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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May 29. 2022

나는 그대로이다

나는 그대로인데 주변 환경은 자꾸 변한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아들, 엄마의 아들로만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후 누군가의 조카, 친구를 거치고 누군가의 학생, 졸병, 부하직원이 되었다. 세월이 가니 누군가의 상사, 선생, 멘토가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분야에서는 누군가의 동기, 제자, 수강생이다. 나를 둘러싼 관계는 계속 확장되고 주변 환경은 자꾸 변하고 있다.


나이가 드는지 이제 더 이상 타이틀을 확장하고 싶지 않다. 현재 내가 있어야 할 자리와 가져야 할 타이틀은 무엇인지 생각한다. 머릿속엔 아빠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어린이집에 보낼 때 자기를 일찍 데리러 오라는 첫째에게 아빠는 친구이다. 하원을 시키고 저녁 먹기 전까지 놀이터에서 놀아준다. 술래가 되어 아이를 잡으러 다니면 녹초가 된다. 1시간 남짓에도 몸에 힘이 없다. 아이는 머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어도 팔딱팔딱 갓 잡힌 활어같이 움직인다. 어찌 달래서 집에 돌아오면 다른 일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따뜻한 물을 받아 목욕시킨다. 뛰어놀다 더러워진 옷을 세탁기에 돌린다. 도시락 통을 씻어 말려 두고 저녁을 먹인다. 이 닦기 싫어 이리저리 도망가는 아이를 잡아 이를 닦인다. 태블릿 PC를 건네주고 언제까지 볼 것을 약속한다.


‘아~ 이제 끝났다’


깜깜해진지도 꽤 된 시간이다. 거실의 컴퓨터를 켠다. 안방에서 뒹굴던 아이는 30분도 지나지 않아 아빠 옆에 자리를 잡는다. 지금 보고 있는 유튜브 동영상을 아빠에게 설명한다. 오징어게임 드라마 주인공이 어떻게 줄다리기를 이겼는지, 마인크래프트 게임 세상에서 4층짜리 집을 어떻게 만드는지 아냐며 재잘재잘 신이 난다. 요즘은 달고나 얘기가 가장 많다. 달고나를 만들어 달라는 얘기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서 말한다. 설탕을 많이 먹으면 몸에 좋지 않으니 일주일에 하루만 만들어 주는 것으로 약속한다.


오늘부터 시작이라 달고나를 하나 만들어준다. 국자에 설탕을 붓는다. 가스레인지 약불에 올려 젓가락으로 저어준다. 투명한 갈색 빛이 돌면서 녹는다. 식소다를 한 꼬집 넣어주면 황토 빛의 달고나 색이 돈다. 몇 번 젓지 않았는데 금방 부풀어 오른다. 얼른 종이 호일에 부어준다. 약간 식힌 후 준비한 호떡 누름 판으로 꾹 눌러준다. 납작해진 달고나에 우산 모양 판을 살짝 눌러 찍어준다. 달고나가 식으면 긴 바늘 하나를 같이 손에 쥐어 준다. ‘한동안은 조용하겠지?’라는 생각과 이따 다시 이 닦일 생각이 같이 머리를 맴돈다.

배고파 칭얼, 기저귀 갈라고 칭얼거리는 둘째에게 아빠는 집사이다. 둘째는 2022년 1월 28일에 태어난 녀석이다. 70일이 갓 넘었지만 몸무게는 100일이 넘은 아이 같다. 하나를 키워봤으니 수월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3시간마다 따박따박 분유 160ml를 43도에 맞춰 타서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의 울음소리는 들어본 사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소리이다. 저 조그만 아이에게 악을 쓰는 것을 누가 가르쳐줬는지 모를 일이다. 어느 날 밤에는 자지러지는 울음을 어떻게 해도 그치지 않아 병원에 가기도 하였다. 의사는 신생아들은 다 겪는 영아산통이라고 하였다. 그날 아이의 울음에 너무 과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


애가 하나일 때는 잠은 편하게 잤는데 이제 잠도 호사이다. 3시간에 한 번씩 분유 대령은 밤이라고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꿀떡꿀떡 넘기다가 어느새 또 잠든다. 잔다고 젖병을 때면 안 된다. 정해진 양을 전부 먹지 않으면 중간에 깨기 때문이다. 살짝 몸을 흔들기도 하고 꼭지를 왔다 갔다 하며 끝까지 먹이면 30분은 훌쩍 지나 있다. 아이를 안고 등을 토닥토닥하면 “꺼억~” 듣기도 시원한 트림을 거하게 한다. 10분에 걸쳐 깜깜한 집안을 돌아다니며 잔 트림까지 다 시키고 조심조심 다시 누이면 또 3시간의 꿀잠이 기다린다.

3월에는 육아 휴직 중인 애 엄마와 번갈아가며 밤에 보초를 섰다. 4월이 되어 직장에 복귀한 애 엄마를 배려해서 혼자 밤 보초를 선다. 그나마 다행인 건 4월에는 어린이집에서 낮에 종일반으로 봐준다. 밤에만 신경 쓰면 되는 것만으로도 이미 천국에 반은 와 있다. 


오늘도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온라인 강의를 듣고 블로그 글을 쓴다. 가끔씩 아빠가 아닌 다른 타이틀로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에게서 온 이메일을 확인한다. 폴더명 ‘DreamsComeTrue’를 열어보며 언젠가는 해야 할 일들을 체크해본다. 나는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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