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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Mar 21. 2023

아악~ 또다시 야근이야?

 '아악~ 또다시 야근이야?'

 

 이불을 걷어차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희미한 스탠드 불빛 속에서 가족들은 모두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침대를 빠져나왔다. 주방으로 나와 냉장고를 열어 물을 꺼냈다. 


 "벌컥벌컥"

  

 컵에 한가득 따른 찬물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깜깜한 식탁 한편에 앉아 아까 꾼 꿈을 되새기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건 군대를 다시 가는 꿈만큼이나 씁쓸하군.'


꿈은 이랬다.


 나와 와이프는 같은 회사에 다녔다. 해가 떨어진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직원들은 아직도 밝은 전등아래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와이프를 비롯한 여성 직원들은 언제인지 모르나 퇴근을 하였고 나와 남자 동료들은 남아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와이프라도 퇴근해서 애들을 챙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비롯한 남자직원들은 딱히 일을 하기 위해 남은 것이 아니었다. 의미 없는 서류정리를 하거나 회사일과 하등 상관없는 개인적인 볼일을 보고 있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서 퇴근하지 않는 것은 상사가 아직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었다. 상사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생각이 없었다. 새내기 회사원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분위기 상 먼저 집에 가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괜히 A4 종이 한 다발을 들고 인쇄실을 들락날락하고 책상 위 서류꽃이에서 서류들을 뺐다 꽂았다 하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창고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와이프에게 전화를 하니 애들 밥을 먹이고 있다고 하였다.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넘었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고 이해도 되지 않았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이 상황을 벗어날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딱히 돈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승진에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왜 내가 이런 조건에서 회사에서 시간 죽이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런 부당한 회사생활이 싫다면 당장 개선해야 하는데 나는 엉뚱하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번 주는 참지만 다음 주까지 이러면 반드시 사표를 내고 만다.'

 창고를 나와서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뭔가를 긁적이다가 잠에서 깨었다.


 "딸깍"


 식탁 위의 전등불을 켰다. 꿈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잠이 깨어 버렸고 다시 잠들기는 틀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꿈속의 나처럼 업무 효율성은 1도 없는 야근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첫 직장에서 6시 칼퇴근을 못 하는 직장 분위기에서 몇 년을 살았다. 보통 저녁 7시 30분쯤에 눈치를 보고 퇴근했다.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내 돈 내고 사 먹는 저녁식사를 하기라도 하면 9시까지 있는 것도 예사였다. 20대라 챙길 가정이 없었기에 분위기에 체념하고 업무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일했다. 2년쯤 지나 업무가 익숙해지고 혼자 낑낑대지 않아도 될 시기에는 전산을 갈아엎는다고 했다. 전산이 바뀌면 업무가 편해질 거라는 상사의 이야기에 한 달이 넘게 수당도 없는 야근을 새벽까지 했다. 이전 자료들을 전부 새 전산에 옮기고 나서 이제 워라밸이 보장된 삶을 즐길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헛희망이었다. 업무는 줄어들지 않았다. 선배들이 자기는 잘 못한다며 기피하던 업무가 내게 맡겨졌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인생에 창의력은 1도 없어도 되는 업무는 지속된 야근을 불렀고 사람을 말라가게 하였다. 내가 일에 허덕일 때 상사들은 저녁을 사 먹고 책상에 앉아 빈둥댔다. 


 두 번째 직장 역시 칼퇴근은 남의 이야기였다. 첫 직장과는 다른 업무였지만 내가 하고 싶어 하던 업무였다. 늘 공부해야 하고 사람들과 상대해야 하는 업무였다. 나는 이 일을 좋아하니 남들보다 좀 더 일해도 문제없었다. 2년쯤 지난 시점에서 3일 정도 연차휴가를 몰아서 쓸 일이 생겼다. 휴가 마지막날 밤에 산책을 하고 있는데 10시에 직원에게서 업무를 끝냈다는 보고 문자가 왔다. 이 문자는 오늘 휴가가 아니었다면 내가 보내야 할 문자였다. 일을 하고 있지 않는 지금 순간이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하는 자각이 들었다. 

'그동안 난 평일 밤 이 시간까지 일하고 있었네.'

나의 일상이 저녁 없는 삶이란 걸 깨닫자 알 수 없는 억울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살다가 사회생활 10년이 넘어서 세 번째 직장으로 옮기고서야 누구의 눈치 없이 정시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이전 두 회사에서는 할 수 없었지만 세 번째 회사에서는 정시퇴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일에 숙달을 하고도 정시퇴근을 못 했던 이유는 2가지였다.


 첫째는 꿈에서처럼 대표나 관리자가 퇴근을 하지 않는 경우이다. 사무실이나 현장의 분위기가 모두 남아서 일을 하는데 혼자 빠지는 것은 웬만한 깡이 아니고서는 하기 어렵다. 한국과 같은 조직이 중요한 사회일수록 그 압박감이 크다. 요즘에 누가 그렇게 사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단연코 2023년 현재에도 많은 회사들이 단순히 야근을 위한 야근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 내가 보는 세상에 그런 기업들이 없을 뿐 내가 못 보고 있는 세상에는 아직도 비효율적인 야근이 일상인 곳이 있을 것이다.


 둘째는 승진이나 연봉에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상사가 늦게 가든 말든 내가 일을 다 끝냈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귀가하는 사람은 자신의 일처리에 자신이 있거나 회사의 대우에 초연한 사람이다. 승진할 생각이 없고 여기서 돈을 더 올려 받을 생각이 없는데 여가시간을 회사에 투자할 사람은 없다. 밤에 남아 일하는 사람이 회사에 더 충성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아니라 전기세나 축내는 일머리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바뀌면 해결될 문제다.


 만약 이 두 가지가 아니라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노예생활을 하는 즉, 범죄의 범위에 들어갈 것이다.


 정시퇴근을 막는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하는 것은 아주 쉽다. 대표나 관리자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면 된다. 그 한 사람의 엉덩이를 정시에 의자에서 떼게 만들면 정시퇴근은 일상화될 수 있다.


 나는 현재 내 인생에서 가장 워라밸과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워라밸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가 일을 하고 싶으면 일을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다. 내가 재벌이거나 욕망을 거세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회사원 하기를 그만둔 나는 내 사업을 하면서 필요할 때 찾아주는 클라이언트들을 더 늘이지 않았고 회사의 규모를 키우지 않는 범위에서 일을 잘 조절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되면 벌이가 시원치 않게 된다. 다행히도 먹고 살 수준에서 생활비의 대부분이 아내의 수입에서 나온다. 내가 번 돈은 한 번씩 필요한 목돈에 쓰거나 여가를 즐길 때 쓸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런 삶을 사는 이유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값지다는 가치관에서 나온다.


 나는 햇수로 6년째 가족친화인증 심사원 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가족친화적인 기업이라고 자부하는 기업에 방문해서 직원들이 저녁이 있는 삶, 가족 중심적인 삶, 휴식과 일이 조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심사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법대로 잘하고 있지만 어떤 곳은 말로만 그럴듯하고 곳곳에서 허점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특히 중간관리자들이 자신은 저녁 7시나 8시까지 퇴근하지 않으면서 "직원들은 제 눈치 없이 다 퇴근합니다. 먼저 가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습니다." 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일 때가 가장 당황스럽다.


 그럴 때는 이렇게 대응한다. "관리자들이 정시퇴근 하지 않으시면 아무리 관련 캠페인을 한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직원 분들 면담을 통해서 일과 생활의 균형 정도를 파악할 거고요. 대표님 면담 때도 얘기하겠지만 관리자님 께서도 정시퇴근 하는 것이 일상화되어야 진정한 가족친화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재인증 때는 변화가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잠이 달아날 정도의 찝찝한 꿈은 저녁이 없던 내 젊은 날을 회상하며 올해도 심사원 활동을 사명감 있게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바뀐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도입되고 확진자가 나오면 며칠 씩 강제 휴가를 주는 등 한국 사회 전반에 큰 변화들이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야근 없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이 느껴진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을 내가 보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내 젊은 날과 같은 희생자가 한 명이라도 구원받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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