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 식구들과의 서울여행 2일 차
롯데 스카이는 2017년 4월에 지어진 555미터에 123층짜리 롯데 월드타워의 전망대를 칭하는 말이다. 해질녘 전망대에서 보는 서울 풍경이 어둠에 잠기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라 오전을 자유일정으로 짜뒀다. 여유 있게 주방으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일만 아니었다면 식사도 느지막이 할 요량이었지만 육아하는 부모는 뜻대로만 할 수 없었다.
어제저녁 동네슈퍼에서 장 봐온 것으로 아이들 식사를 해결하고 라면을 하나 끓여 먹었다. 그사이 부모님과 동생네도 일어났다. 아직 신혼인 동생부부는 우산을 같이 쓰고 산책을 나가는데 우리 부부는 숙소에서 뒹구는 게 더 좋았다. 내 집 같은 서울 숙소를 마음껏 누렸다. 부모님도 아이들 재롱에 취해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셨다.
미션을 해결하듯 부지런한 여행은 젊은 시절 많이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19년에 갔던 일본 도쿄 여행도 그러했다. 일정을 아내에게 맡기고 따라갔더니 신주쿠, 시부야, 긴자, 츠키지 등 빡빡한 일정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로 손님이 줄어 지금은 사라진 오다이바의 오오에도 온천에서는 물에 몸을 잠깐 담그고 저녁식사를 하고 바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온천이 휴식의 대명사가 아니라 잠깐 구경하는 곳이 된 그날 이후로 아내에게 전적으로 여행일정을 맡기는 일은 없다.
빗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점심도 어제 시켜 먹고 남은 찜닭과 감자탕을 냉장고에서 꺼내어 햇반과 함께 먹었다. 서울에서도 집에서 처럼 거실에 누워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이 시간도 먼 훗날 추억으로 남을 것이었다.
오후가 되자 비가 가랑비 수준으로 잦아들더니 그쳤다. 여전히 구름 때문에 하늘은 어둡고 바람은 불었지만 오늘 정해 놓은 목적지인 롯데스카이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고 2호선 잠실역에 내렸다.
지하통로로 나와 쭉 걸으니 롯데타워 지하가 나왔다. 보이는 매표소에서 예약해 둔 티켓을 바꾸고 전망대로 향했다. 유모차를 맡기고 올라가야 해서 둘째를 아장아장 걷도록 해두었더니 가는 길 옆의 그림과 글로 적어둔 타워 소개와 특징을 볼 여유가 없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기 녀석과 씨름하느라 기억에 남는 건 지하에서 전망대가 시작되는 117층까지 1초에 10m 이상의 속도로 빠르게 올라가는 초고속 엘리베이터 밖에 없었다. 한때 엘리베이터 광(狂)이었던 첫째가 층을 알리는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는 것을 보며 신기해하는 눈빛을 보니 전망대 입장료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영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다이내믹한 서울의 야경과 해 뜨는 경치를 화면으로 보다보니 서서히 스크린이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서울 시내의 풍경에 아이도 어른도 감탄했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 꼭대기에 오른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전망대는 117층에서 123층까지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118층에는 유리 바닥이 있어 아래를 볼 수 있었다.
119층의 우유(밀크바)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고 각자 구경을 했는데 나는 둘째 전담마커인 탓에 118층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14개월이 아직 안된 아기는 아래가 보이는 유리바닥이 신기한지 앉았다 일어났다 춤췄다가 저 멀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를 해댔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기가 혼자 그러고 돌아다니는 것을 사랑스럽게 봐주었다. 간간이 마주치는 형아 누나들과 어울리려고 다가가는 참으로 친화성이 강한 아기인 데다 우리 애보다 더 어린애는 걷질 못하고 더 큰애들은 말을 할 수 있으니 관심의 독점권을 따놓은 아기였다.
첫째는 전망대 한편에 있는 디스플레이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디스플레이는 밖에 보이는 산과 강이 어떤 명칭인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려주기도 했지만 틀린 그림 찾기와 같은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기능이 있었다. 엄마 아빠 숙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와 누가 빨리 틀린 그림을 맞추는지 전부 게임을 해봐야 속이 풀리는지 대결상대를 바꿔가며 몇 번을 반복해도 신나 했다.
사실 어디로 여행을 가나 전망대는 추천 여행지 중 한 곳에 포함되어 있어 전망은 많이도 봤다. 그 탓에 국내 최고층 전망이라고 해봐야 별 감흥이 없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트윈타워에 올라갔을 때 정도가 감흥이 있었을까?
그때는 여행의 경험이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젊었다. 요즘은 그곳도 2만 원이 넘는 표를 사서 관람을 한다지만 내가 갔을 당시에는 아침에 줄을 서서 무료표를 받아서 관람을 하였다. 58미터 상공의 스카이브리지에서 아래 한번 내려보기 위해 누구보다 부지런히 줄을 섰던 그때는 통로에 그림과 글로 소개해놓은 타워의 역사와 특징을 꼼꼼히도 보았다.
혼자 여행하던 때와 비교해 지금은 감흥이 덜 하지만 그만큼 더 행복했다. 한참을 놀아도 즐거운 아이들을 포함해 해가 져가는 서울의 야경을 함께 볼 든든한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