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가 살고 계신 본가는 아파트 3층에 위치한다. 평수는 29평,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20년쯤 전 옛 주공아파트였던 이 지역이 재개발 허가가 났다. 곧이어 대기업 브랜드들의 경쟁을 통해 승리한 브랜드가 아파트를 지었다. 일반 분양 전에 미리 하는 조합원 분양 때 부모님도 참여하였다. 살고 싶은 집을 정하고 추첨을 하였는데 누구나 그렇듯 도로에 가깝고 높은 층수의 30평 이상의 집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결국 지금 집에 당첨된 것이었다.
중도금을 시기마다 꼬박꼬박 내가며 집이 다 지어질 때까지 몇 년을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입주였다. 부모님과 우리 형제까지 총 4명이 살기에 적당했고 화장실도 2개였지만 어머니는 아쉬워하셨다. 그래서 어디 가서 누군가가 우리 집의 평수를 물으면 33평이라고 대답하셨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께 29평이나 33평이나 거기서 거긴데 굳이 그렇게 말해야 했냐고 하셨고 어머니는 그게 뭐 대수냐고 하셨다. 어머니의 굳이 할 필요 없던 그 거짓말에는 30평대 아파트에 대한 아쉬움, 남에게 꿀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포함해 우리가 알 수 없는 여러 생각들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이후에 우리가 모두 분가하고 부모님 두 분이 사는 집이 되자 지금 집은 더할 나위 없는 집이 되었다. 아파트 단지 안쪽은 도로의 번잡한 소리가 없었다. 3층이라 걸어 올라가고 내려가기도 좋아서 엘리베이터 고장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적절한 높이에 소나무가지들이 위치하여 베란다에서 보는 풍경이 운치가 있었다. 스물아홉 평은 두 분이 살기에는 오히려 넓은 느낌이 났다. 너무 넓으면 청소와 정리도 힘들고 적막감을 줄터였다. 집밖으로 보이던 오래된 아파트와 가옥들은 전부 재개발되어 새 아파트들로 바뀌고 거리는 깨끗해졌다. 등산이나 산책을 하기 위한 길이 뚫리는 등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 어머니께서 거짓말을 할 이유가 사라졌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어머니 사례처럼 별 것도 아닌데 굳이 진실을 말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 그 생각을 하면 내가 왜 그랬을까 싶고 문득 떠오르면 이불킥을 하게 된다.
중학교 2학년 때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미세스다웃파이어(Mrs. Doubtfire)'라는 영화가 개봉하였다. 이혼 후 아이들이 보고 싶은 아빠가 가정부로 변장하여 아내가 사는 집에 들어간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였다. 로빈 윌리엄스의 웃긴 연기와 변장이라는 소재는 흥밋거리였다. TV광고만 보면서 한번 보러 가야지 생각만 하고 있는데 친구하나가 이 영화를 보고 왔다고 줄거리를 얘기했다. 쉬는 시간에 여럿이 모여서 재밌게 듣고 있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너도 이 영화 봤지?" 라며 갑자기 물었다. 내가 광고에서 편집된 몇 장면에서 본 것으로 아는 척을 해서 그런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당연히 봤지!"라고 대답이 나왔다. 친구는 그 후로 스토리 설명에 나의 확인을 받았는데 제대로 한번 본 적이 없는 나는 그저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로빈윌리암스가 가정부로 변장하여 큰 빗자루를 들고 기타 치듯 하는 장면 등 이슈가 되는 장면에서야 거들었지만 그 외 장면은 영 설명을 못하니 나중에는 이야기하던 친구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곧 수업종이 울려서 위기를 벗어났지만 당황스러운 기억이었다. 그러곤 곧 비디오로 나온 영화를 렌털샵에서 빌려서 보았고 그리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한참을 그런 기억이 없는데 대학교 4학년 때 또 한 번 비슷한 일이 생겼다. 졸업은 얼마 남지 않았고 친구들은 대기업 지원 스펙을 쌓아가고 있었다. 학점이 형편없고 토익(TOEIC) 점수도 마련해놓지 않은 나는 막연하게 공무원 시험을 쳐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인생은 한방이라는 위험한 생각이었다. 실력도 갖추지 못하고 노력도 않고 있으면서 5급 공무원시험 공부해서 합격하면 모든 게 보상된다는 생각을 했던 시절이었다. 기업에 취업한다는 생각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현실도피를 하게 되고 여름방학도 허송세월을 하게 되었다. 방학을 보내고 2학기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친구하나가 내 토익점수를 물었다. 자기는 이번에 시험을 쳐서 800점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나는 그냥 시험을 안쳤다고 하면 될 것을 800점은 안된다고 둘러 말했다. 친구는 "그럼 7백 몇 점인데?"라고 물으며 점수를 확인하고자 했다. "어, 793점쯤?" 대충 아무 점수나 말했다.
"토익에 3점도 있나?" "대충 그 정도 된다고..."
집요한 친구의 물음에 얼버무리고 기숙사 방으로 들어왔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토익은 5점 단위로 점수가 매겨지는 시험이었다.
그 뒤에도 친구와 만나서 여러 얘기를 했지만 친구는 내 앞에서 토익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토익 영어 점수를 만들지 않은 것이 부끄러울 일이 아니요. 점수가 낮은 것도 부끄러울 일이 아닌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나에게도 동류들과 어울리면서 꿀리지 않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 아닌지 나이가 든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본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노니 진실만이 너를 떳떳하게 할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