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효신
새벽부터 아이 울음소리가 요란했다. 아기 티를 갓 벗은 아이였다.
자기 전에 기저귀를 갈지 않은 탓인가? 잠옷을 입히지 않은 탓인가? 아니면 물을 충분히 안 마시고 잔 탓인가? 옆에 아무도 없어서 인가?
눈이 떠지지 않은 상태에서 머릿속으로 원인을 찾았다.
배고픈 건 아니었다. 저녁식사는 고기로 한 그릇 뚝딱했다. 손을 잡아줘도 그치지 않았다. 아이를 안았다.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고 폭 안겼다. 안고 잠시 집안을 돌았다. 아빠의 잠이 달아났다.
계속 안고 있기 힘들어서 아이를 바닥에 다시 뉘었다. 등이 땅에 닿자마자 울어대기 시작했다. 빵빵해져 있던 기저귀를 갈았다. 아이는 발차기로 저항하였다. 겉옷을 벗기고 잠옷으로 갈아입히는 동안에도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옆에서 꿀잠 자는 아이의 형아와 대비되었다.
여차저차 아이의 옷을 갈아입혔다. 울며 투정하는 와중에도 아이가 눈을 뜨진 않았다. 깨면 더 큰일이었다. 이불을 끌어당겨 아기 옆에 두었다. 덮어주면 더 자지러질 것이었다. 벽에 기대어 반쯤 누웠다. 동작을 멈추고 숨만 쉬었다. 아이에게 반응하지 않았다.
아이가 드디어 자기가 무얼 원하는지 표현했다.
"꼬꼬야, 꼬꼬야!"
엉엉 울면서 꼬꼬를 찾았다. 꼬꼬는 공갈젖꼭지를 뜻했다.
두 돌 지나서는 집에서 꼬꼬를 물리는 일이 없었다. 혹시 낮잠을 안 자면 선생님이 힘드니 그때를 대비해서 어린이집 가방에 넣어두는 정도였다. 선생님도 최근에는 꼬꼬를 물려 재우지 않는다고 했다. 꼬꼬는 조만간 버릴 예정이었다.
그런 꼬꼬를 왜 새벽에 울면서 찾는 건지 생각하고 있는데 울음이 잦아들었다. 한참을 울던 아이가 반응이 없자 옆으로 뒹굴거리며 이불을 등뒤에 베고 다시 잠에 빠진 것이었다.
아이는 울다 지쳐 잠들었는데 아빠는 잠이 오지 않았다. 불을 켜고 식탁 한편에 앉았다. 어차피 깬 김에 스마트폰으로 글을 썼다. 손은 자판을 두드리고 머리는 아이 울음의 원인을 생각했다. 글로 풀어놓고 있으니 불현듯 새벽에 아이가 뜬금없이 울며 꼬꼬를 찾던 이유가 사진처럼 떠올랐다.
전날 저녁 고깃집에서 식사할 때 아이의 건너편에 앉은 또래 꼬마가 꼬꼬를 입에 물고 있던 장면이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었다. 알아차리기 어렵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