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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Jun 22. 2023

사원은 사원의 일을 본부장은 본부장의 일을

연체금과 현장 복명서

연체금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지역 유선방송을 몇 년에 걸쳐 합병한 우리 회사가 이전 유선방송 가입자들을 고객 Pool에 넣으면서 수많은 연체가 발견되었다. 사분오열되어 있던 유선방송들이 체계를 갖춘 케이블 방송국으로 자리 잡아가며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유선방송에서 가입한 계약자의 태반이 계약서가 없거나 현장기사가 임의로 서명한 날림계약서 였다. 주소로 지로를 발송해도 수년째 방송요금을 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업체가 바뀌고 지역을 관리하는 책임자도 여러 번 바뀌면서 관리의 공백도 있었다.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라도 정리를 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연체금 정리를 위해 팀 회의가 소집되었다. 나는 입사하고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연체금으로 인해 차후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 뻔했기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섰다. 팀장님께 지역을 나눠 책임자를 명확하게 하고 나서 연체금 정리를 하자고 말했다. 다른 선배들은 의견이 없었다. 팀장이 시키면 따라가겠다는 분위기였다. 괜히 나서서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일이 생기는 것을 원천 차단하자는 생각이었다.


회의 끝에 팀장은 내 의견을 받아들였다. 아파트, 빌라, 단독주택 등 규모별로 책임자를 나누던 방식을 바꿔 지역별로 인원을 나눈 것이다. 담당자는 맡겨진 지역의 계약, 유지, 연체금회수, 협력업체관리, 민원처리 등 전반적인 모든 것을 책임지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계약만 하고 유지는 신경을 안 쓰는 일은 없어질 것이었다. 선배들은 설치와 AS를 맡아서 하는 외주협력업체에 가서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 놀고 후배들이 민원을 맡아 처리하는 관행도 없어질 것이었다.


역시나 연차가 5년 이상 쌓여 유선방송의 물이 남아있던 선배들은 '뭐 하려고 이렇게 하냐'라고 빈정대기도 했지만 나보다 1~3년 정도 일찍 들어온 선배들은 몰래 와서 응원해 주었다. 같은 직원인 이상 각자가 한 지역씩 맡는 상식적인 일에도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은 예상을 했음에도 놀라웠다. 입사 2달 차에 들어가는 나는 한 달간 선배와 밀려있던 재계약을 하러 곳곳을 누비고 다녔던 남구 지역을 맡기로 했다. 지금껏 받아온 재계약 계약서들을 월별로 나눠 파일에 철을 하고 엑셀파일에 정리해두었다. 이제 남은 구멍인 남구 지역의 연체금 회수 업무를 마무리 지을 차례였다. 내가 맡은 이상 더 이상 유선방송 시대의 허술한 관리는 허용될 수 없었다.


연체금은 건드리면 건드릴 수록 폭탄을 만지는 것 같았다. 초기에 잡았다면 몇 년 치가 쌓여 큰 금액이 되지 않았을 텐데 정리해 보니 백만 원이 넘어가는 것들도 꽤 있었다. 하나하나가 민원이 예약된 건들이라 건드리기 겁났지만 빨리 도려내야 할 것들이었다. 연체자들에게 전화를 했다. 많은 고객들이 연체금이 있다는 것을 아예 모르거나 독촉장을 받고도 TV가 계속 나오니 무시하고 방송을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화를 한 번에 받지 않은 사람들은 최소 3번 이상 전화를 하고 그 기록을 남겼다. 끝까지 연락이 안 되는 사람들은 협력업체에 주소를 전달해서 케이블 인입선을 끊어 방송이 안 나오게 조치하였다. 통화가 되는 고객들에게는 사유를 말하고 되돌아오는 그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줬다. 이사를 가면서 회사에 알리지 않은 경우가 가장 많았다. 지상파 TV 안테나로 잘 보고 있는 연로한 분들께 케이블 TV를 보면 채널도 많이 나오고 좋다며 시청료가 나오는 걸 안내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계약서를 받아온 경우도 꽤 있었다.


유선방송은 가입자 수가 곧 돈이라 회사를 팔기 전에 영업팀을 돌려서 무리하게 가입자 수를 늘렸던 티가 났다. 수가 보이는 꼼수에 헛웃음이 났다. 어질러놓은 사람은 한 몫 두둑히 챙겨 떠났고 한참 뒤에야 사회초년생 애송이가 치우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고객들은 그간 방송을 시청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부과한 금액은 명백히 제대로 고객에게 인지되지 않은 금액이었다. 나는 최대한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로 하였다. 지난 1년여의 연체금을 다 내는 대신에 재계약 날짜를 몇 달 미뤄 한동안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일시납부가 어렵다는 사람들에겐 몇 개월씩 나눠 내도록 하였다. 이사간지 한참 되어 방송을 본 적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방송국 측에 고지 안 한 잘못이 있지만 관리 안 한 회사의 잘못을 반영해 절반이상 연체요금을 감면해주기도 하였다.


계약서가 없거나 고객 본인의 서명이 없는 계약은 연체금 탕감을 위해 현장복명서를 썼다. 고객들이 부당계약으로 소보원에 고발을 하거나 법으로 맞서면 회사에 타격이 되는 건들이었다. 간간히 전액 탕감을 요청하는 복명서도 있었지만 연체 업무 담당자로서 사명감으로 고객과의 열띤 협상 끝에 일부라도 연체금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현장복명서는 어떤 경우라도 항상 본부장 결재에서 막혔다.


팀장은 현재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지만 본부장은 최대주주인 GS홈쇼핑에서 관리자로 내려보낸 사람이라 그런지 유선방송 시절의 관행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해결보다는 이 꼴을 만들어 둔 직원들을 탓했다. 신입인 나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았지만 결재는 매번 까다로웠다. "계약서가 없어도 우리 방송을 계속 시청해 온 것 아니냐"며 "어쨌든 이용했으니 이용료를 내라는데 이렇게 탕감해 주는 게 맞냐"며 몰아세웠다. 고객 하나하나의 사정을 말하고 이대로 놔두면 계속 곪는다고 얘기해 주면 그제야 "노력하는 자네를 봐서 해준다"며 결재서류에 서명을 하였다.


수많은 연체금의 해결을 위해선 고객과의 씨름만큼 본부장과의 씨름도 필요했다. 나는 사원의 일을 본부장은 본부장의 일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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