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Jbenitora Jun 01. 2022

가치 있는 삶

목적 없이 걸은 적이 언제였던가? 흰 눈을 밟을 때 들리는 “뽀드득” 소리에 설레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요 근래 생산성 없는 것에 감동해 본 적이 있었던가?


어릴 때 난 걸음이 빨랐다. 엄마와 시장을 보러 갈 때도 친구들과 줄지어 소풍을 갈 때도 걸음이 빠른 나는 항상 먼저 가거나 선두에 있었다. 


생각도 빨랐다. 하나를 쳐다보고 있으면 몇 개의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세상의 모든 것이 궁금했기에 하나만 진득이 생각하지 못했다. 궁금한 것이 해결되면 즉각 다른 궁금한 것을 풀기 위해 관심이 옮겨졌다.


이 두 가지 빠름이 합쳐져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 되었다. 원하는 결과를 하나씩 얻어갔고 많은 것을 먼저 배워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것에 관심만 가지면 성취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놓친 것이 있었다. 앞을 향해 달려가면서 주변을 살피지 못한 것이다. ’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항상 떠들던 말이다. 젊을 때 귀 밖에서만 맴돌던 이 말은 학력, 경력, 실력이 어느 정도 쌓이자 귀에 들어와 박혔다.


어머니께서 가족 단체 카톡방에 올린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분홍색 봄꽃이 예쁘게 펴 있다. 지난겨울에는 눈 덮인 흰 산을, 가을에는 빨주노초 예쁜 단풍 사진들을 올리셨다. 글 한 줄 없이 사진만 올리시기에 언제 어디 가서 찍으셨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속의 풍경을 본 감정을 가족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보였다.


어머니는 내가 꼬마이던 시절 명절마다 보따리 보따리 싸서 시골로 내려가셨다. 아이 둘을 하나는 손잡고 하나는 업었다. 지금은 1시간 내외면 가는 거리지만 그땐 시내버스를 몇 번 갈아타다 보니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어머니는 애들과 짐보따리를 같이 챙겨야 하는 정신없는 여정 중에도 버스 창밖에 보이는 꽃나무에 감탄하셨다. 내 이름을 부르고는 “저 꽃 좀 봐! 예쁘지?”라며 꽃을 본 감동을 같이 나누길 바라셨다. 비좁은 버스 안에서 ‘언제 도착하나?’ 생각만 가득한 나는 건성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어머니의 카톡 사진에 그동안 달아오던 ”어디 가신 건가요? “, ”멀리 가셨네요. “, “재밌게 놀다 오세요.” 와 같은 뻔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꽃이 예쁘네요”, “무슨 꽃인가요?”, “와~ 너무 멋져요” 대상에 초점을 맞춘 감성적인 말을 쓰기로 했다.

“거긴 벌써 봄이 한창이네요?”

“그래 자전거 타고 잠깐 나왔는데 벚꽃이 너무 예쁘다.”

“꽃 속에서도 우리 엄마 예쁘시네.”

“고마워 아들”

어머니의 반응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이루는 삶을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해왔다. 결과가 좋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나도 그렇게 되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러다 보니 목적 없이 걷는 것도, 작은 일에 감동을 느끼는 것도 남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간 결과만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왔구나’


가만히 앉아 그간의 나를 돌아보았다.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부족함 없는 현재가 감사했다. 화창한 날씨가 감사하고 할 일이 있는 것도 감사하였다. 마음이 안정되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꽃을 위해 잠시 시간을 빼는 어머니의 여유를 한 번에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우선 매일 조금이라도 어떤 결과라도 내기 위해 아등바등하던 내 어깨에 힘을 뺐다. 


마침 동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할 일이 있다. 걸어가면서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가로수도 살펴볼 것이다. 비 온 후 맑아진 공기도 한껏 들이 킬 것이다. 앞으로는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을 챙기는 삶을 살아볼 것이다. 거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클릭 한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