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 식구들과의 서울여행 1일 차
여행일이 되었다. 동생네가 좀 일찍 출발해 본가에 들러 부모님을 모시고 KTX 역으로 오기로 했다. 우리 식구도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전날 저녁에 짐을 싸두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밥을 먹이고 다시 한번 빼놓은 것은 없는지 챙겼다.
여행이라고 별 다르랴. 동네 운동장 놀러 가듯이 휴대전화와 지갑 정도만 챙기면 되지만 여러 사람이 움직이게 되니 빼고 넣을 것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여행기간 동안 날씨를 확인하니 둘째 날에 비가 예정되어 있었다. 우산을 챙길까 잠깐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이동은 지하철이고 비가 많이 오면 숙소에서만 지내도 될 것 같았다. 바리바리 싼 아이들 짐이 제법 많아 우산까지 넣어갈 자신도 없었다. 우산을 뺐다. 기저귀는 매일 어린이집에 싸서 보내는 양에 집에서 쓰는 것까지 대략 가늠해서 여행가방에 담았다. 유모차는 가벼운 걸로 하나 챙겼다. 첫째가 지금 둘째만 할 때 일본 쿠마모토에 여행을 갔었는데 아기 띠만 가져갔다가 몹시 고생했더랬다. 줄넘기에 빠져있는 첫째가 검정색 줄넘기를 굳이 가져가겠다고 하여 챙기라고 하고는 세면을 하고 나왔다.
서둘러 출발한 덕에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동생네도 우리와 비슷하게 도착하도록 계획을 잡았지만 15분 늦게 도착했다. 어머니께서 폰을 집에 두고 오시는 통에 중간에 되돌아갔다 왔다고 했다. 9시가 조금 넘어 KTX에 올라 서울로 출발했다. 우리 식구는 아동동반이 가능한 칸에 탔고 부모님과 동생네는 일반칸에 탔다. 8살 첫째는 성인요금에 준하는 기차요금을 냈지만 돌 지난 지 얼마 안 된 둘째는 돈 한 푼 안 내고도 자리 하나가 배정되었다. 안 그래도 아기를 좁은 공간에서 안고 갈 생각을 하니 깜깜했는데 덕분에 답답하지 않을 만한 놀이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둘째는 뒷자리의 처음 보는 초등학생 형아가 책 보고 게임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의자 사이 공간으로 훔쳐보며 미소를 지었다. 형아가 쳐다봐 주지 않아 지루해지자 신발을 신겨달라고 했다. 작게 삑삑 소리가 나는 신발이 재밌는지 앞 통로에서 뒷 통로까지 아장아장 걸어 다녔다. 아이는 기차 안의 모든 것이 신기한지 옹알이를 하며 종횡무진 다녔다. 그러다 낯선 어른들과 눈이 마주치면 쌩긋쌩긋 웃었다. 우리 칸의 사람들은 이렇게 아이가 수시로 옆을 지나쳐도 귀찮아하지 않고 귀엽게 봐주었다. 첫째는 엄마 옆에 앉아서 챙겨간 과자를 먹으며 천장의 TV를 보면서 얌전히 있었다.
11시 30분쯤 서울역에 도착했다. 배가 살짝 고팠으나 서울역 주변에는 여행객 8명이 짐을 들고 한 번에 들어갈 만큼 크고 알려진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첫 번째 목적지인 동대문에는 사람이 많이 모이고 식당도 많으니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4호선을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으로 출발했다.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이동하려니 지하철 이동이 번거로웠다. 엘리베이터와 경사로가 있었지만 그걸로도 갈 수 없는 환승구간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동생과 내가 앞뒤로 유모차를 들어 내리고 올릴 수밖에 없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도착해서 식당을 찾았다. 아내가 여기로 오는 짬에 네팔식 음식을 파는 식당을 검색했다고 했다. 식당은 건물 지하 4층에 있었는데 건물 입구를 잘 못 들어가서 깜깜하고 음산한 지하 주차장을 한 바퀴 돌고서야 찾을 수 있었다. 식당은 따뜻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몇몇 젊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이 키우느라 수년만의 인도식 커리 식당이었지만 예전 기억을 떠올려 능숙하게 난과 커리, 짜이, 라씨를 각자의 기호에 맞게 시켰다.
음식은 맛있었다. 다만 아이 입맛에는 생소했는지 첫째는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둘째는 기차여행이 피곤했는지 잠에 빠졌다. 부모님은 이색적인 음식을 맛있게 드셨지만 어느 정도 드시니 한식이 생각나신다며 손을 멈추셨다. 넉넉하게 시킨 음식은 동생과 내가 힘을 내어 보았지만 꽤 남았다. 평소 같으면 싸갈 생각을 했겠지만 며칠 되지 않는 여행에 연속으로 같은 식사를 하기가 싫어서 남겨두고 나왔다.
식당을 나와 동대문 주변을 걸었다.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그중에는 SNS에 동영상을 올리려는지 카메라를 세워두고 혼자 춤추는 1인 크리에이터도 있었고 우리처럼 가족단위로 놀러 온 사람들도 많았다. 체크인 시간이 되려면 아직 몇 시간이나 남았기에 구경을 더 하려 했지만 딱히 볼 것이 없었다. 여행가방을 끌고 움직이느라 쇼핑 역시 생각할 수 없었다.
동대문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는 청계천을 따라 걷기로 했다. 날씨가 워낙 좋고 벚꽃도 피려고 하는 때라 산책 나온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윗 도로에서 청계천 길로 내려오는 계단이 좁았다. 우리는 짐뿐만 아니라 아기 유모차까지 들고 내려야 했다. 막상 내려온 청계천 도보길은 돌이 박힌 길이라 유모차가 가기에 영 좋지 않았다. 지하철 한 코스거리를 겨우 걷고서 종로 5가에서 유모차를 들고 도로로 올라왔다. 다리가 무거워지면서 쉬고 싶어졌다. 걷기 힘들다는 첫째의 투정도 슬슬 시작되고 있었다.
숙소가 있는 경복궁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역에서 또 유모차를 들고 내렸다 올렸다. 경복궁역에 와서는 비좁은 엘리베이터를 몇 번을 기다려가면서 우여곡절 끝에 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거리마다 사람으로 가득 차있었다. 한복을 예쁘게 입은 관광객들도 간간이 보였다. 숙소가 경복궁에서 멀지 않다고 했으니 사람들 속에서 걸음을 못 떼고 있어도 힘이 났다. 스마트 폰 지도앱을 켜서 주소지를 치고 안내에 따라 걸었다. 대로에서 식당들이 있는 골목길로 들어갔고 길을 나와서는 카페가 많은 도로가를 걸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걷다가 우측으로 꺾고 주택가를 따라 한참을 직진했다.
'뭐가 이렇게 멀어? 역에서 가까운 거 맞아?'
지쳐가는 순간 언덕배기가 나왔고 숙소가 보였다. 오르막길 중간의 낡은 1940년대 가옥이었다.
약속된 체크인 시간보다 1시간 정도 먼저 도착했다. 마당의 평상과 의자에 앉아 시간을 때우다가 동생이 에어비앤비 집주인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집주인은 지금 입실하여도 좋다고 하였다. 들어가도 좋다는 얘기에 얼른 짐을 방으로 넣었다. 보일러가 돌아가는 따뜻한 집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내 집에 온 것 같았다. 조금 전만 해도 허락받지 않은 손님처럼 밖에 앉아있었는데 사람의 마음은 입장에 따라 갈대와 같이 이리저리 눕는 것이었다.
찬찬히 집을 살피니 나무로 만든 주택의 곳곳은 낡았고 미닫이는 닫아도 바람이 슝슝 들어왔다. 허나 커튼으로 바람을 막을 수 있었고 방과 통로의 포인트마다 아늑한 조명이 배치되어 있어 아늑했다. 1층에는 안방과 작은방하나가 있었고 욕실과 거실 겸 부엌, 차 마시며 쉬는 방이 있었다. 2층 계단 입구에 욕실하나가 더 있고 한 사람이 겨우 다닐만한 좁은 계단을 오르면 2층에 침대 2개가 있는 다인실 하나와 작은방 하나가 있었다. 대략 집 탐색을 마치고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었다. 낯선 곳에서 헤매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여행은 위기극복의 과정이다. 그래서 여행을 하면 할수록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거나 미리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방법을 체득하게 된다. 혼자 혹은 둘이서 하는 여행은 20년 전부터 자주 다녀 익숙해져 있지만 10명에 가까운 가족들과 하는 단체 여행은 익숙지 않았다. 계획을 짤 때 여러 경우를 고려했음에도 첫날에 벌써 여러 위기를 겪었다.
어머니께서 놔두고 온 휴대폰은 이른 출발 시간 덕분에 별 문제없었다. 혹시나 모를 아기의 돌발행동은 유아동반석을 이용함으로써 타인에게 폐가 되지 않았다. 마땅한 점심식사 장소가 없었지만 검색을 통해 찾았다. 지하철과 청계천을 다닐 때 유모차의 계단 통행은 동생과 나의 완력으로 해결했다. 또 생각보다 빨리 지친 몸은 이른 체크인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발생하지도 고민하지도 않았을 문제이다. 이것이 귀찮아 집에서 나가지 않고 늘 하던 생활만 한다면 긴 인생이 지루하고 재미없어질 것이다. 일부러 나를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이다. 오늘 나는 새로 접하는 경험을 즐겁게 받아들였는지 침대에 누워 정리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