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 식구들과의 서울여행 prologue
우리나라에 고속철도(KTX)가 개통된 것은 2004년 4월 1일이다. 이후 2015년 12월 9일에 수서역을 기점으로 하는 SRT도 운행을 시작하면서 2022년 기준 고속철도의 하루 평균 이용자 수는 16만 명이 넘는다.
이런 수치가 무색하게도 우리 부모님께서는 KTX 개통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고속철도를 단 한 번도 타보지 못하셨다. 국내라면 서울을 비롯해 여행 안 다녀본 곳이 없는 분들이지만 주로 승용차나 버스로 이동하시다 보니 고속철도와는 인연이 없으셨다. 우리나라 특성상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도 한나절이면 어디든 갈 수 있기에 더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도 너도나도 고속철도를 타고 다니는 시대를 살고 계시니 한 번쯤 이용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을 리 없었다. 마치 우리가 어릴 적 비행기 한번 타는 것을 동경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특히 어머니께서는 가까운 대구라도 KTX를 타고 마실 나가듯 다녀오자고 아버지께 얘기를 하실 만큼 적극적이셨다. 아버지는 굳이 없는 목적을 만들어서 고속철도를 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셨기에 두 분의 고속철도 이용은 미뤄지기 일쑤였다. 직업 상 매년 수 번 혹은 수십 번을 고속철도를 이용해 서울, 오송, 대전, 대구, 부산을 누비고 다니는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부모님에게는 단단히 준비를 하고 서로의 마음을 맞춰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 때문에 언제 한번 본가식구들과 가족여행을 가면 고속철도를 이용해야겠다고 늘 담아두고 있었다. 부모님은 봄부터 늦가을까지 바쁜 농사철을 보내야 했고 나는 공부와 컨설팅 업무를 하며 바쁜 척을 했다. 직장인인 와이프도 쉽게 스케줄을 비울 수 없었고 소속된 사무실이 있는 동생 역시 매일이 바빴다. 그러다 코로나19가 덮쳐왔고 그 속에서 일상을 보내다 보니 가족여행은 언제가 될지 기약 없이 계속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둘째가 생겼고 동생은 결혼을 했다. 점점 각자의 삶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는 늘어나는데 가족끼리의 시간은 내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평생 한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단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 봄에는 가족여행을 떠나자'
마음이 정해지자 부모님과 동생에게 의견을 물었다. 봄에는 모두 괜찮다는 회신이 왔다. 즉시 행동에 옮겼다. 교통편은 고속철도로 정해져 있으니 목적지를 정하면 되었다. KTX의 최종 기착지인 서울로 가기로 했다. 부산이나 동대구는 너무 가까웠고 대전이나 천안은 중간 기착지의 느낌이 강했다.
동생가족과 우리 가족은 매달 얼마씩 공동 통장을 만들어 돈을 넣어두고 있었다. 잔액을 확인해 보니 전 가족이 서울여행을 다녀올 만큼 돈이 되었다. 정확한 날짜를 맞추기 위해 부모님께 구제적으로 언제 가 괜찮으실지를 여쭈었다. 동생네 스케줄이 어떤지를 고려하고 우리도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시점으로 여행일자를 맞췄다.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 식구와 동생네 모두 월급으로 생활하는 보통 사람들이라 평일을 다 뺄 수는 없었다. 주말을 끼고 월요일 하루는 연차를 내는 것으로 하여 2박 3일 일정이 되었다. 아이들까지 포함하여 8명의 인원이 움직이려니 숙소 구하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동생이 에어비앤비를 통해 경복궁 근처에 오래된 건물을 보수하여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곳을 컨택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서울에서 추억을 남길 만할 것이 뭔지를 생각해 보았다. 2022년 5월부터 개방된 청와대를 둘러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듯싶었다. 숙소와도 가깝고 학교를 하루 빼고 여행을 가는 첫째의 현장학습처로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한 달 남은 시점에 KTX 왕복 좌석을 예매하였고 청와대 견학을 위한 방문예약도 하였다.
KTX와 청와대를 제외하고는 서울여행의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는데 시일이 다가올수록 점차 살이 붙었다. 여의도공원 산책, 남산과 이태원 일대 거닐기, 인사동과 종로 구경 등 많은 후보가 있었지만 욕심이 여행을 망칠 수 있기에 다수의 의견에 따라 국내 최고 높이의 건물인 롯데 월드타워의 스카이 전망대를 추가했다. 나머진 필요하다면 그날 상황을 봐서 움직이거나 다 같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개별 가족끼리 유닛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했다. 전망대는 인터넷 사전 예약을 통해 정가보다 알뜰하게 입장권을 구매하였다.
교통편, 숙소, 여행지가 전부 정해졌다.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아있었다. 여행까지 남은 기간 동안 틈틈이 맛집을 검색했고 숙소 주변을 지도로 살펴보았다. 20년쯤 전 태국 여행을 위해 서점에서 여행가이드북을 고를 때의 설렘이 느껴졌다. 대만 여행을 준비할 때 도서관에서 타이베이 중심부 지도를 복사하여 늘 보던 것도 생각났다. 이미 여행계획을 세워두었음에도 챗 GPT에게 추천하는 2박 3일 서울여행일정을 물어보기도 하였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조만간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사람을 들뜨게 했다.
여행은 언제나 가기 전이 가장 설레이는 것이었다.