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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Jun 03. 2022

클릭 한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휴대폰을 쥐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꼬마 상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전자게임을 처음 접한 것은 20년 전이었다. 흑백 화면에 어쭙잖은 그래픽이었지만 카드놀이와 같은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기기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컬러 화면으로 바뀌고 해상도가 올라갔다. 게임기와 별반 차이 없는 성능에 넓은 화면까지 갖춘 스마트 폰이 대중화되었다. 이제 모바일 게임은 전용 게임기에서 실행되는 것처럼 화려하고 규모도 커졌다.


  수년 전 A사의 ‘아이팟’을 샀다. MP3 플레이어로 유명한 이 기기는 앱스토어에 널린 게임을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산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전철에 앉았다가 호주머니에서 흘러버렸다. 뒤늦게 깨닫고 역무원을 통해 찾아봤지만 허사였다. 한참 속앓이를 했다. 게임을 못한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결국은 일상에 더 집중하라는 신의 계시라 여기며 넘기기로 했다.


  작년에 신형 아이폰을 샀다. 아이팟의 아쉬움이 남았는지 휴대폰 게임 폴더에 게임들이 차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한번 실행해보고는 방치되었다. 어느 날인가 널려 있는 아이콘들이 너저분하게 보였다. 최근 한 달 내에 하지 않은 게임들을 지우고 두 가지만 남겼다.


  하나는 음악에 맞춰 건반이 내려오면 적절한 박자에 해당 건반을 누르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페이스북과 연동해두어 전 세계 친구들과 실력 점수를 비교할 수 있었다. 꽤 열중해서 한 덕인지 수십 명의 게임 친구들 중 2등이었기에 쉽게 지울 수 없었다. 


 다른 한 게임은 상어를 키우는 게임이었다. 바다를 종횡무진하면서 물고기를 먹어치우고, 뭍으로 올라가 갈매기나 사람도 잡아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경험치를 모으면 상어를 더 강하게 할 수도 있었고 더 상위 클래스의 상어를 해금할 수도 있었다.



  어떤 것이라도 시간을 많이 투자하면 성취에 가까워질 수 있다. 게임도 마찬가지이다. 아침 산책을 갈 때나 친구를 기다릴 때면 어김없이 상어와 함께 했다. 그렇게 몇 달간 상어는 꼬마 상어 단계에서 백상어를 넘어 메갈로돈이라는 거대 상어로 커갔다. 덩치가 커지면 먹을 수 있는 게 많아져 물 위에 떠 있는 어선을 산산조각 내고, 물에서 도약하여 헬리콥터도 박살 낼 수 있었다.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다.


  어느새 게임 내 수많은 콘텐츠가 익숙해졌다. 성장이 더뎌졌고 재미 요인이 점점 사라졌다. 서서히 게임 시간이 줄어갔지만 하루 한번씩은 접속해서 특별 이벤트가 없는지 확인하였다. 게임으로 인하여 생활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잠깐 하고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잠에서 깨었다. 새벽 2시였다. 다시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휴대폰 인터넷 창을 켜서 가십거리를 찾는데 몇 분 하니 재미가 없었다. 습관적으로 상어 게임을 켰다. 늠름한 상어가 나를 반겼다.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르니 화면에 창이 하나 떴다. ‘본 게임을 서버와 연동하시겠습니까?’ 처음 보는 문구였다. 모바일 게임들은 새벽녘 업데이트를 많이 한다. 접속자가 적은 시간에 오류도 고치고 수정도 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업데이트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네’ 버튼을 눌렀다. 게임 화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깜빡이며 업데이트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로는 어떤 콘텐츠가 더 생겼을까 기대가 되었다. 게임을 재접속하라는 문구가 떴다. 접속을 하였다.


  ‘이건 뭐지?’ 


 화면에는 작년에 이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 만난 꼬마 상어만 덩그러니 있었다. 늠름한 백상어도 흉포한 메갈로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상어에게 착용시킨 수많은 아이템들과 경험치, 금화 모두가 사라졌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복원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이 버튼 저 버튼 눌러봤지만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새벽에 고객센터에 전화를 할 수도 없었다.


  수개월에 걸친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는데 희한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그저 황망하였고 말이 나오지 않을 뿐이었다.


 ‘어찌 되겠지’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다시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지만 날이 밝으면 바로 복원 신청을 할 생각을 하며 억지로 눈을 감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내에게 새벽의 사태에 대해 얘기하였다. 아내는 덤덤하게 복원하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게임을 그만하라는 계시가 아니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쓰린 마음을 달래며 인터넷을 검색해도 게임 복원과 관련된 글은커녕 비슷한 문의 글조차 없었다. 고객센터에 글을 남기고 출근을 하였다.


  오전 내내 수도 없이 휴대폰을 쳐다보았지만 고객센터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친하게 지내는 동료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위로해줬다. 회사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은 업무가 안 풀리거나 상사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하늘을 보러 가끔씩 가는 곳이었다. 바람이 시원했다. 마음이 좀 풀렸다. 구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번 일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한 사람의 인생이란 길든 짧든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남기는 것이다. 무엇이 되었건 소중하다. 다만 그것이 악착같이 모은 물적 자산이라면 어떤 계기로 날리는 순간 지금과 같은 허망한 기분이 된다.


  클릭 한 번에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기록들이 사라졌다. 이건 비단 이 게임만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꽤 오래된 일이기는 하지만 문서작업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정전에 저장을 하지 않은 파일들이 날아간 적이 있었다. 실수로 어떤 파일을 삭제를 했다가 휴지통 폴더를 뒤져 겨우 복원한 적도 있고 포맷한 플로피디스크를 전문점에 맡겨 복원한 적도 있었다. 언제 이런 실수가 되풀이될지 모를 일이었다. 


  퇴근할 때쯤 고객센터에서 답이 왔다. 최초 설정 시 페이스북 아이디와 연동을 해두었는데 새벽의 클릭을 통해 최초 데이터로 복귀되었다고 했다. 기존 데이터는 지워져 복원이 안 된다고 하였다. 평소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던 연동 여부를 묻는 창이 왜 하필 그때 떴는지 따질까 하다가 그만뒀다. 아무 생각 없이 연동을 해 버린 나를 원망할 뿐 누구를 탓하지 않기로 하였다.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속담이 있다. 고기 잡는 법을 알기에 즉, 상어를 한번 키워봤기에 지금부터 시작한다면 이전보다 훨씬 빨리 키울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 대신 상어 게임 자체를 지워버렸다. 그간 게임으로 인해 즐거웠던 기억만 남기기로 하였다.


게임을 위해 투자해 오던 시간만큼을 다른 곳에 쓸 수 있게 되었다. 검색을 해보니 매일 영어단어를 외울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보인다.


'시간이 남을 때마다 영어 단어를 외워 보면 어떨까?'


다운로드를 받는다. 누군가 훔쳐갈 수 없을뿐더러 쉽게 잃어버리지도 않는 것에 시간을 좀 더 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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