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 식구들과의 서울여행 3일 차
청와대의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로 1이다. 대지면적은 253,505제곱미터로 미국의 백악관의 3배 넓이이다. 미 군정 이후 경복궁 북원의 넓은 터였던 경무대의 건물을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사용하면서부터 현대 역사에 나타났다. 이후 윤보선 대통령 때 청와대로 이름을 바꾸고 개수, 보수, 증축, 신축, 철거 등을 거치며 1대부터 19대까지 대통령 내외의 거처이자 업무시설로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20대 대통령이 당선되며 용산에 집무실을 마련함으로써 본래의 용도를 잃고 2022년 5월에 일반에 개방되어 지금까지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청와대 개방이 이뤄진 지 10개월이 지난 어느 날 우리 가족도 청와대를 방문했다. 개방 초기에 관람객으로 미어터져 몇 시간씩 줄을 섰다는 뉴스가 무색하게 평일 9시 첫 타임의 청와대는 너무나 고요했다. 한 달 전 인터넷으로 예약할 때 쉽게 예약이 되더니 캡처해 둔 예약번호와 등록한 일행 수가 일치하는 지를 확인하니 입장은 더 쉽게 끝났다.
여느 가족들과 같이 입구 청와대 조형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산책하는 기분으로 청와대 본관으로 걸었다. 우리를 제외하고 두세 가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는데 그 덕에 덜 심심하였다. 실내관람을 위해 본관으로 들어서는데 유모차는 출입금지였다. 한눈에 봐도 장엄하지만 오래된 이미지가 있는 건물의 실내는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배려해 지어져 있지 않음이 분명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서양식 대저택 계단만 봐도 한숨이 나왔다. 아장아장 걷기 좋아하고 계단 타면서 웃음이 가시지 않는 둘째는 신났지만 조용히 관람을 원하는 아빠는 아쉬웠다. 안내원 선생님께 잠시 유모차를 맡기고 입장을 하였다.
본관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국무회의실 등이 위치했다. 각 공간에는 해설사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기본적인 공간의 용도뿐 아니라 일반인이 잘 모르는 분야까지 설명해 주었다. 1층 한 편의 역대 대통령과 영부인 초상을 보면서 설명을 들을 때 보니 아버지께서는 누가 누군지 정확히 알고 계셨다. 나는 익숙한 사람들 사이사이 낯선 초상화도 보였다. 특히 영부인 초상은 봐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2층의 국빈 맞이방을 둘러볼 때는 해설사의 설명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냥 보면 넓은 방에 의자 몇 개가 전부라 흘낏하고 지나갈 곳이었다. 해설사는 바닥 카펫의 문양, 조명등의 모양, 천장장식 등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못 볼 여러 가지에 담긴 뜻을 설명해 주었다. 각 방별 문양이 다 다르고 그 의미도 별도로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요즘같이 실용적이고 심플한 것이 대세인 시대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허세라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청와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혀 힙하지 않은 80년대 아니 많이 봐줘도 90년대 스타일의 이곳도 대한민국을 잘 모르는 외국 정상이나 우리 문화에 생소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되었을 것이었다.
고입을 앞둔 시절이 떠올랐다. 시험을 쳐서 고등학교를 진학하던 시절이라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즈음에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답사를 갔다. 내가 점찍어둔 울산고등학교는 버스를 타고 태화교를 건너가야 할 정도로 당시엔 집에서는 먼 거리였다. 비슷한 성적의 친구들과 같이 설렘을 안고 도착한 울산고등학교는 손바닥만 한 운동장을 울산중학교와 같이 쓰고 있었다. 건물도 낡아서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학교 주변 지역은 달동네처럼 언덕배기에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기대와 다른 올드한 느낌에 나는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옆 사립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다.
대입을 앞둔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남부 경상권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가 모인다는 부산대학교에 사전답사를 갔다. 학교는 언덕배기에 있었고 각 단과대학의 건물들은 10여 년 전 민주화 항쟁 때의 모습처럼 락카로 쓰인 투쟁의 글씨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궁서체의 대자보와 곳곳에 쌓인 담배꽁초, 벙커와 같은 느낌의 몇몇 건물들, 하나 같이 한숨이 나왔다. 학교의 리모델링이 시급해 보였다. 그 여파로 나는 대학 역시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대학으로 입학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본관을 나왔다. 걸어 다니며 주위 사람들의 주목을 끌던 둘째는 본관을 나오자 다시 유모차에 갇혀 산책을 이어나갔다. 부모님은 청와대 위쪽 산책 코스를 걸으셨고 동생 부부도 다른 길을 택해 걸었다. 우리 가족은 휴식처에서 쉬기도 하고 대통령 내외가 생활하던 생활관을 돌기도 하였다. 그런데 1시간을 넘게 청와대를 돌며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감옥 속이 이렇겠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문민정부부터 보더라도 아침마다 조깅을 하던 김영삼 대통령, IMF 극복을 위해 머리를 싸매던 김대중 대통령, 기득권의 공격과 탄핵의 횡포에 위리안치의 기분을 맛보았을 노무현 대통령, 광우병 촛불시위를 지켜보았을 이명박 대통령, 혼자 외로운 생활을 하던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탈출을 외쳤으나 결국 집권 내내 여기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에 기거하며 업무를 했던 그간의 대통령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청와대를 나서면서 부모님께 청와대를 직접 본 느낌을 여쭸다. 두 분은 TV속에서만 보던 권력의 최상층이 이용하던 공간을 직접 느껴보았다는 점이 좋았다고 하셨다. 아내에게는 청와대가 아이에게 살아있는 역사를 알려주는 공간이었다. 동생과 재수 씨에게 청와대는 좋은 산책코스였다. 대체 수업 증빙을 위해 사진을 몇 장 남기면서 첫째에게 물었더니 청와대는 걷기에 다리가 아프고 언제 구경을 마치고 나갈지 모르는 답답한 공간일 뿐이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각자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청와대는 이제 시대가 준 소명을 다했다. 현 대통령은 용산 집무실을 쓰고 있고 차기 대통령은 세종에서 집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허울뿐인 권좌에서 쓸쓸히 갇혀 지낼 지도자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청와대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