아준 빚을 다 갚진 못하겠지만 마음의 한 편의 미안함이 조금이나마 해소된 기분이었다.


'보람이 딴 게 보람인가 이런 게 보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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