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 때는 나름 지구를 위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샤워는 5분 내외로 간단하게, 물건은 아나바다, 안 쓰는 콘센트 뽑기, 꼭 필요한 물건만 사기, 되도록 대중교통 이용하기, 소등하기, 가까운 거리 걸어가기, 가성비가 없는 럭셔리 멀리하기가 생활습관이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습관은 느슨해졌다. 아내가 어두운 걸 싫어하니까 불을 켜고, 거리가 가까워도 애들이 있으니까 차를 탔다. 아이들이 커가니까 그에 맞춰 무언가를 자꾸 샀다. 물건들이 집안에 쌓여갔다. 편하려고 사모으지만 모을수록 불편해졌다.
너무 많아 책장에 넣을 수 없어 굴러다니는 책은 동선을 방해했다. 아이들 장난감은 방구석에서 공간만 축냈다. 세일할 때 쟁여놓은 고기는 안 그래도 냉동식품으로 꽉 찬 냉동실을 더 빡빡하게 만들었다. 위로 여는 김치냉장고 뚜껑 위에는 짐들로 한가득이라 김치 하나 꺼내려면 물건을 정리할 각오를 해야 했다. 옷장이 빽빽해 옷걸이를 따로 샀는데도 다 해놓은 빨래는 거실 바닥에 한참을 널브러져 있다가 들어갔다.
사는 것에 익숙해져 동네 마트는 물론이고 G마켓, 11번가, 쿠팡을 거쳐 Ali express를 섭렵하였고 물건을 팔기 위해 가입한 당근마켓은 또 하나의 쇼핑앱이 되어 매너온도가 40도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렇게 맥시멀리스트처럼 살며 자포자기하던 올해 초, 두 명의 충격적인 사람을 접하였다.
하나는 매일 쇼핑을 하고 물건이 택배로 오면 바로 창고에 넣는 사람이었다. 포장을 안 뜯은 제품으로 집안이 가득 차있었다. 새 제품들은 택배박스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구석에 처박혔다. 발 디딜 틈에 없는 그 공간에서 그녀는 또 핸드폰을 보며 쇼핑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맥시멀리스트란 말을 함부로 나에게 가져다 붙일 건 아니었구나.'
그녀에 비해 나의 쇼핑 습관은 초라했다. 아직 정상범위를 벗어나지 않았기에 스스로 얼마든 변화할 수 있는 단계였다.
다른 하나는 집이 텅 비어있는 사람이었다. 이부자리는 의자가 되고 수납장은 식탁이 되었다. 옷 한두 개를 잘 빨아서 돌려 입었다. 언제 짐을 싸서 떠나더라도 배낭하나면 충분하였다. 회사생활도 비슷했다. 퇴근하려고 일어서는 그의 책상 위는 사람이 앉았던 자리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휑했다.
'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 이게 미니멀리스트구나.'
더 사지 않고, 있는 물건을 다용도로 쓰고, 안 쓰는 것을 과감히 버리는 그의 생활은 내가 꿈꾸는 모습이었다.
'가족을 핑계로 게으름을 맥시멀리스트로 포장하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
이 두 사람을 본 후 예전의 내 모습으로 차근차근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고로 결심을 하면 주위에 알려야 하는 법이라 아내에게 미니멀리스트로 살 것임을 얘기했다. 아내는 즉각 반응해 주었다.
"오늘은 무엇을 사실 건가요? 미니멀리스트님?"
오늘 아침에 둘째가 집에서 가지고 나온 빨간 자동차 장난감을 좀처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뺏으면 동네가 떠나가도록 울 것이라 들린 채 등원시켰다. 지난 주말에는 둘째에게 음료수를 줬더니 다 마시고는 빈 음료수 병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 그냥 뺏으니 울어서 주의를 돌려서 슬쩍 빼돌렸다. 그러자 이번엔 파리채를 들고 다녔다. 결국 그건 뺏지 못해서 점심 외식 장소인 국밥집에서 파리채를 들고 다녔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쿠폰을 쓰러 간 스타벅스에서도 그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놀 때 불편할 텐데도 고집부리며 들고 다니는 27개월 된 아이의 모습에 내가 비춰 보였다.
공언(公言)한 말과 달리 여유가 생기면 쇼핑 앱을 켜서 어떤 상품들이 있는지 살피는 것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일단 장바구니를 비워두는 일부터 시작한다.
'아직은 비웃음을 받는 자칭 미니멀리스트지만 매일 조금씩 생활습관을 바꾼다면 언젠가는 소유의 욕심이 없어지고 가진 것이 없어도 불편함이 없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있겠지.'
물건 부자에서 마음 부자가 되길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