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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Jul 13. 2022

별명이 마음에 드시나요?

 결혼을 3개월쯤 앞두고 예비 와이프가 대구에서 동기 친구들과 모이기로 했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였다. 와이프는 대구에서 대학을 나왔기에 주기적으로 모일 때마다 대구로 가는 모양이었다. 자주 보는 친구 5명 중 4명이 시집을 가서 아이들이 어리거나 임신 중이라고 하였다. 와이프 친구들과 알아둬서 나쁠 것도 없고 시간도 있었기에 점심 먹는 자리에서 인사나 할 겸 같이 나섰다.


 대구까지 운전해 가는 동안 친구들에 대해 물었다. 친구들은 대학교 동기들인데 가나다 순으로 된 출석부에서 와이프 이름 앞 뒤로 위치한 동갑내기들이라고 하였다. 와이프는 친구들을 모두 별명으로 불렀다. 그런데 그 별명이 내겐 좀 충격적이었다.

"외계인은 지금 애가 초등학생이고 우리 중에 제일 먼저 결혼했어요. 귀머거리는 결혼 한지는 조금 되었는데 아직 아이가 없고요. 행자는 올초에 결혼해서 지금 임신 초기예요. 뱅은 아직 미혼이고요."

별명을 이름부르듯 하는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불현듯 중학생 때가 떠올랐다.


 중학생 때 남학생들은 서로 힘자랑이 한창일 때라 학급의 싸움 서열을 가리곤 했었다. 싸움을 못해도 기선제압을 위해 강한 척해야 했고 꿀리는 모습을 보이면 학교생활이 힘들어지는 문화였다. 친구들은 서로를 얕잡아 부르기 위해 별명을 만들어 불렀다. 얼굴이 까매서 깜상, 뚱뚱하다고 돼지는 예사였고 머리가 산발이라서 산적, 송 씨라서 송아지 등 별명을 가지지 않은 친구가 없었다. 덩치가 작아 싸움 순위 매기는 축에 들지 않았던 당시의 나도 예외 없었다. 친구들은 내 이름 '정수'를 가지고 개장수라고 불렀고 어떤 애들은 당신이라는 곡을 히트시킨 가수를 떠올리며 김정수라고 불렀다. 그렇게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던 우리 중에 똥개라는 친구가 있었다.

"똥개야, 볼펜 좀 빌려줘. 똥개야 니가 책상 저쪽 잡아 내가 이쪽 잡을게"

우리는 친했지만 일상에서 나는 친구의 이름 부르기보다는 별명을 불렀다. 그러면서 얘보다는 강자라는 오묘한 희열을 느끼곤 했다. 그렇게 부른 지 1달쯤 되었을 때 똥개는 내게 정식으로 진지하게 부탁했다.

"이제 똥개라고 부르지 말아 줄래? 내 이름을 불러줘!"

간절하지도 않은 짧은 부탁에서 나는 그동안 이 친구가 별명으로 불려지는 것에 대해 기분이 나빴지만 참아왔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반에서 나만 똥개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똥개라 부르지 않는다고 다른 친구들이 부르는 걸 멈추진 않겠지만 나는 그 시간 이후로 그 친구를 똥개라고 부르지 않았다. 똥개는 나를 한 번도 별명으로 부르지 않았던 친구였다.


  중학생 때 기억까지 소환할 정도로 30대가 된 여성이 듣기에 기분 나쁠 수 있는 별명을 자연스럽게 부르는 이 광경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깐만요. 외계인은 그렇다고 쳐도 귀머거리라는 친구는 별명이 기분 나쁘지 않데요?"

"네, 우리는 서로 별명을 부르기 때문에 기분 나빠하지 않아요."

원래 이름을 물어보니 넷 모두 정상적이고 예쁜 이름이었다. 


 별명으로 처음 접하니 만나본적 없는 그들이 마치 캐릭터 같았다. 외계인은 평범하게 생기지 않았을 거고 귀머거리는 말귀를 잘 못 알아먹을 거고 행자는 수더분하게 다닐 거고 뱅은 청바지를 많이 입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프에게 왜 친구들에게 그런 별명을 붙이게 되었냐고 했을 때 귀머거리만 정답이고 다른 별명들은 별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본인은 별명이 뭐예요?"

안 가르쳐 준다고 빼던 와이프는 자신의 별명은 '옹'이라고 하였다. 왜 옹이 되었는지는 끝까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대화는 약속 장소인 대구 수성구 모식당에 도착했다는 내비게이션 안내와 함께 끝이 났다. 나는 화장을 해서 그런지 그냥도 그런지 모를 예쁜 와이프 친구들과 인사를 나눴고 그녀들은 식사를 하며 한참 수다를 떨었다.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하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별명에 매칭 하였다. 나의 건너편에는 귀머거리라는 친구가 앉아있었다. 조용히 별명이 싫진 않냐며 물어봤다. 

"별명이 마음에 드시나요?"

그녀는 여기 모임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별명으로만 십수 년을 불려 왔기 때문에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하였다.

'그래 귀머거리 저 친구분이 기분 나쁘지 않다고 할 정도면 다른 별명의 친구들도 그렇다는 거겠지'

이제 그냥 그들만의 법칙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카페에 들러 디저트까지 먹고 결혼식 때 보자며 헤어지면서까지 와이프는 친구들의 이름은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이후 우린 결혼을 하였고 와이프는 수년 째 그 친구들과 연락을 해오고 있다. 그사이 유일한 미혼자였던 뱅까지 시집을 가서 아이를 가졌다. 이제 40대 아줌마가 된 이들은 아직도 서로 별명을 부른다. 나에게 별명은 서로를 놀리는 도구였고 힘자랑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별명은 남이 어떻게 듣던 친밀함을 상징을 하고 서로의 우정을 지속시키는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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